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의 악몽

by tripall

2001년 12월 깔리만탄 섬을 여행하던 때였다. 깔리만탄은 우리에게는 보르네오섬이라고 잘 알려진 그 섬이다. 섬의 위쪽으로 말레이시아의 사라왁과 사바 지역이 있고 그 중간에 브루나이가 위치하며 그 나머지 넓은 지역은 인도네시아 영토이다. 한 섬에 세 나라가 있는 독특한 상황인데 깔리만탄은 인도네시아에서 그 섬을 부르는 이름이다.

섬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어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제주도에서는 우리가 알아듣기 힘든 언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 또한 본토와 떨어져 있어서 가능했다. 매일 하나의 섬을 방문한다 해도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을 가려면 몇십 년이 걸릴 정도로 섬이 많아서 인도네시아에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문화가 남아 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국가 모토는 ‘다양성 속의 통합’이다. 바하사 인도네시아라는 언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역마다 여전히 자기 고유의 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행자로서는 다양함을 보는 게 새롭고 즐겁다.

깔리만탄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깔리만탄에는 주로 다약족이 분포되어 있는데 다약족조차도 여러 종족으로 분류되어 말과 풍습이 다르다고 한다. 동깔리만탄의 즐라라이 마을에서는 귓불을 뚫어 귀를 늘어지게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젊은이들은 점점 풍습을 따르지 않는 듯했다. 인도네시아어를 못 하고 다약어만 하는 한 할머니는 귓불이 거의 어깨까지 닿았고 팔다리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동깔리만탄의 여러 마을에서 혼빌(코뿔새)의 모양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의 솟대처럼 세워놓은 기둥 위에 조각해놓기도 하고, 문양이나 장식으로 활용해 지붕 위나 벽면, 동상 머리 위를 화려하게 보이게 한다. 라민이라고 하는 전통가옥인 긴 집에는 100명 이상이 살기도 한다고. 물론 사용하지 않아 방치되어 있는 라민도 있고 행사장소나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한데 실제로 라민에서 여러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도 보았다.

내가 다닌 곳은 중앙과 동쪽 깔리만탄이었는데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영국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루트로 따라오면서 다니는 곳마다 내 얘길 들었다고 했다. 그는 Rough Guide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 Lonely Planet은 유명했는데 여행책자로 Rough Guide도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사람은 여행하면서 돈을 버는 거라 부러워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그가 하는 일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거였다. 가격이나 교통정보, 위치 등이 변경되는 일은 늘 있으니까. 가이드북을 새로 쓰는 것은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니 바뀐 정보를 수정하는 것이 경제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이드북 작가란 것만으로도 부러웠는데 31살의 점잖고 잘 생기기까지 했다. 그가 지나온 곳 중 한 도시의 지도를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그 도시에서 받은 지도를 주었다. 다녀온 곳의 여행정보를 정리하면서 지도도 붙여 놓긴 하지만 그 지도가 내 노트 보다 그의 가이드북에서 더 효용이 있을 것이기에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가이드북에 지도를 실을 때 출처를 밝히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해 본 적은 없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며칠 동안 함께 다녔다. 마하캄 강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마린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배를 타야 해서 부두 근처에서 묵기로 했다. 넓은 방에 침대가 여러 개 있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이었지만 그냥 있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때여서 그런지 호텔들이 대부분 다 찼기 때문이다. 호텔처럼 한 건물로 지어진 숙소가 아니고 가정집처럼 건물이 나눠져 있는 구조였다. 각자 방을 보러 가서 영국남자는 어느 쪽에 묵는지 몰랐다.

그날 밤, 너무나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보통 나는 악몽을 꾸지 않는 편이다. 무서운 꿈 때문에 깬 건 어릴 적 키 크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던 때 말곤 기억나는 게 없다. 어른들이 키 크는 꿈이라고 해서 아이들은 모두 이런 꿈을 꾸며 자라나 보다 했다. 그때의 악몽은 북한 공산당에게 쫓기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운 북한 사람들은 내게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공산당을 가르쳐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에 잘못된 두려움을 심어주고 이간질한 그 당시의 교육이 혐오스럽다.

사마린다 숙소에서 잠을 깨게 했던 꿈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칼이 등장했던 것 같고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과 이렇게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침대 위에 난 유리창을 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고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원했다. 영국남자의 방을 알면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다시 잠들면 같은 꿈을 꾸게 될까 봐 그 방에 있는 여러 침대를 보며 눈을 뜨고 그냥 견디어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날에 있었다. 영국남자와 식사를 하던 중 전날 밤 꾼 악몽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그도 무서운 꿈을 꿨다는 거였다. 그러니 내가 꾼 악몽이 그냥 우연인 것 같지 않았다. 그 숙소가 섬뜩해졌다. 전에 거기서 무슨 흉악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하캄 강 주변을 여행하고 돌아와 다시 사마린다에 도착했을 때 그 숙소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은 것 말고는. 그 영국남자는 사마린다 숙소 정보에 이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하다.

라민, 혼빌.jpg 라민(전통가옥) 지붕과 솟대 위에 혼빌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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