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2일, 티베트의 추위를 피해 비행기를 타고 중국 시안(Xi’an)으로 나왔는데 시안의 첫 느낌은 좋지 않았다. 안개가 음산하게 껴있는 데다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여기도 춥겠구나. 믿기지 않겠지만 시안공항에서 공중전화를 찾지 못했다. 결국 한 직원의 도움으로 그 사람에게 전화요금을 내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보를 찾아놓은 호텔들은 전화번호가 틀리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도미토리가 있는 호텔을 찾느라 시내를 헤매다가 날이 어두워지니 도시가 더 음침했다. 렌밍 호텔에 묵기로 했다. 학교처럼 방이 배열된 숙소를 아주 싫어하지만 히터가 작동하고 있었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감기까지 걸렸다. 밤새 두 남녀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내 침대가 문 쪽에 있어서 문만 열면 찬 기운이 확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잠겨 있었다. 티베트에서도 감기에 안 걸렸는데 따뜻한 데로 온다고 나와서 감기에 걸리다니. 누워있을 정도는 아니고 문제의 그 남녀가 함께 누워있으니 그 방에서 서둘러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시안은 진시황의 병마총(병마용 갱)으로 유명하다. 산 하나 전체에 진시황릉을 만들어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병마총에는 성을 지키는 병사와 말, 전차의 모습들을 실제 크기로 빚어 놓았다. 그 규모는 놀라웠다. 1전시실(1호 갱)에 들어서자 진흙에서 나온 뿌연 먼지가 자욱했다. 부서진 것들을 감쪽같이 붙여 놓은 병사의 형상들이 있는 반면에 머리가 없는 몸체도 많이 보였다. 손에는 모두 무기를 들고 있는 자세인데 무기는 따로 보관했는지 빈손이다. 진흙으로 만들어 구운 다음 색칠을 했다고 하지만 색깔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맨 앞은 보병 부대, 다음은 전차 부대가 있고 다른 전시관에는 기병, 궁수도 있었다. 제각각 표정이 달랐고 출신과 직급도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은 무엇과 싸우려고 하는 걸까? 진시황은 죽어서도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진시황은 불로초로도 유명하다. 세계각지로 신하를 보내 불로장생약을 구해오도록 했다고 알려졌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늙어 가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주제로 자주 다루어지듯이 죽음을 피하려는 욕망은 가진 자들이 더욱 간절한 것 같다. 아직은 노화를 늦추는 게 가능한 정도라는데, 죽지 않겠다는 그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의 엄청난 희생이 동반된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죽음이 아니라면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능의 위치가 알려지지 않도록 진시황릉 조성에 참여한 몇십만 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음침한 시안의 느낌에 버스도 한몫했다. 두 량을 이은 버스가 많이 운행되었는데 그 긴 버스 안에 전등을 켜놓지 않았다. 승차하면서 요금 낼 때만 앞쪽 전등을 켰다가 다시 껐다.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소매치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거의 9번 버스를 탔다. 요금을 내고 지갑을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 앉지 못한 상황이라 버스는 흔들리고 지갑을 배낭에 넣지 못한 채 주머니에 있는 고리를 걸어 잠가놓고 계속 신경을 쓰며 있었다. 그러다가 내릴 곳에 가까워지면서 잠시 정류장에 신경 쓰고 난 뒤 주머니 고리가 열려있는 걸 알았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뒤지면 나올 것 같은데 막상 그러진 못 했다. 이미 일부 승객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권과 큰돈은 복대에 있어서 그냥 체념한 면도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직원 한 명과 경찰서로 가서 신고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소매치기를 만났다.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메고 있는 내 배낭을 뒤진 놈을 보게 되었다. 돌아서는데 한 놈이 내 화장품 콤팩트를 들고 있었다. 딱딱하니까 지갑인 줄 알고 꺼낸 것 같다. 바로 감췄다면 나는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지갑이 아니어서 그놈도 당황했던 모양이다. 순하게 생긴 놈이 그런 짓을 하니 더 화가 났다. 그 콤팩트를 집어서 그놈을 막 때리며 욕을 했다. 가게 주인은 고작 그놈을 가게에서 내쫓을 뿐이다. 도시 전체가 소매치기를 방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이틀 그러고 나니 시안이 정 떨어졌다. 중국에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부추기는 데는 경찰의 역할도 컸다. 여행자보험을 들어서 지갑 분실에 대한 보험금을 신청하려면 경찰서에서 서류를 받아야 했는데 신고한 날 서류를 주지 않았다. 몇 번의 전화와 방문을 두 차례 더 하고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떠나는 날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신고한 날 두툼한 분실물 신고 서류철을 보았을 때 시안에서 소매치기당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경찰은 서류를 발급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 사실을 감추고 그들과 공조하는 것 같았다.
시안에 도착했을 때의 내 느낌이 맞았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역사가 있는 옛 도시를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간 건데, 역사적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을 시안에서는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