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 와서 살고 싶은가, 나중에 또 올만 한가, 여기가 파라다이스 같은 곳인가 생각할 때가 많다. 한 번 지나쳐 가는 장소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디에서건 내가 원하면 살 수 있겠다는 상상의 자유로움 때문일 거다.
여행이라면 볼거리, 놀거리가 많은 곳이 좋지만 살고 싶은 곳이라면 다를 수 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낯선 장소로 떠나는 일의 반복이 여행이지만 그러다가도 더 머물고 싶어지는 곳은 주로 조용하고 할 일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 곳들은 대부분 강이나 호수, 바다가 있었다. 또한 나를 느긋하게 만드는 요소 중 중요한 것은 따뜻한 기후이다.
내가 파라다이스로 꼽는 장소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마나도라는 도시에서 차로 여덟 시간, 다시 배로 열네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마나도는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이 걸렸다. 파라다이스라면 그 정도의 번거로움은 감수하고라도 와야 하는 거라고 그 섬이 말하는 것처럼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많은 사람이 가서 그곳의 매력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2002년 6월 나는 인도네시아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큰 섬 중에 술라웨시로 갔다. 다른 세 섬(자바, 수마트라, 깔리만탄)은 이미 여행했고 술라웨시가 마지막 섬이었다. 뉴기니도 큰 섬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네 개의 섬으로 구분했었다. 나의 파라다이스라고 한 그 섬에는 우연히 정보를 듣고 가게 되었다. 마나도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인 부나켄 섬에서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까지 한 후라 굳이 또 다른 섬으로 갈 욕구가 크지 않았는데도 세 개의 호텔만 있고 다른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나를 끌었다.
이동하는데 하루를 넘기며 또기안 군도 중 까디디리 섬에 도착했다. 나는 세 개 중 하나의 호텔을 선택해서 갔다. 다른 두 호텔이 그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갈로들로 이뤄진 호텔이었고, 나무로 지어진 바닷가의 한 방갈로가 나의 숙소였다. 앞쪽에 나와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주변엔 드문드문 있는 다른 방갈로들과 바다로 길게 뻗어 있는 선착장으로 쓰는 다리뿐이다. 수도시설이 없어서 가져다준 물을 사용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할 것이라곤 배 타고 나가서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거였다. 호텔 매니저는 영국인이었고 스쿠버다이빙 강사이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하러 바다로 나갈 때 원하는 사람들도 같이 갈 수 있었다. 다이버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장비 대여도 해야 하니 스쿠버다이빙은 비용이 꽤 들지만 스노클링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다. 물안경과 스노클도 그냥 빌려줬다. 나는 부나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나서 머리가 계속 아파 스쿠버는 또 하고 싶지 않았다.
도착한 다음 날, 모든 투숙객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했다. 세끼 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했다. 달리 먹을 데가 없으니까. 10명 남짓한 투숙객 모두가 서양인이었고 대부분 장기간 머무르고 있었다. 여행자도 있었고 자카르타에 산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침 먹고 바다로 가는 배에 나도 탔다. 매니저에게 수영을 잘 못 하니 함께 스노클링 할 사람을 구해주길 부탁했더니 나처럼 혼자 여행하고 있는 스위스 아저씨가 파트너가 되었다.
부나켄 섬이 산호로 유명했는데 여기도 산호며 물고기들이 다양하여 볼만했다. 육지에서 살아온 우리는 지구 위 인간들이 사는 영역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지만, 바다에도 주체가 인간이 아닐 뿐 다른 생물들이 서로 얽혀 구성된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 저 하늘 수많은 별 가운데에도 어떤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UFO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닷속을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든다.
바닷속 구경에서 빠질 수 없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과 산호가 예쁘긴 하지만 색다른 것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다. 첫 여행지였던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즐거웠고, 그 좋았던 기억은 여러 곳에서 스노클링을 하게 했다. 스노클링으로 거북이도 1미터 정도 되는 상어도 본 적이 있다. 가장 멋있던 것은 커다란 가오리였다. 그 우아한 몸놀림에 바다의 고요함이 흘러 들어가는 것 같은 고귀한 정적의 순간을 느끼게 했다.
그 재미를 알고 있는 스위스 아저씨는 볼만한 것을 발견하면 알려주는데 열심이었다. 정확히 짚어주려고 잠수해서 가까이 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그날의 최고는 살짝 숨어있는 라이언피시였다. 아저씨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놓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하는데 사납게 생기기도 했다. 처음 본 것이라 신기했고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려 그렇게 열심히 함께 해 준 스위스 아저씨가 무척 고마웠다.
바다에서 돌아오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또 배가 나간다. 오전에 스노클링 하기 전 서로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던 중년 부부는 오후에도 나갔다. 그러면 저녁 먹을 때쯤 돌아오겠지. 전등이 없는 곳이라 어두워지면 달리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하루가 가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에서는 불편하다고 할만한 이 섬의 조건들이 오히려 나를 가볍게 만드는 것인지, 한정된 기간의 일탈이어서 그 불편들에 너그러워지는 것인지 몰라도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 행복했다. 날씨는 맑고 깨끗한 바다가 앞에 있고 분위기 타게 하는 방갈로에 나와 앉아 그걸 즐기는 게 좋았다. 걱정거리도 뒤로 밀어놓을 수 있고 다른 시선을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그렇게 단순해질 수 있어서 편안했다.
바닷속을 보는 것은 매번 새로워서 싫증나진 않지만 방갈로에서 보내는 시간도 갖고 싶어 오후 배는 타지 않았다. 이틀을 묵을 계획이어서 다른 투숙객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나의 파라다이스라 할만한 곳을 발견한 큰 행운에도 불구하고 더 머물지 못하는 건 정말 아쉬웠다. 투숙객들 중 가장 늦게 이 호텔에 들어온 내가 체크아웃을 제일 먼저 하니 다른 사람들만큼 이 섬을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카르타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일정 동안 이 섬의 한적함을 즐기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면 좋아하는 스노클링이라도 한 번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가 그 섬에서의 느긋함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긴 한다.
다시 간다면 일주일 이상,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보다도 훨씬 오래 머물고 싶다. 돌아올 날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가 오면 좋겠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그곳을 가지 않았다. 여러 핑계가 있겠고 가지 못할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무치게 가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갔을 것이다. 언제든 갈 수 있어서 미뤄지는 면도 있겠다. 그 섬의 기억이 ‘나의 파라다이스’로 남아 기쁨을 주는 데에 만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삶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찾고 싶을 때 나는 그걸 해결할 곳을 알고 있다고 위안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