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의 마술

by tripall

인도를 함께 갔던 친구와 아프리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미지의 장소인 만큼 가고 싶었고 동시에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황열병, 콜레라, 말라리아, 에이즈까지. 예방접종과 약으로 준비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렸다. 우리가 선택한 여행은 5주 동안 동아프리카 나라들을 트럭 타고 다니며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거였다. 외국 사람들과 다니다 보면 영어가 좀 늘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이 우리를 포함하여 일곱 명이나 되다 보니 그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멀기는 했다. 1996년 12월 28일 오후 여섯 시에 김포공항을 출발해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중간 기착지에서 보낸 시간을 빼고 25시간을 넘게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케냐로 다가갈수록 비행기 안에는 흑인들의 수가 늘어났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흑인들보다 더 예뻐 보였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한 미니버스는 다시 탄자니아로 향했다. 국경을 통과하고 아루샤에 도착해서는 개별적으로 호텔을 구하라고 했다. 미니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여행자들은 우리와 같은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한 게 아니고 교통편으로 그 버스를 탄 거였다. 도착 첫날부터 정해진 일정이 있었는데 이상했다. 그날이 일요일이기도 하고 여행사 현지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우리 일곱 명은 한 호텔을 정해 묵기로 했다.

탄자니아로 온 것부터 우리의 일정과 다른 것이었는데 정작 담당자와는 연락이 되지 않으니 사기를 당한 거라고 생각하며 누가 나쁜 놈인지도 모른 채 싱숭생숭한 밤을 보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를 찾아다녔다는 여행사 직원이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왔다. 미니버스 운전사가 우리를 데려다줄 곳을 잘못 알았던 거였다. 원래 일정과는 달리 탄자니아에 오는 것까진 맞는데 우리는 마사이 마을까지 가야 했었다. 먼 아프리카에 온 첫날부터 일이 어렵게 되어 간다 싶어 걱정이 많았는데 모두들 한숨 돌렸다.

그날 오전에 트럭이 우리가 묵은 호텔로 왔다. 핑크빛 트럭이었다. 여린 색깔만큼 연약하여 고장이 자주 나서 여행 내내 엄청 말썽이었다. 덩치는 커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차체가 높기도 했는데 우리 발아래가 짐칸이었다. 텐트와 요리도구 등 장비들을 넣어두는 곳이다. 어렵게 만난 트럭여행단은 모두 열네 명, 외국인 일곱명은 거의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이었고 이스라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트럭은 양옆으로 두 사람씩 앉게 했는데 외국인과 앉도록 배정했다. 차가 달릴 때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이 매서운데 그래서인지 여성을 안쪽에 앉도록 배려했다. 내 옆에는 스무 살을 갓 넘었을 것 같은 뉴질랜드 사람 데이빗이 앉았다. 인사를 나누는데 발음이 다르고 말이 빨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 일곱 명은 이미 4주 동안 함께 여행해서 아프리카 남쪽인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를 거쳐 올라와 우리랑 만난 거다.

트럭 탄 첫날부터 종일 이동해서 오후 늦게 한 마을에 도착했다. 어느 쪽으로 해서 무슨 캠프촌에 온 건지 모르겠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세렌게티 국립공원을 갔으니 그 주변 어디일 거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가 잘 텐트를 쳐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인데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코비가 텐트 치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아프리카에서의 첫 텐트를 쳤다. 한 달 남짓 나와 친구의 잠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텐트 바닥에 시트를 깔고 깔판도 깔고 나니 괜찮은 집이 되었다. 텐트 안에 짐을 풀었다.

여행 내내 텐트를 치고 걷고 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정말 집이었다. 갖고 다닐 수 있는 집, 매력적이다. 그래서 캠핑카 소유자가 늘어나는 걸 거다. 같은 장소에서 이틀 묵을 때면 그 텐트에 더 정이 가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우리는 현지인 요리사 두 명과 같이 다녔다. 캠프촌에서 먹는 아침과 저녁을 이들이 준비했고 점심도 이동하다가 식사할 만한 장소에서 쉬면서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요리사까지 있다고 해서 대단한 음식을 먹은 건 아니다.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첫날 저녁식사는 맛이 없었다. 빵은 너무 딱딱했다.

저녁식사도 별로이고 잠자리도 낯선 텐트에서의 첫날밤이 울적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식사 후에 모임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저 뿔뿔이 흩어져 이른 잠을 청하거나 캠프촌에 있는 바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코더 소리가 났고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 소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코비가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음을 들으면 다 맞춰서 불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리코더를 다뤘다. 그렇게 우리는 리코더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야외에서 아프리카의 밤을 보냈고 한층 따뜻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밤의 분위기를 바꾼 리코더와 코비의 매력에 빠져, 여행할 때 갖고 다니기 편한 악기를 배워놓으면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못 하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니까.

이 외국인 일행들은 우리와 일주일을 같이 여행했다. 그러곤 호주사람 두 명만 남아 나머지 4주간 일정까지 더 우리와 있었고 다섯 명은 헤어져야 했다. 특히 코비와 헤어지는 게 많이 아쉬웠다. 세렌게티와 웅고롱고로 같이 ‘동물의 왕국’에 주로 나오는 국립공원들을 다니면서 코비와 데이빗은 동물들을 잘 찾아내어 우리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들이 없을 때는 늘 보던 동물들만 보게 되니 심심했다. 연못에 몸을 묻고 있다가 물을 뿜어내는 하마들을 찾아내고, 나무 위에 먹다 남은 임팔라를 걸쳐 놓고 편하게 낮잠 자는 표범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두 사람 덕분이었다.

우리말로 뭐라 부르는지도 모를 많은 동물들을 보았다. 펠리컨, 플라밍고, 팅커버드, 황새, 하마와 공생하는 흰 새 등 아주 많은 종류의 새, 사자가 잡아먹고 있는 버펄로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는 하이에나, 눈물 자국으로 표범과 구별되는 날렵한 치타, 뿔과 엉덩이 색으로 종류가 다른 가젤들, 여러 이름의 영양들, 지평선을 다 차지할 정도로 많은 수가 대이동하고 있던 영양(wildebeest)들, 토끼 같은 동물을 먹고 있던 원숭이, 호수에서 물 마시고 있는 얼룩말, 위아래로 두 개의 뿔이 나 있는 코뿔소, 구경하고 있는 차들 사이로 지나가는 코끼리 무리, 짝짓기 하려는 코끼리 한 쌍, 무리에서 나와 5일간의 밀월여행을 즐기고 있는 암수 사자 두 마리, 새끼를 안고 있다가 등으로 들어서 옮기는 어미 고릴라, 정말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새로운 것, 더 강렬한 것을 찾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텔레비전에서는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면 잔인해서 손으로 가리게 되었는데 정작 사파리를 할 때는 사냥 후에 먹고 있는 장면보다는 사냥하는 긴박한 장면을 보고 싶어 했다.

5주간의 트럭여행으로 영어실력이 나아졌을까 궁금증이 남을지 몰라 여행 끝나는 날의 에피소드를 말하겠다. 끝까지 여행을 함께 했던 호주사람 존과 캐시가 나이로비 공항까지 배웅하러 왔다. 이번 여행으로 호주인의 영어발음이 알아듣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에이/ 발음을 /아이/로 하는 게 가장 혼동스러웠다. 시드니 사람인 캐시는 그나마 적응이 되는데 퍼스 사람인 존의 발음은 그렇지 못했다. 헤어지는 인사로 존은 악수하며 “Have a nice day.”라고 말했는데, /데이/를 /다이/라고 하는 데다가 이상하게 /나이스/를 발음해서, 나는 “Die?”(잘 죽으라고?) 하고 되물었다. 마지막 날까지 헤매게 하는 호주식 영어였다. 그래도 다음에 어떤 호주사람이 이런 인사말을 한다면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5주간 타고 다녔던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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