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은 갑작스럽게 너무나 빠르게 결정되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인도를 여행하려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초등학교 여교사 두 명이 하는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티켓팅과 인도 비자받는 것까지 출발하기로 한 날에서 한 달도 안 남기고 모두 처리해야 했다. 인도는 인더스강, 갠지스강 문명으로 기억되어 고대문화유산이 있고 고유의 문화가 독특할 것 같아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첫 해외여행지였던 보라카이를 다녀온 지 일 년 후인 1993년 12월에 한 달간 일정으로 인도로 출발했다.
실제 인도는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오랜 문명국답게 유적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술성은 아주 훌륭했다.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단지 문화유산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한국에서 몇십 년 살아온 나에게는 이들의 삶이 우리 한국인들과 상당히 달랐다. 찬란한 문명을 보유했던 나라의 후손들이 아직도 원초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유명한 명상센터 같은 곳은 전혀 가지 않았어도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나라였다.
인도에는 찬란한 유적들이 그냥 널려 있었다. 너무 많아 다 보전할 시설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관리자도 보호시설도 없는 유적지가 많았고, 유적으로 남아 있는 건물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호받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런 유적들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특히 남인도의 함피(Hampi)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였다. 대제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왕궁들만이 아니라 신전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석탑이나 돌기둥의 조각들을 보면 복잡한 문양들을 표현하고 있는 섬세함과 생동감이 돌로 만든 게 아니라 비누를 갖고 작업한 것 같았다. 거대한 돌 하나에 무수한 조각을 해놓은 것도 많았다. 그런 놀라운 유적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에 또 놀라게 된다. 인도 선조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는 함피 말고도 다른 유적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 정수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다고 하겠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곳은 카주라호(Khajuraho)이다. 여기는 미투나 상이라고 해서 남녀가 성행위 하는 모습을 신전 외벽 가득 조각해 놓아 유명해진 곳이다. 사원 외벽에,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입체감 있게 조각되어 다채로운 신화를 표현하고 있는데 빽빽하게 가득 찬 부조들이 압도적이다.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조각을 들여다봐도 완전한 작품들이었다. 여러 문양, 동물상이나 신들의 모습들이 있기도 한데 독특한 것은 다양한 성행위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 부부생활을 한 사람조차도 배울만한 자세를 찾을 수 있을 성싶다. 신전들이 건축된 지 천년도 넘었고 조각상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어도 표현력은 전혀 상쇄되지 않았다. 성에 대해 폐쇄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이라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민망한 포즈들이 많았지만 그 조각들의 예술성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선글라스로도 감추지 못하는 시선 대신 사진기를 바쁘게 들이대었다. 카주라호에는 이십여 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는데 모든 신전에 미투나 상이 있는 건 아니다.
그 당시 들은 설명은 샥티라는 여자가 성교를 통해 고행하는 이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다는 거였다. 성행위도 깨달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의외였다. 부조에 성행위를 돕는 사람들이 함께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많은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남근을 상징하는 탑이라든가 바위, 여근을 나타내는 바위나 골짜기처럼 풍요를 기원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샥티는 우주적 원초 에너지를 말하며 여성적 창조력, 우주적 자유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성, 에너지, 여성성, 창조, 풍요, 우주, 자유. 이렇게 연관되는 기원의 마음으로 성적 행위를 조각한 사원들을 조성했으리라 짐작한다.
몇천 년 동안 존속해 온 미투나 상이 충분히 볼만하다 해도 신전들 자체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각으로 가득한 여러 사원이 군데군데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가까운 서쪽 그룹 사원들은 걸어서 다닐만한데 동쪽과 남쪽 그룹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면서 보았다.
사원들을 보는 즐거움 외에 내가 카주라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은 마을이 주는 편안함이다. 늦은 시간에도 밖에 나와 있을 수 있었고,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 공놀이하는 아이들, 종을 울리고 사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 명상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했던 기념품 가게 주인, 그 가게에서 산 레터오프너의 나무향, 버스를 기다리며 마신 짜이(인도 밀크티). 이런 것들에서 느낀 여유로움이 편안했던 것 같다.
카주라호의 기억 때문에 작은 마을을 좋아하게 된 건지, 원래부터 내가 작은 마을을 좋아했던 건지 확실치 않지만 여행하다가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마을에 가게 되면 더 오래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