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노치안코(매 놓지 않고)

by tripall

2000년 새 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되었다. 자카르타(Jakarta) 근교에 있는 인도네시아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늘 해보고 싶었던 활동이어서 가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실제 거기서의 생활은 내 삶 중에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처음으로 혼자 살았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까지 늘 가족과 함께 생활해 왔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빠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부모님 하고 지내왔던 것보다 훨씬 불편했다. 그래서 더욱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봉사단원으로 2년간 혼자 지내다 보면 외로워서 힘들어한다고들 했는데 나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 신경 쓸 일 없이 혼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때 알았다. 가족과 함께 살았을 때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독립생활에 시행착오를 겪긴 했어도 마음의 평안에서 얻는 만족감이 아주 컸다.

2001년 1월, 조카 둘이 엄마를 모시고 인도네시아로 왔다. 한국에 눈이 많이 내려 비행기가 뜨질 못해서 예정했던 날보다 일주일 뒤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는 섬이 많은 아주 큰 나라이지만 눈이 내리는 지역이 없어서 이곳 사람들은 눈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눈을 만져본 경험이 없으니 막연히 눈을 솜사탕같이 구름같이 상상하고 있다고 느꼈다. 눈을 보기 위해 해외여행을 하기도 한다.

날씨가 그 지역 사람들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는데, 더운 지방 사람들은 사계절이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급한 게 없고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열심히 살지 않아 가난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2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보니 계절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 세월에 둔감하게 했다. 그러니 더 느긋해진다. 그러나 급하게 살진 않았어도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족들은 자카르타에서 한 시간 거리인 내 집에서 며칠 묵으며 자카르타 주변을 관광하고, 넷이 하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도 방학이라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 나 또한 시간이 자유로웠다. 일주일은 같이 다니다가 엄마와 나는 돌아오고 조카들은 유명한 관광지인 족자(Yogyakarta)까지 더 여행하기로 했다. 엄마가 장거리 여행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 우리는 두 군데 정도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이 나라에서는 지역 간 이동이 보통 여러 시간 걸린다. 먼저 세 시간 거리에 있는 반둥(Bandung)에서 이틀 묵고 바닷가 마을 빵안다란(Pangandaran)으로 갔다. 반둥에서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간 후에 버스로 두 시간 더 이동했고 거기서 해변 쪽으로 또 가야 했다. 차편을 기다리는 시간에다가 교통수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쳐서 거의 아홉 시간 걸려 해변마을에 도착했다. 다음날 하루는 주변을 구경하고 여행정보를 얻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푹 쉬었다.

이틀 묵고 나서 그린 캐니언 투어에 참여했다. 생활문화를 볼 수 있는 와양(전통 꼭두각시 인형), 끄루뿍(식사 때 먹는 과자) 만드는 곳을 방문하고, 폭포 아래 계곡에서 수영과 헤나 문신도 하고, 바뚜 끄라스에서 서핑도 해보며 하루를 보냈다.

와양.jpg 와양

그다음 날은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서 우리끼리만 정글 투어를 했다. 이름과 걸맞지 않게 낮은 산을 산책하는 정도의 투어였다. 가이드 안내에 따라다닐 때 여기저기서 사슴들이 자주 보였다. 사슴들이 나타날 때마다 엄마는 “왜 매 놓지 않고 저렇게 다니냐?”라고 반복해서 묻곤 하셨다. 눈치 빠른 인도네시아 가이드는 그 이후 사슴을 볼 때마다 먼저 “매노치안코”를 외쳤다. 사슴이 또 나왔으니 보라는 거다. 그는 ‘매노치안코’가 한국말로 사슴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날 가이드는 엄마보다 더 많이 ‘매노치안코’를 말했고 그때마다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실제로 ‘매노치안코’가 그럴싸한 이름처럼 들렸다. 인도네시아말이나 우리말로 사슴이란 단어를 서로 모르고 있었지만 그날 가이드와 우리 사이에는 통역 없이 알아듣는 새로운 단어를 갖게 되었다. 언어가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라는 점에서도 ‘매노치안코’는 충분히 언어적 역할을 했다.

우리 가족에게 친절했던 그 가이드의 성품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한국인 관광객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슴을 보면 ‘매노치안코’를 외칠 게 상상이 된다. 그들 간에는 통용되지 않는 말로 누가 더 당황하게 될지 모르겠다. 다행히 그 당시만 해도 빵안다란을 여행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긴 했지만. 사슴과 뗄 수 없이 떠오르는 이 단어를 생각하며 엄마의 기억에 미소가 더해진다. 그리고 엄마가 매어 놓고 싶었던 건 나였을 수 있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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