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기 챌린지

by tripall

세계 지도에서 우리나라를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국토가 아주 조그맣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사방이 막혀있다는 것까지 떠오른다면 답답함이 든다. 동, 남, 서 모두가 바다이고 북쪽은 육지이지만 오히려 그 바다보다도 더 차단되어 있은 지 70년이 넘었다.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다.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섬이 아닌데 이렇게 막혀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차를 끌고 국경을 통과하여 이웃한 나라에서 식사하고 오기도 하고, 매일 국경을 오가며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볼 수 없는 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1996년 7월에 떠나는 태국 여행에서 국경 넘기 챌린지를 계획했다. 들어가는 곳은 태국 방콕이고 나오는 곳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정해서 항공권을 구입했다. 들고 나는 곳이 다를 경우 당연히 항공권 가격은 올라간다. 비용을 아끼려는 배낭여행자로서 굳이 그렇게 항공권을 끊은 것은 오로지 육로로 국경을 넘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3주간의 여행 일정도 태국 관광이 주이고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하루 남짓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말레이시아 관광까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국여행은 다채로워서 재미있었다. 외국인으로 북적거리는 카오산 로드와 여러 가지 거리 음식들, 수상 시장, 우리나라에는 아직 코인 빨래가 없었던 당시에 건조까지 가능한 빨래방 이용하기, 현지인과 데이트하는 서양 남자들, 방콕에 있는 화려한 궁궐을 구경하는 중에 우리 집 앞집에 사는 아저씨와 아줌마를 만나기도 하고, 참여한 투어에서 여행사와 말썽이 생겨 관광경찰에 신고하는 등 3주 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같은 아시아라고 해도 태국인은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라 음식 문화, 궁궐 양식, 불상의 모습 등 우리와 다른 면들이 많았다. 관광 산업이 태국의 주요 사업인 만큼 관광과 관련한 인프라는 우리보다 더 발전되었다. 항공권과 투어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여행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많은 투어 프로그램, 다양한 숙박 시설, 국제 전화 시설 같은 여행자를 위한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관광경찰이라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뒤에 생겼으니까.

특히 치앙마이에서의 밀림 투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코끼리를 타보고, 뗏목 래프팅도 하고, 거머리에 물리지 않으려고 담뱃진에 담근 양말목을 바지 위로 올려 신은 채 질펀한 밀림을 다니고, 고산족이 사는 곳에서 하루 숙박한 경험들이 우리나라에선 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고산마을의 카렌족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 공통점들이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함께 여행한 초등학생 조카는 그 아이들과 금세 어울려 놀았다.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여행도 보통은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계획한 대로만 다니는 것이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의 맛을 방해하는 것 같긴 하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울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서 대충의 흐름만 잡아 왔는데 방콕에서 여행사와의 분쟁으로 하루 더 묵게 되고, 코피피로 가려던 게 비가 계속 와서 푸껫에서 또 하루 더, 그러다 보니 쿠알라룸푸르로 여유 있게 갈 상황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국경이 가까운 태국의 남쪽을 여행하고 있긴 해도 쿠알라룸푸르는 국경에서도 한참 더 아래로 가야 해서 말레이시아에서 하루도 관광할 시간을 낼 수가 없게 되었다.

묵고 있던 섬 코피피에서 작은 배를 타고 크라비로 나왔는데 그날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버스는 이미 없다는 거였다. 오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정보가 많지 않았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몇 개의 여행사를 다니며 확인한 후 현지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크라비에서 하루 체류하고 다음 날 미니버스로 국경도시인 핫야이까지 네 시간 반, 거기서 다시 열 시간 걸려 밤 열한 시쯤에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택시를 타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 출발이 아침 여덟 시 반이어서 공항에서 있기로 했다. 에어컨 바람에 추워하며 공항 의자에서 선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부터 출국수속을 밟았다.

처음 온 말레이시아인데 버스와 택시, 공항만 있다가 가는 것이다. 버스로 오면서 식당을 이용하기는 했다 해도 이 나라의 맨땅을 밟은 건 모두 합쳐서 몇 분 정도였을까? 출국을 하루 뒤로 미룰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려면 그 변동사항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먹힐 수도 있을 일이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방콕을 경유하는 것이었다. 코피피에서 방콕으로 돌아가도 쿠알라룸푸르에 오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렸을 테고 방콕으로 갔다면 시간 여유는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미련스럽게 했던 것은 단지 육로로 국경을 넘는 체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 경험을 위해 이동하느라 하루를 소비하고 비싼 항공권을 구입해야 했던 손해에도 불구하고 처음 하는 그 체험에 대해 선명히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일기장에는 말레이시아 입국심사가 ‘형식적인 듯하고 허술해 보인다’라고 쓰여 있다. 태국 출국심사 때 버스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고 가 말레이시아 입국심사 때 또 내려서 수속을 밟았다. 우리나라에서 해볼 수 없는 바로 그 경험이었다. 국경에 있는 출입국관리소는 공항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항에서 느끼는 위압적인 분위기가 없다. 더 일상적이었다고 할까. 출입국관리소 주변에 시장이 있고 식당도 있고. 입국심사 후 바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환전이 가능했다. 환율이 좋을 거란 기대는 않는다. 돈마다 왕이 그려져 있는 태국 돈에 익숙했던 터라 다른 화폐를 보니 새로울 뿐이다. 두 나라에 시차가 있어 국경을 통과하자 버스기사는 어느새 시계를 한 시간 빠르게 바꿔 놓았다. 이런 소소하지만 색다른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국경 넘기 챌린지는 해냈다. 그게 하루를 다 버릴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일인가를 계산하기는 좀 복잡하지만. 사실 그 이후의 여행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우리나라만큼 막혀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여행자가 나처럼 단지 육로로 국경을 넘기 위해 무모하게 도전하는 일이 자꾸 반복되기 전에 북으로의 통행이 이뤄진다면 참 좋겠다. 그렇다면 비행기가 가는 곳을 기준으로 여행일정을 계획하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애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이 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꿈. 아시아의 한끝에서 철도와 버스로만 몇 날이고 몇 달이고 가다 보면 유럽의 한끝에 도달하는 가슴 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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