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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테르 Apr 17. 2024

나만의 글을 쓰는 이유
        

       

2020년 봄.   번 아웃( Burnout)이 왔다.

내 속은 텅 빈 채로 겨우 숨을 쉬며 버티고 있었다.

 2014년 모스크바에서 5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빠른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낯설었다. 적응할 여유도 없이 귀국과 동시에 고 1학년 큰 딸아이의 대학 입시 준비를 해야 했다. 매일 대치동 학원가를 수소문해 다니며 입시 상담과 진학 설명회를 다녔다. 생소하고 수많은 생소한 정보들을 듣고 추스르며 아이들의 교육을 재시작해야 했다. '맨 땅에 헤딩한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16년 딸아이의 피나는 노력과 행운이 깃들어 다행스럽게도 목표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내 시간이 조금 생기겠지' 하는 기대도 잠시 대학 3학년된 딸아이는 불현듯 국가고시를 준비를 한다고 휴학을 했다. 연이어 영재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 1학년이 된 둘째 아들의 입학 준비도 시작해야 했다. 난  또다시 수험생을 둔 엄마가 되었다. 


2021년 3월. 13년 동안 투병 중이셨던 친정아버지의 급작스런 부고.  K- 장녀로서의 책임도 계속되었다.  그해 겨울, 딸아이는  두 번의 낙방 후 3년 동안 준비했던 고시를 포기했고, 늦둥이 아들은 영재고에 합격하지 못했다. 쓰나미처럼 상실감이 밀려왔다. 힘을 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은 끝없이 누워 있었다. 내가 달려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산 걸까. 왜 이렇게 숨이 찬 걸까.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만의 숨구멍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여행은 늘 내 숨터였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거나 권태로움이 밀려올 때면 짐을 꾸리곤 했다. 잠시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공간이동은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부어 주었다. 그러나 여행을 위해 짐을 싸는 것은 매번 귀찮은 일이었다. 일정에 따라, 장소와 계절을 고려해 싸야 하는 짐은 한 번에 완벽히 끝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필수품과 가져가야 할 목록들을 리스트에 적어 물건들을 끄집어 모아 여행가방에 적합하게 넣어야 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또한 필요한 것 적합한 것을 챙기기 위해 쌌다 풀었다 뺐다 더했다를 반복해야 하는 짐 싸기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며칠 째 방 모서리에 채워지지 못한 채 방치된 양쪽으로 펼쳐진 커다란 여행 가방과 그 옆에 꺼내놓은 옷들과 신발 그리고 생활필수품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차라리 가지 말까 하는 마음과 대신 짐 싸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마음을 가다듬고 수십 번의 사투를 거쳐야만 드디어 여행 가방의 지퍼를 네모난 모양대로 닫곤 했다.  꽉 찬 가방을 겨우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을 떠나지만 늘 챙겨 오지 못한 물품들은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하는 동안 부족함 속에 불편함을 견디며 현지에서 해결하고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늘 깨닫곤 한다.  

                   '쉼을 얻고자 가는 여행길에 왜 그리 필요한 것들은 많았을까?'  

지인에게 선물 받고 읽게 된 자카리아스 하이에스 신부의『별이 빛난다』(2019 최대환 역)에서  “산티아고의 순례 안내서에는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들은 배낭에 12kg의 짐을 지고 가서는 안 된다고 쓰여있다. 12kg 무게를 맞추려 싸고 풀고를 반복했지만 15kg 넘었다. 순례길에 오르며 초반부터 집에서는 가벼웠던 짐이 점차 무겁게 느껴짐을 깨닫고 12kg 이 될 때까지 짐을 덜어 버렸다. 그러자 딱 알맞은 무게가 되었다. 그 길을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순례길 여정을 오르며 적절한 무게의 짐을 져야 하는 하는 이유와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방법을 깨닫게 되며 또 다른 충만함을 깨닫게 된다. " 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짐의 무게를 알지 못해서는 번 아웃이 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미 무거운데도 해낼 수 있다고 자만을 부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너무 무거운 짐을 메고 인생을 힘겹게 걸어가곤 한다

삶의 여정길에는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알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과 해낼 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버티며 오래 걸어갈 수 있으니까. 마치 순례자가 적절한 무게로 배낭을 꾸리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걷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 인생의 배낭에는 무엇을 넣어야 할까?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것은 어쩌면 글을 모아 글쓰기를 정리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떤 소재가 필요한지, 무슨 내용으로 써야 할지를 적절한 주제와 단어들을 선택하는 것처럼.

내가 여행을 갈 때면 꼭 챙겨갔던 비상용품처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빛나는 수많은 별처럼, 깜깜한 마음의 갇혀 길을 잃은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열린 통로가 되어주는 별빛 같은 글들을 내 인생의 배낭에 하나씩 채우고, 한 편씩 담아야겠다. 

이제 배낭을 활짝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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