라오스는 아름다웠다. 개발이 덜 된 때여서 자연의 멋을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산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물안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저녁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게 일상이었고, 해질녘이면 하루를 시작하는 박쥐들의 끝없는 행렬을 보는 행운도 있었다. 전기사정이 열악한 덕에 밤하늘을 온통 뒤덮은 별들을 본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별이 있었으리라곤 상상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본 하늘에도 그 별들이 다 있었을 텐데. 지평선부터 가득 메운 별들을 보며 라오스 사람들은 별자리 공부를 하기가 어렵겠구나 싶었다. 밝은 별들 속에서 카시오페이아나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등 유명한 별자리를 구분해 내기가 힘들었다.
순수한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여행자에게도 친절했다. 신년이 지난 지 한참이 됐는데도 여기저기서 신년파티를 했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초대하는 일이 빈번했다.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여서 기꺼이 참여하는데 술잔을 계속 돌리는 통에 오래 있지 못했다. 집집마다 술을 담그는데 술 이름이 ‘라오라오’이다. 찹쌀로 빚은 술이라는데 독해서 여러 잔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친절해도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 없는 여행자이기도 하니까. 고산족 마을의 신년파티에도 참여했었다. 무앙싱 지역의 한 산에서 두 고산족의 집을 방문했는데 의상부터 크게 달랐다. 아카족은 동전으로 꾸민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옷에도 장식이 많은데, 미엔족은 검은 옷에 붉은색 카라를 한 단순한 복장이었다. 파티가 아니어도 자기 집으로 오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그만 라오스어 회화집을 사서 갖고 다녔는데 한두 단어를 찾아 말하면 현지인들은 무척 좋아했다. 현지인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강과 밀접하게 살아간다. 마을들이 강을 끼고 있다. 그들은 강에서 일하며 논다. 고기 잡고 수영하고 다이빙하고 빨래하고 목욕하고 세차도 한다. 집안에 물이 안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목욕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여자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고유 스커트를 입은 채 씻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강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그들의 생활이 보기 좋았다.
1998년 크리스마스날 나는 방비엥에 있었다. 티베트에서 예정보다 일찍 나온 대신 라오스를 여행(1998.12.19.~1999.1.17.)하고 있었다. 방비엥에는 남송 강이 있다. 툭툭을 타고 3킬로 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서부터 강물에 튜브를 띄워 거기에 앉아 4시간 정도 흘러 내려가는 튜빙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나 한동안 같이 다녔던 일본 여자와 캐나다 출신이었던가 했던 남자 두 명뿐이었다. 그 정적과 편안함. 힘들게 수영하지 않고 주변 경치를 즐기며 튜브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한낮의 햇볕은 무척 따가웠고 물살이 약해서 내려가는 속도가 더뎠다. 내 튜브는 유난히 강가 쪽으로 자꾸 흘러가서 더 느렸고 나무에 막혀 헤치고 가야 하기도 했다. 신고 있던 샌들을 벗어 들고 노를 저어 보기도 했는데 어깨가 아팠고 금세 피곤해졌다. 튜브 위로 나와 햇볕을 받고 있는 몸은 더웠고 튜브 아래 젖어 있는 몸은 추웠다. 튜브에서 몸이 내려가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 있으면 살살 아파와 튜브 위로 몸을 더 올리곤 했다. 남송호텔 있는 곳까지 가서 튜브에서 내렸다. 다른 세 사람보다 더 오래 튜빙한 만큼 생각도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날의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튜빙을 하면서 이것도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
세월이 간다.
바위나 나무줄기를 피하며 가듯,
문제가 닥치면 해결하려는 행동을 취한다.
방해물을 미리 봤다면 다른 곳으로 돌아갈 수 있듯,
그 어려움을 예견했다면 미리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동료를 만나고 때론 함께 가기도 하지만 각자 튜브 하나를 차지하고 있듯,
자기 혼자의 삶이고 자기 것으로 살아가야 한다.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지만 강줄기를 따라가듯,
자기 운명의 줄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삶의 흐름 중 라오스로 오게 한 요인들이 무엇이었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 얼마나 고민이 컸든 라오스는 아름다웠고 그곳에 있는 나는 행복했다. 튜빙으로 햇볕에 탄 피부가 몹시 아팠어도 가장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튜빙을 이날 처음 해봤고 기회가 된다면 또 체험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지금까지 유일한 경험이 되었다.
그 당시 이 좋은 체험을 왜 우리만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방비엥의 유명한 관광상품이 되었다는 걸 여러 매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십 년을 훌쩍 넘는 세월이 남송 강처럼 흘러갔으니 라오스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여행하면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데 실현될 수 없는 희망사항이란 걸 잘 안다. 내가 그곳을 갔다면 그 이전에 여행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고 내 이후에는 더 많은 여행자가 다녀갈 것이기에 변화는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므로 그곳을 찾아간 나의 행동은 이미 내 희망과 모순된다. 나이가 들어보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단지 그 변화가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이었으면 하는 가능성 있는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