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의 개들

by tripall

인도여행은 큰 충격이었다. 한 달간 여행한 후 집에 돌아와서 거의 한 달 동안 기운을 못 차린 채 누워 지냈다. 여행 중에 배설기능이 원활치 않아 고생한 후유증이 있긴 했으나 그것보다는 정신적인 변화를 감당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성공을 위해 하나의 길만을 제시해 왔던 세상에서 ‘빨리빨리’ 정신으로 삼십 년을 살다가 인도에서 전혀 다른 삶들을 접하고 난 후 나의 조급증은 점차 느슨해졌다. 성공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생각도 그때부터 할 수 있었다. 앞사람들이 가리키고 있는 그 길이 모두에게 적합한 길이 될 수는 없다. 하나의 이정표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학교교육을 통해 비슷비슷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사회에 나온 나에게 인도는 행복의 다양한 선택지를 보게 한 전환점이 되었다.

인도의 일상에서 만난 생소함은 많았다. 글자가 달라 버스에 쓰인 행선지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인도의 첫날 아침을 환영한 건 봄베이(뭄바이)의 숙소 가까이에서 울어대는 까마귀들이었다. 풀어놓고 기르는 돼지와 염소들, 길거리에 잔뜩 있는 똥들, 수돗물에서 벌레가 나오기도 하고, 쟁반 대신 바나나잎에 나오는 음식을 맨손으로 먹는 사람들, 강한 향신료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는 인도인들, 교통사고로 막혀있는 도로에서 버스가 빠져나가는 데 함께 참여하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일상을 같이 하는 다양한 신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 특히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의 발생지이기도 하고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상존하는 신들로 넘쳐나는 나라이다. 인도인 대부분이 믿는 힌두교 자체가 다신교이기도 하고 포용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길에서 머리에 터번을 쓴 건장한 시크교도들이 눈에 잘 띄었는데 그들이 칼을 갖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여러 생소함 중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모습에서였다. 바라나시(Varanasi)는 힌두교의 성지로 이 도시를 흐르는 갠지스강은 성스럽게 여겨진다. 갠지스강물에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시면 죄가 씻겨진다고 믿었고, 시체를 이 강물에 던지기도 한다고.

인도인들이 갠지스강에서 맞는 아침을 보기 위해 해뜨기 전에 보트를 타고 투어를 했다. 다른 보트로부터 기원하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추운 아침인데도 뭔가를 읊조리며 몸을 씻는 사람들, 강물을 마시며 기도하는 사람들, 옷을 돌에 쳐대며 빨래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러고 나서 강가로 나와 화장터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시신이 들것으로 들려져 왔는데 관이나 천으로 덮은 것이 아니라 장작 사이에 그대로 보였다. 들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간단한 의식이 있었다.

‘죽은 이와 관계된 이가 화장할 준비를 해놓은 시신 머리맡에서 주문을 외우며 물을 먹기를 다섯 번 정도 하고 나서 불씨를 받아 시신 주위를 다섯 번 돈 다음 점화한다. 장작더미 위에 시체 그리고 그 위에 또 나무가 올려져 있다. 점화한 후 한 아이가 옆 화장터에 시체를 태우고 남은 숯들을 태우려는 시신 쪽으로 하나씩 옮겨 놓는다. 불꽃이 커지고 있었다. 그 옆의 화장이 끝난 곳에 다 타고 남은 재는 싹싹 쓸어 담아 강에 쏟았다. (1994.1.10. 일기에서)’

투어로 온 거라서 일정에 맞춰 일어나야 했다. 시신이 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다시 화장터로 갔다.

‘강변을 따라 얼마를 걸어 화장터에 도착했다. 한 구의 시체가 준비됐고 어제의 순서로 점화됐다. 정중한 옷차림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인도인들은 화장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았다. 그곳에서 웃고 얘기하고 구경하고, 개들은 화장이 끝난 곳의 따뜻한 기운에 누워 잠자고.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나무가 타는 동안 시체를 다 태우려고 그슬린 시체를 때려 부수려고 한다. 시체를 싣고 온 들것에 쓰였던 대나무가 요긴한 도구가 돼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하고 장작들을 잘 타도록 옮기는 데도 쓴다. 태워진 다리는 유난히 길어 보였고 발치에 불을 피워선지 머리와 상체는 늦게 탔다. 윤곽을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을 대나무로 칠 때 골수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어느 부분에선가 보이는 흰 빛은 뼈였다.

3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시신을 다 태우려는 가족들은 열심히 장대를 움직였다. 아마도 그들은 죽은 사람이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해탈은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거고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면, 그 인연을 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을 만들어 이 세상과의 인연을 계속 잇고자 하지 않는가 보다. (1994.1.11. 일기에서)’

화장을 하는 건 부자들만 가능하다고. 가난한 사람들은 장작을 살 돈이 없어서 강으로 그냥 시체를 던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이것은 금지된 행동이다. 그래도 성스러운 강에 시신을 몰래 던지는 일이 있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화장할 수 있는 전기장치시설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화장하는 관례가 어느 정도 확산되었지만 30년 전만 해도 대부분 매장을 했기에 화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화장하는 인도인들의 무심한 행동에서 그렇게 느껴진 건지, 시신이 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나 뼈와 골수를 본 것이 끔찍스럽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이해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일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아주 생소하긴 했다. 우리의 장례식이나 매장하는 장소에서는 슬픔, 침묵, 형식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사람들과 분리되는 아주 불행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면, 인도인들에게 죽음은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듯 그렇게 갈 곳으로 간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인도의 개들조차도 이것을 알고 있다는 듯 거리낌 없이 화장터의 따뜻한 기운에 밤새 느꼈던 추위를 녹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 개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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