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ome here’가 ‘이리 와 봐’로 들리는 이유
여행하다 보면 각국의 화장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건강의 기본 요소라는데 여행하다 보면 ‘잘 싸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다. ‘큰 것’은 자주 몸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숙소에 있을 때 해결이 가능한 편인데, ‘작은 것’은 비교적 하루에도 몇 차례 해결해줘야 하는 생리적 욕구이다.
내가 여행한 나라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화장실 인심이 가장 좋다. 우리 화장실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변기의 물이 잘 내려가고 손 씻을 곳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조차도 사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중국 화장실이 문이 없는 거로 유명한데, 문이 있긴 한데 중간 정도까지 가린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다. 일어나면 상체가 보여서 기다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인도에서는 경사가 살짝 진 평평한 곳이 화장실이라고 했다. 앞사람이 도대체 어디서 일을 봤는지 전혀 모르겠고 나는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할지 잠깐 고민해야 했다. 인도네시아는 화장지 대신 변기 옆에 있는 호스식 수도로 처리한다. 수도형 비데이다. 물살이 세서 이용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화장실 이용에 요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남미의 여러 국가의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는 입구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내고 들어간다. 비용을 내면 휴지를 준다. 유료 화장실이어도 볼일을 보고 나서 물을 떠다가 부어야 하기도 했다. 쿠바에서는 식당의 화장실을 이용하는데도 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도 거기에 딸린 화장실 사용에 또 돈을 내야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급하면 이용할 수밖에. 더운 날씨에다가 모히토, 쿠바 리브레, 다이키리 같은 칵테일을 맛보다 보면 화장실 가는 일이 잦아진다.
면적이 넓은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다음 목적지까지 10시간 넘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 버스 안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기도 한데, 화장실 냄새가 앉아 있는 좌석에까지 나서 불쾌할 때가 있다. 그래서 화장실 없는 버스를 선호하게 되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모든 장거리 버스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경우 도중에 휴게소 같은 곳을 들른다. 남미에서는 도중에 휴게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가다가 인적 없는 곳에 정차하여 시간을 준다. 상황파악이 안 되었던 남미여행 초기에는 화장실 같은 데가 있을까 해서 몇 차례 물었다.
“¿Dónde está el baño?”(화장실은 어디에 있죠?)
보통 여행 출발 전에 몇 가지 기본적인 현지어를 적어 두고 암기한다. “얼마예요?”, “방 있나요?”, “~ 어디로 가죠?” 보다 더 요긴하게 사용하는 말이 바로 화장실을 묻는 표현이다.
그러면 남미의 버스기사들은 약속한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한다.
“Todo.”(여기 다)’
당연하다는 듯이 앞의 말 “또(To)~”를 길게 끌어 강조하며 말하는 버스 기사가 가리키는 곳은 버스 주변의 들판이다. 나의 일부였던 것을 자연으로 돌려준다는 데 불만은 없다. 문제는 가림막이 될만한 것이 없는 벌판이라는 점이다. 한국여성으로서 길러진 참을성을 발휘하여 참는 데까지 참아보다가 도저히 안 되면 가능한 한 버스에서 보이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움직인다. 혼자 여행할 때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에게 나를 꼭 기다리도록 확인시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조차 화장실 찾기가 어려웠던 곳은 티베트이었다. 도대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급해진 어느 날, 폐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곳까지 들어올 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 짐작했는데 남자들이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는 거란 생각에 당황하여 다급하게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쳤다.
“Don’t come here, don’t come here!”
그런데 남자들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내가 들어가 있던 곳 입구에 올 때쯤 나는 대충 하고 일어서야 했다. 찝찝했다. 그들은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곤 다시 돌아서 나갔다. 오지 말라는데 왜 온 거지?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티베트 사람은 영어를 몰랐고, 내 외침으로 무슨 다급한 일이 생겼다고 여겼을 거였다. ‘사람 살려’로 들렸을 수도 있고. 그러니 도와주려고 더 서둘러 소리 나는 쪽으로 왔을 거다. 통로가 좁고 쓰레기들이 널려 있지 않았다면 뛰어서 왔을 것이다. 내가 찾은 완벽한 장소에 대한 믿음을 갖고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볼일을 봤다면 편하게 마무리되었을 일을.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편안히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화장실을 이용하려고만 하면 큰 어려움 없이 화장실을 찾을 수 있고, 일 보고 일어서면 앞이나 옆 사람과 눈 마주치는 황당함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휴지도 넉넉히 비치되어 있고, 겨울엔 화장실에 난방장치를 해놓아 따뜻하기도 한데, 게다가 무료다. 아직까지 난 우리나라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돈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청소가 잘 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평가하는 내 개인적인 기준의 차이에 따라 화장실을 이용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뿐이다. 다른 선택권을 금방 찾을 수 있기에 이런 거부권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을 거라고 기대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비난한다면 배낭여행 하기가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