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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테르 Apr 17. 2024

나만의 펜으로 글을 쓰다

            

책상 위에 놓인 까만 펜 두 자루      

“엄마! 선물이야 생신 축하드려요 좋은 글 쓰세요 “ 


올해 고 3이 된 막둥이 아들 녀석이 슬쩍 두고 간 검은색 프로 마크 펜과 제트스트림 0.7 펜      

“달랑 펜 두 개뿐이야” 이유가 궁금해져 슬며시 볼멘소리로 물었다. 머쓱해진 아들 녀석은 코언저리를 긁으며 “엄마 좋은 펜 없잖아. 가장 잘 써지는 펜이야. 내 용돈으로 샀어. 이 펜으로 쓰면 글 많이 쓰세요. 다 쓰면 내가 또 선물해 줄게. 히히”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펜 많은데 웬 펜?’ 하며 눈앞 책상 위 빽빽하게 꽉 찬 필통 함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내 필통이나 연필통에는 모두 아이들 학원에서 상담하거나 설명회 때 받은 볼이나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는 펜들로 가득했다. 순간 필통 함을 세세히 보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초보 엄마를 응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진다. 문득 ‘ 나를 위해 펜을 산 적이 언제더라.’ 서랍을 뒤져보니 몇 해 전 남편이 회사에서 선물로 받았다며 건네주었던 까만색 유광 몽블랑 볼펜이 맨 구석에서 다닌다. 이렇게나 좋은 펜을 사용하지 않은 채 긴 시간 방치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미국 출장을 다녀오신 막내 삼촌이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독일제 파커 만년필 세트. 각진 직사각형의 고급스러운 짙은 남색의 선물 케이스를 열면 매끈한 자태의 멋진 만년필과 볼펜 두 자루가 담겨있었다. “와아! 감사합니다.” 파커 만년필과 볼펜 그리고 샤프를 선물 받아 지니고 있는 것은 그때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잠시 고등학생 시절, 가격 면에서 좀 더 경제적이던 일본에서 수입된 샤프와 핑크색 귀여운 캐릭터 키티 펜들이 여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내가 (1980년대) 중˙고등학교를 시절엔 졸업식이나 입학식 날 파커 만년필이나 볼펜은 학생들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멋진 대학생이라면 필통에 하나씩 가지고 있던 필수품이기도 했고, 은사님께 드리는 가장 일상적인 감사의 선물이기도 했다. 예전 광화문 교보 문고엔 파커 만년필 매장이 선물 코너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해 있었다. 이제는 다른 매장이 차지한 그 자리를 보면 엣 친구를 잃어버린 듯 괜스레 아쉬워했다. 

   

요즘 학생들은 더 이상 펜이 필수품이 아니다.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핸드폰 등 여러 새로운 기기들이 손으로 직접 쓰는 펜을 대신하고 있다. 어설픈 아날로그 세대인 내겐 그 기기들은 펜보다 아직 서먹하다. 91년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의 사회생활을 후 다시 돌아간 대학원은 더는 손으로 글을 쓰는 리포터가 아닌, 모든 것이 컴퓨터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신문물 세대였다. 전산학과(지금의 컴퓨터 공학과) 후배에게 일주일간 밥을 사주며 컴퓨터 다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마치 벼루를 간 먹으로 붓글씨를 쓰던 선비가 흑심 가득한 길쭉 가느다란 연필을 손에 쥐고 연필 깎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하루 전날, 학교 옆 문방구에서 연필 열두 자루(당시 연필 한 타스가 12자루였음)를 사 오신 엄마는 문구용 칼을 들고 내게 연필 깎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처음 깎았던 그 연필이 내 인생 첫 펜이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연필 깎기에 성공한 난 뿌듯한 마음으로 공주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2층 자석 필통에 나란하게 연필 열두 자루를 가지런히 담았었다.  연필, 샤프, 만년필, 볼펜. 타자기 워드 프로세서 그리고 컴퓨터 등 나에게 있어 펜은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졌고 변화해 갔다. 어느 순간 내 손에 없었던 펜, 어쩌면 내게 펜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펜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25살 내 첫 월급을 타 엄마께 드렸다. 몇 달 뒤 안방 장롱 안쪽에 내 첫 월급봉투 그대로 고스란히 보관해 두셨다. “왜 안 써. 엄마 필요한 것 사지”하고 반문하자 엄마는 “아까워서 우리 딸 첫 월급인데”라고 말씀하셨다. 도무지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년 11월 내 생일에 받은 두 개의 펜.

몇 달째 필통 함에 끼워 두고 그저 바라보고 있다. 예전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바라만 보아도 입가에 웃음이 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부적처럼. 든든한 후원자를 얻는 것처럼. 오랜만에 선물 받은 두 개의 펜으로 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하지. 누구에게 전달해야 할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정(精)을 콘셉트로 하던 초코파이 광고가 종전의 히트를 쳤었다. 때론 표현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 사랑과 정 그리고 진실한 마음 

필통 함에 꽂힌 두 개의 펜을 바라보며 글을 통해 가족 간의 이심전심. 사람 간의 측은지심을 어루만져 따뜻한 정을 전달해 보고 싶다. 두 개의 펜으로 쓰기를 시작하는 내 글이 하나의 길이 되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가볍게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두 개의 펜 

                                                                             

                                                                                     ( 지은이 : 에스테르) 


책상 위에 놓인 검정 색 펜 두 자루 

하나는 두껍고 다른 하나는 얇네 

대담하게 또는 세세하게 

두 자루의 펜으로 길을 만드네      

사각사각 

글 길을 닦으면 

내 마음도 따뜻해지네 

이 길을 걸으면 

사랑하는 가족도 

만나고 

따듯한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다네      

펜이 가는  그 길엔 

잊힌 정이 함께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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