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와의 여행

by tripall

인도네시아 동깔리만탄을 여행한 후 따라깐(Tarakan) 섬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국경을 넘어 말레이시아 따와우(Tawau)로 들어간 것은 2002년 1월이었다. 보르네오섬에 있는 말레이시아 영토 중 사바지역에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코타키나발루로 유명한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작 세 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홍콩의 건물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숙소는 대부분 건물의 2층이나 3층에 있었다. 중국계 사람들이 많았고 한자로 쓰인 신문들이 보였다. 말레이시아의 공영어인 말레이어는 인도네시아어와 거의 비슷해서 서로 말이 통한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언어를 한꺼번에 일컬어 마인어라고 한다. 여기는 말레이어도 중국어 발음하듯이 한다. 도로시설이라든가 버스들이 인도네시아보다 체계적이었다. 보르네오섬 지역은 말레이시아 본토와는 달리 취급되고 있다고 하는데도 인도네시아보다는 더 개발되어 있었다.

따와우에서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슴뽀르나(Semporna)에 도착했다. 다이빙 지역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파단 섬(Pulau Sipadan)에 들어가려면 허가가 있어야 해서 섬에 있는 리조트의 숙박비, 스피드보트비까지 패키지로 슴뽀르나에서 신청해야 했다.

시파단 섬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별로 특이한 게 없다. 그러나 바닷속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이 섬에서 10미터 정도만 벗어나도 급격하게 바닷속이 깊어져, 깊은 물에 사는 동물들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스노클링을 할 때면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가서 한다. 그런데 이 섬에서는 숙소 앞으로 걸어 나와서 스노클링 했는데도 다양한 동물이 보였다. 작은 상어를 본 것도 여기서다. 가파르게 깊어지는 곳도 보였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더 깊이 들어가서 많은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빙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밤에 바닷가 투어에 참여했는데 크고 사납게 생긴 게가 다니기도 하고 거북이가 육지로 올라와서 알을 낳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 번에 백 개 가까이 낳는다고 한다. 거북이로서는 남몰래 중요한 일을 하려고 밤에 올라와 생명창조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랜턴을 비춰가며 알 낳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편치 않았다. 나에게는 처음 보는 신기한 구경이었지만 목을 움츠리고 있는 거북이에게는 엄청난 공포였을 것이다. 이런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섬의 독특한 바닷속 환경 때문일 것이다. 거북이를 구경하느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말이 들렸다. 다이빙하기 위해 네 명이 한 팀이 돼서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부자간인 두 사람과 교사라고 하는 두 사람이었다. 이미 그 섬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고 몇 차례 다이빙을 하고 나니 싫증이 난다며 섬에 갇혀 있는 걸 답답해했다. 두 사람은 내가 섬에서 나갈 때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중년남자 두 사람이 결정한 일인데 나가고 싶으면 나가면 되지 하며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함께 다니면서 이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절실히 느꼈다.

두 사람은 친구지간인데도 의견이 사뭇 달랐다. 숙소를 구하는 것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뭐 하나 간단히 의견조율이 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외국어를 못해서 내가 통역 역할을 하며 모두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갑자기 두 사람의 가이드가 돼버린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라면 여행을 결정하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낯선 두 사람과 갑자기 동행하게 되면서 나의 여행이 일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혼자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불편함이 더 컸을 것이다. 나 혼자서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면 되는 일들이 매번 두 사람 의견을 들어가며 합의점을 찾으려고 애쓰던 나의 인내심은 점차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틀째 되는 날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새어 나왔다. 결국 두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차편을 태워주고 나서 혼자 남게 된 나는 그분들에게 미안하면서도 아주 홀가분했다.


혼자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고 단정해서 말할 순 없다. 여행기간이 긴 편이라 함께 여행할 친구들이 없었다. 해외여행 초기를 빼고는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다녔다. 그러다 보니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함께 하는 여행을 거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친구가 여행 가자고 제안하면 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거의 찬성하는 편이다.

혼자 여행할 때 제일 불편한 건 밤 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거다. 춤추러 가고 싶기도 하고 술 마시러 가고 싶기도 하지만 혼자 갈 생각은 없다. 보통은 저녁 먹고 숙소로 들어온다. 꼭 보고 싶은 공연이라면 밤에 하는 경우여도 보러 가긴 하는데 그런 상황은 드물다. 숙소로 와서 씻고 빨래하고 내일 일정 생각하고 일기 쓰고 그러면 시간이 훌쩍 지나 열두 시가 넘곤 하지만 비슷비슷한 저녁 일과라 재미가 적다.

밥을 계속 혼자 먹는 것도 심심하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음식을 이것저것 먹어보는 재미를 즐기지만 긴 여행에서 늘 혼자라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식당을 선택할 때는 사람이 많은 곳이 맛있을 것 같긴 한데 들어가기가 꺼려지고 혼자 먹기에 편한 좀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여행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이 반가운 것은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때는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이다. 혼자만 감상하기에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같이 눈에 마음에 저장하고 싶어진다. 그토록 아름다운 순간에 외로움을 느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나의 외로움을 자극했다고 말하기보다 아름다움이 베풀고 나누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을 불러온다고 표현하고 싶다. 같은 파장의 에너지가 어울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같이 여행하면 물론 여행경비도 덜 든다. 그런데 이렇게 몇 가지를 빼면 혼자 다니는 게 엄청 편하기는 하다. 모든 결정을 나 혼자 하는 것이어서 즉흥적으로 하게 되는 일도 많다. 숙소를 예약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지역을 가게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 날짜에 거기에 도착해야 하는 얽매임이 싫어서다. 그래서 혼자일 땐 여행 일정이 훨씬 제멋대로가 된다. 같이 또는 혼자 하는 여행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결혼한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혼자 사는 사람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시파단 섬에서 두 번째 날, 알을 깨고 나온 거북이 새끼들이 본능적으로 갖은 힘을 내어 바다를 향해 어기적거리고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태어나자마자 살기 위해 바다를 향하는 그 길이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곧 새들이 날아와 여리디 여린 거북이들을 채어갔다. 가까스로 물속에 들어간다 해도 거기서도 잡아먹혀 생존율이 매우 낮다고 한다. 10%조차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의 초년기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어미 거북은 밤에 해변으로 나와 알을 낳고 모래로 덮어놓고 그냥 바다로 떠나버리고, 그 알들은 햇볕으로 부화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기억이 그 새끼들에게 남아 어미가 되었을 때 자기가 태어난 모래에 와서 알을 낳는 것일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경이로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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