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by 이지우

나는 지금 드넓은 바닷가에 서있다. 아무 무늬도 없는 베이지색의 드레스가 바람을 타고 힘없이 하늘거리고, 맨발의 사이로 크고 작은 입자의 모래들이 가득 파고드는 것을 느낀다. 나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노을을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다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린다. 눈이 더 이상 저 많은 빛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눈을 힘주어 감았다 뜨니, 문득 모래사장을 끝없이 내리치는 파도를 발견한다. 작은 파도가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더니, 모래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하얀 거품들과 함께 부서지고 만다. 어떻게든 올라오려는 듯, 크고 작은 파도는 넘실대며 올라오다가 부서지고, 올라오다가 다시 부서진다.

나는 하나하나 부서지는 이들을 측은히 쳐다본다. 그들의 몸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장면을 흐릿한 눈에 최대한 세세히 담아본다. 나는 고개를 숙여 파도와 눈을 맞춘다.

몸이 조각조각 부서진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하여 순간 생각한다. 모래로 일부가 흡수되어 영원히 잠드는 건가, 그렇다면 그 남은 일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공기 중에 흩어져 구름 위로 천천히 올리워질까. 몸이 조각조각 부서진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하여 순간 생각한다. 모래로 일부가 흡수되어 영원히 잠드는 건가, 그렇다면 그 남은 일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공기 중에 흩어져 구름 위로 천천히 올리워질까.

어쩌면 그 파도들은 아까 전 몸이 부수어져 죽어버렸던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잔해를 보고, 솟아나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몸도 산산이 조각내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보며 결론짓는다. 파도란 슬픔의 연속이라고, 찰박거리는 소리는 그들의 흐느낌이며, 하얀 포말들은 그들이 흘린 눈물의 잔해라고, 영원히 끝나지 못할 기나긴 죽음의 되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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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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