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가 보는 것과 글로 진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난 늘 한국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건 아마도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넓은 그곳을 직접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미래의 내 꿈을 발표할 시간이 되면 난 항상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현장을 누비며 직접 보고 알게 된 것을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범 대학에 진학했지만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난 4년 내내 언론 고시를 준비하며 홀로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의 희망찬 도전에도 불구하고 꿈은 멀어져만 갔다. 좌절과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며 내 꿈은 기억 너머로 가리어져 잊혀만 갔다.
지난 12월 28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모처럼 온 가족이 포항으로 여행을 갔다. 처음 가본 해돋이 명소라는 ‘호미곶’ 해맞이 광장엔 뉴스에서 보던 ‘상생의 손’이라는 상징적인 조형물이 있었다. 왼손은 육지인 광장에, 오른손은 바다에서 힘차게 뻗어 올린 이 조형물을 실제로 보니 무척 기이하게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두 손 모두 나올 수 있는 구도로 찍으니 묘하게 어우러짐이 있는 비주얼이 되었다. 문득 상생이란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일정으로 인해 우리는 새해 해돋이를 보지도 못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매년 계획은 세워보지만 점처럼 보지 못했던 해돋이였다. 잡을 수 없는 꿈처럼.
딱 한 번 해돋이를 본 적이 있었다. 2010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휴가를 갔던 날. 영화 속에서나 보던 '야간열차라니' 밤 11시 40분경에 탑승해 아침 7시 45분경 내리는 야간열차는 가는 동안 침대칸에서 잠을 자야 했다. 2층 침대로 구성된 4인실 안에서 준비해 간 주먹밥, 음료수를 먹으며 도란도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언뜻 선잠이 든 것도 잠시, 시끌시끌한 객실 밖 소리에 나가보았다. "Sunrise " 좁은 기차 통로에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서서 창문 밖을 보며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사방이 새까맣던 지평선 바다 위에서 불같은 주황색 빛의 집체만 한 해가 떠오르며 순식간에 온 세상이 노랗게 환해졌다. 해는 마치 살아 움직이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가 나를 품는지 내가 해를 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찰나 형언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생겼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태양 마치 불덩이와 같았다. 그날 ‘해뜨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잊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경험도, 포기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꿈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가 잊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매일 해는 솟아오르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해돋이처럼, 모두 꿈을 꾸지만 아무나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꿈을 향한 열정은 숨겨져 있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낮을 밝혀주는 해와 밤을 지켜주는 별은 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해와 별은 잠시 가려질 뿐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상생하고 있다. 해는 어두운 밤을 지나 아침이면 하늘로 솟아 올라와 세상을 밝게 비춰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별은 밝은 낮을 지나 깜깜한 밤이 되면 하늘에 나타나 반짝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해 준다. 해와 별은 자신만의 고유한 빛으로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20대의 꿈은 솟아오르는 강렬한 해와 같다면 50대는 그윽하지만 자신 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별빛과 같지 않을까. 예전에 내가 하고자 했던 꿈이 ‘글로 진실을 전하는 일’ 였다면 이제는 ‘진실한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예전과는 달리 보다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더 많은 콘텐츠로 전파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4년 새해가 되었다. 매년 그랬듯 집 정소를 하고, 입지 않는 옷들과 신발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나눔 하고, 냉장고 안 묵은 반찬과 김치들을 버리고, 찬장 속 식기들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현관의 먼지를 쓸어내며 새롭게 마음을 정리해 본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만 흘러가는 것처럼 매년 똑같은 해를 보냈다. 그러나 올 해는 내게도 꿈이 생겼다. 묵은 때를 벗기듯. 아직 나는 꿈꾸고 있다.
“반짝이는 별처럼~ ”로 시작하는 70년대 작은 별 가족이 부른 “나의 작은 꿈”이라는 유명했던 노래처럼 가리어진 내 꿈이 해가 떠오르듯 솟아올라 내 인생의 해돋이를 맞이하고 싶다. 작지만 빛나는 수많은 하늘의 별처럼 내 꿈을 비춰주어 길을 잃던 사람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아갔듯이 이제 나의 별을 찾아 나만의 꿈의 여정을 걸어가려 한다.
작은 별 가족 ( song by 강인봉 )
반짝이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별을 보고 무슨 생각할까
언제나 나의 꿈은 멋진 세상
아 아 수많은 사람들이여
나의 작은 꿈 말해볼까
그림 같은 작은 꿈
즐거운 세상이야
검은 마음 빨간 마음 하얗게
눈물 없고 슬픔 없는 이 세상
만드는 게 내 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