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2년(2000~2002)을 생활하기 위해 숙소도 스스로 얻어야 했다. 인도네시아에 블랙 매직(사악한 마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집을 보러 다니면서 집주인에게 “Ada hantu? (귀신이 있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했었다. 집을 계약해 본 적이 없어서 집을 얻는데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던 듯싶다. 문 잠금장치 정도는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나 귀신이 있는 건 그 자리에서 알 수 없겠고 귀신이 있다면 혼자 살기에는 정말 무서울 테니 염려돼서 그랬겠지만 그랬다고 집주인이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할 질문은 아니었다. 웃고 넘어가는 집주인들의 대응이 어이없어서 그런 건지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집주인에게 직접 그렇게 물었던 내가 우습기는 하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주택단지 안에 있는 집을 계약했다. 우리처럼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주택이 모여 있는 것이다.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의 집들은 비슷한 색으로 칠해져 닮은꼴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집들은 아니었다. 한 줄에서 중간에 있는 집들은 내 집 정도의 크기였고, 양 끝에 있는 집들은 넓어서 어떤 집은 수영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단지라고 하기보다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어서 내 집에서 정문까지 걸어서 15분 넘게 걸렸다. 여러 세대의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각기 알파벳과 번호로 되어 있는 집 번호가 있었다. 내 번호는 EN6이었고 비슷한 크기의 EN5와 EN7 사이에 자리했다. 정문 가까운 곳에 단지를 관리하는 사무소가 제법 넓게 차지하고 있고 유료 수영장 시설도 그 근처에 있었다.
내 집은 작은 방이 세 개 있고, 부엌은 거실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좁은 편이며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대문 같은 건 없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현관문과 부엌으로 난 문이 있는 것이다. 부엌에 철제 계단이 있어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곳에도 작은 방 두 개와 욕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공간을 사용하지 않았고 나중에 집주인이 가져온 불필요한 살림이나 빈 상자를 그곳에 두어 창고처럼 썼을 뿐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이런 집구조가 인도네시아 주거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 집에 두 계층이 공존하는 양상이다. 인건비가 싼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부분 집안일을 하는 식모를 두고 있는데 이 가족이 집안에 함께 사는 것이다. 이들이 이용하는 공간과 문이 따로 있도록 설계된 집들이다.
쁨반뚜(Pembantu, 도와주는 사람)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혼자 들어와 살기도 하지만 가족이 함께 들어와 사는 경우가 많다. 부엌은 쁨반뚜가 생활하는 공간이어서 굳이 집주인이 이 공간을 넓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엌에서 밖으로 통하는 문이 왜 따로 있어야 했는지, 부엌과 연결되어 또 다른 주거형태가 왜 더 있는 건지, 대부분의 집에 부엌이 왜 그리 좁았던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쁨반뚜가 두 명인 집도 있고, 물론 두 명이 넘는 집도 있겠고 빈집을 지키는 쁨반뚜도 있다. 우리 라인 끝쪽에 있는 큰 집에는 주인은 거의 온 적이 없고 남자 쁨반뚜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빈부격차가 극심하여 부자들은 몇 대의 차를 소유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한 집안에 빈부가 확실히 갈리는 두 계층이 공존한다는 게 내겐 아주 특이하게 보였다. 나는 비록 살림에 서툴렀지만 혼자 사는 것에 행복했던지라 쁨반뚜와의 공생을 원치 않았고 나의 집 부엌에 있는 철재 계단 위의 공간은 효용성이 없었다.
쁨반뚜의 존재로 인한 또 한 가지 특징은 부잣집이라고 해도 세탁기를 사용하는 집을 못 봤다는 점이다. 빨래는 돈을 주고 고용한 쁨반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탁기를 파는 곳조차 드물었다. 게다가 한 통에서 탈수까지 되어 나오는 세탁기는 희귀한 물건이기까지 했다. 빨래를 하면 내 손바닥이 벌겋게 부풀어 올라 이상해졌고, 무게감이 있는 옷을 입을 때마다 빨래할 걱정을 하게 되어 결국 세탁기를 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교성이 좋은 편이 못 되는 내가 운 좋게 한 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단지 안을 산책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만난 가족이었다. 아들이 하나 있는 중년 부부인데 그 아들은 캄보디아였던가 다른 나라에 있는 호텔에서 일하느라 함께 살지 않았고 조카딸 두 명과 지내고 있었다. 고맙게도 자신들을 부모로 여기라는 말까지 해서 감동한 적이 있었다. 몇 차례 그 집에서 식사한 적이 있어서 그나마 현지인들의 음식이 어떤지 조금 알게 되었다. 식당에서 사 먹은 음식들이 일상의 음식을 보여주는 건 아니니까. 인도네시아에 여러 종류의 감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작은 옥수수를 통째로 요리하는 것을 그 집에서 처음 보았다. 그런 일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칼질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와 전혀 다르게 칼질을 했다. 우리는 칼질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게 칼질을 했다. 이런 모습에서 차이가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해서 그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물 내려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내 흥미를 자극했다. 그렇게 칼질하는 게 아주 낯설어 보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일상이어서 능숙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의 칼질 모습을 보여주자 모두 “Bahaya!(위험해)” 하고 소리쳤다. 내가 칼질하는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기도 했겠지만 내 몸 쪽으로 칼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칼을 사용하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들이 느꼈던 위험과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그들이 칼질을 이상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단지 못 봤던 동작이기에 이상하게 여긴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들 수 없었다.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내가 하는 칼질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다가 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점 또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칼질을 하는 게 아니라면 왜 서로 다른 방법이 정착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칼질하는 자신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는 이런 방식을 선택하였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계약한 집에서 2년을 잘 지냈다. 그 집에 귀신이 있는지 집 얻을 때 묻고 다녔던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못 하겠다. 눈으로 본 귀신은 없었다. 그러나 현관문 쪽에 있는 방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때가 있었다. 집에는 나 혼자 있는데. 나만의 착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 집에 왔던 조카도 그 이야기를 한 거로 봐선 신빙성이 높아진다. 나는 한 번도 그 방에서 자본 적이 없고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아 문을 닫아 놓았다. 손님이 올 때만 그 방을 썼고 막상 그들은 별말이 없었다. 내가 숨소리 같은 게 들렸냐고 물은 게 아니어서 개의치 않고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방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도 별 사고 없이 봉사단원 활동을 마무리했다. 귀신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이 정도라면 같이 살 만하겠다 싶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지 우리 주변에는 여러 생명체가 존재하고 허다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로 해코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생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나는 겨우 2년간 그 집에서 살았는데 그 숨소리의 주인은 훨씬 더 오랜 기간 그곳에서 지냈다면 그 집의 진정한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