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하늘에 가까운 곳이다.
비행기로 라싸(Lhasa)에 도착하면 높은 고도에서 겪게 되는 고산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나도 도착 첫날은 손이 떨리고 어지러워서 하루 종일 쉬었다.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다음날엔 고도에 적응이 되었는지 별문제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증상이 있을 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고산병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티베트는 해발고도가 4천 미터가 넘는 지역이 대부분일 만큼 고지대에 있다. 그래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높은 지대라 그런지 햇빛이 무척 강하다. 내가 여행했던 늦가을(1998.11.14.~12.2)에도 볕이 좋아 밖에서는 추위를 덜 느낀다. 그러나 그늘로 가면 금세 추워진다. 건조해서 식물이 다양하지 않고 잘 자라지도 못한다.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고 대부분 키 작은 관목이나 풀들이 있다. 라싸공항을 나오자마자 갈색빛 나는 높은 산들이 둘러서 있는 풍경을 보았을 때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자주 보는 쾌청한 날씨인데도 해질녘이면 노을로 물들지 않고 해가 그냥 져버리는 것도 건조해서 그런 것 같다.
열악한 자연환경이지만 거기에 동화되어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티베트인들은 신과 가깝다. 하늘과 가깝게 살면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높은 지대에 살면서도 더 높은 곳에 사원들을 짓고 더 높은 곳에 올라 기원하는 걸 보면. 절도 많고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기원을 담은 행동들도 많다. 여러 색깔로 된 소원깃발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풍경은 티베트를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한 손엔 염주를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경문을 외는 사람들, 몸을 던져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 그 기원의 흔적으로 반지레한 바닥돌, 계단, 손잡이에는 그들이 딛고 잡고 한 무수한 시간이 묻어 있었다. 라싸 시내 중심에 있는 조캉 사원은 삶과 기원의 중심이기도 하다. 해 질 무렵 많은 사람이 조캉 사원 둘레를 시계 방향으로 도는 시간에는 길을 거슬러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 행위라기보다 일상적인 행동으로 이때만큼은 귀천의 구분이 없어 보였다.
매장이나 화장이 용이하지 않은 척박한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정착된 문화이겠지만 티베트에는 조장 풍습이 있다. 시신을 새에게 주는 것이다. 평생 종교적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죽은 몸조차 새에게 보시함으로 다음 생이 더 낫기를 기원한다. 새가 자신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리라는 새에 대한 믿음도 있는 것이리라. 여러 나라에서 새의 의미는 땅과 하늘, 인간과 신,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조장할 때 시신을 그냥 내놓는 것이 아니라 새들이 먹기 좋게 난도질한다고 들었다. 잔인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런 문화가 천년 넘게 이어져 왔다면 거기에서 뭘 느끼게 될지 궁금했다.
라싸에서 조장하는 곳에 가는 투어를 신청했다. 네 명이 지프차 하나를 타고 멋진 자연경관을 구경하며 몇 시간을 달려 티드룸 수녀원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조장터에 가까운 드리궁틸 사원으로 산을 더 걸어 올라갔다. 거기서 그날 밤을 묵었다.
다음 날 조장하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있는 게 아니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혼자 헤매다가 커다란 독수리 무리를 보고 겨우 찾아갔다. 너른 터에 울타리가 쳐 있고 기원문이 적힌 천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중요한 의식에 구경꾼으로 있는 건 예의가 아니겠고 방해가 될 듯도 싶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조장터 안에 백 마리도 넘을 독수리들이 보였고 사람들이 망치로 뼈를 부수고 있었다. 중요한 의식은 이미 끝난 것이다. 독수리들만 더 먹을 것이 있나 살피고 있을 뿐 긴장감은 없었다. 한쪽에선 따뜻한 햇볕 아래 야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조장 절차가 모두 끝난 건지 대야에 뼛가루를 담아 안으로 들어갔다. 30분도 안 되게 보다가 나도 내려왔다.
라싸에서 이곳으로 오가는 데 산길이 많아서 지프차도 배겨 나질 못했다. 결국 타이어를 갈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차 밖으로 나오자 주변은 온통 똥밭이었다. 화려한 색줄을 달고 있는 야크들을 티베트에선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똥의 주인일 듯싶다. 건조한 날씨로 똥들은 이미 다 말라 있었고 형태만으로 똥이란 걸 증명하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면 똥인지 마른풀인지 모를 정도인데도 나는 똥모양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그런데 같이 투어하고 있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남녀는 일상적인 보폭으로 걸었다. 그들도 똥을 보았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걸 보고 좀 부끄러웠다. 그런 곳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똥 밟았을 때의 끈적거리는 불쾌감이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자꾸 피하게 되는 걸 어쩌지 못했다. 똥을 피하라는 명령은 똥과 풀이 별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뇌가 아닌 다른 쪽 뇌에서 작동하나 보다.
두 사람이 더 멋있어 보였던 것은 타이어 가는 일을 운전사가 아니라 직접 하고 있었고 여자도 능숙하게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도 똥은 있었다. 내 발은 그 땅에서 이질적이었고 그 상황에서도 역시 구경만 하는 아웃사이더였다. 타이어를 갈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다. 내가 받아왔던 교육은 여행에서는 그리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여행에서 새롭게 만나는 것들이 나의 생각을 더 확장시켜서 그래서 여행이 좋다.
티베트에서 두 달 정도 있으면서 마음공부라도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위는 더 심해졌고 결국 18일 만에 티베트를 떠났다. 마음공부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들을 보면 자꾸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다. 내 연민의 대상이 티베트인지 티베트 사람인지 아니면 나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하게 티베트에서 얻어온 것은 양 볼에 난 홍조 자국이다. 햇볕이 있고 없는 온도 차가 심해 얼굴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그런지 대부분 티베트 사람들은 볼에 둥그런 홍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매표소에 있는 직원들은 용케 내가 외국인인 걸 알아채서 현지인과 다른 몇십 배나 비싼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떠날 즈음에는 티베트 사람처럼 보였을까?
마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