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사람
삼십 분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거칠게 도로를 지나다니는 오토바이 머플러 소리와, 가로등 밑과 골목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쓰레기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연히 일찍 나온 탓에, 햇볕을 피해 그늘에 서서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수영에게 도움을 청한 건, 어쩌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영은 혜경의 일로 경준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고, 강 씨가 잘못된 길을 걷는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 마음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해영은 뭐라도 들고 왔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제과점을 기웃거렸다.
재건축을 앞둔 상가라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제과점은 문을 닫았는지 내부가 캄캄했고 유리문 위로 빨간색으로 적힌 ‘재건축 결정’과 점주의 입장문이 붙어 있었다.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디라도 앉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멀지 않은 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가 있었다. 수영이 올 때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벤치로 향하던 도중 희소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전화는커녕 문자도 거의 주고받지 않아서 얼떨떨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운을 떼기도 전에 불쑥 정빈이 연락했냐고 물었다. 조급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냐고 묻자 머뭇거리던 희소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윤정빈이 오빠가 그린 여자랑 닮은 사람을 안대요.
벤치에 앉은 해영은 미간을 좁혔다. 이미희, 순간 그 이름이 머릿속에 스쳤으나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오빠가 찾는다는 사람이, 해원이인 줄 알고…… 미안해요.
해원이는 갑자기 왜? 해영은 의미심장한 희소의 말에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희소는 빨라지는 말을 정돈하려 심호흡했다.
윤정빈이 3년 전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르쳤던 남자애가 그 그림이랑 똑 닮았더래요.
남자라는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린 해영은 잔뜩 굳은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희소의 말에 휴대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애가, 5년 전에 실종된 누나가 있다고 했대요.
해영은 납골당에서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이미희의 옆에 서 있는 것은 딸이었다. 분명 남자아이는 없었다. 아니,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존재도 아주 지워진 것처럼 없었다. 우연일까, 해영은 정신이 혼미했다. 남자애 연락처 보냈어요. 희소의 말과 동시에 진동이 울렸다. 해영은 희소가 보낸 연락처를 확인했다.
오빠. 희소의 낮은 목소리가 잠깐만 끊자는 해영의 말허리를 끊었다.
나는, 오빠가 왜 이 사람을 찾는지 몰라요. 아빠도, 오빠도, 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살아서, 사실 이 말도 많이 고민했어요.
희소는 숨을 한 번 들이켜고 내쉬었다.
걱정된다는 말이에요.
희소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람들 피하느라 연락 끊겼던 것도 얼마 안 됐는데…… 중얼거리는 희소의 말을 해영은 가만히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 미안해요. 꼭 찾아야 해요. 자기 걱정도 조금은 하고.
희소는 멋쩍은지 긴말하다 끊을게요,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해영은 종료된 통화 화면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해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다. 수영이 약속을 잊은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의아했지만 해영은 수영에게 문자를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
누나를 찾으신다고요.
해영은 슬쩍 고개를 올렸다. 학교 근처라 그런지 시끌벅적한 카페에는 다양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반면 그들의 또래처럼 보이는 눈앞의 소년은 사복 차림이었다. 품이 큰 후드 집업과 그 안에 얼핏 보이는 무지 티. 허벅지 부근이 팽팽하게 늘어난 바지는 검은색 슬랙스인 듯했는데, 그것만은 교복인 것 같았다. 소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쭉 들이켜고 한숨처럼 숨을 내쉬며 눈짓으로 재차 물었다. 확실히 날카로운 부분이 없는 둥근 눈매와 반듯한 자세는 퍽 닮아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도 꽤 닮았다. 다만 눈빛이 사나울 정도로 벼려 있고 시종일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한 오만한 말투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해영은 겨우 그렇다고 대답하며 만나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소년은 그제야 어깨를 으쓱하며 푹신한 방석에 등을 기댔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해수라고 소개했다. 열여덟 살이고, 카페에서 10분 거리인 해송고등학교에 다니고, 중학교 3학년 때 잠깐 받은 과외 선생님의 문자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내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저씨는 형제 있으세요? 해수는 중간고사가 어땠는지, 성적과 친구에 대해 말하다 말고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 해영을 빤히 바라봤다. 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몇 명? 물었다. 한 명. 남동생? 아니, 여동생. 몇 살이에요? 열다섯 살. 애걔. 중삐리네, 중학교는요? 해영이 말을 멈추자 포크로 티라미수를 뒤적이던 해수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해송중. 방금 침묵 뭐예요. 잠깐 헷갈렸어. 해수가 눈매를 가늘게 뜨며 혀를 찼다. 그러나 해영의 반응이 미지근한 걸 느꼈는지 더 말을 붙이진 않았다. 누나는 왜 찾으시는 건데요? 해영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자 해수가 알만 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사귀던 사이신가. 해영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는 사람. 네 누나한테 진 빚이 있어서. 해수는 흥미가 식었다는 듯 티라미수를 크게 떠 입안에 넣었다. 어디로 사라졌는진 저도 몰라요. 답답한 건 저도 마찬가지라. 아빠가 그냥 냅두라니까 안 찾는 거지. 해영은 묻고 싶은 것들을 담아두고 휴대폰을 꺼냈다. 이 사람 맞지. 네 누나. 납골당에서 찍은 걸 적당히 편집해 그 여자만 나오도록 편집한 사진이었다. 확대해 보여주자 몸을 기울여 응시하다 해영을 흘겨본 해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찾게요? 돈도 없는 게 뭘 빌려줬길래 빚이래. 지금부터 찾으려고. 해수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근데 이름이 기억 안 나. 이름도 몰라요? 아는 사이인 거 맞아? 오래됐잖아. 너도 내 나이 되면 가물가물할걸. 뻔뻔한 해영의 말에 해수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럴 일 없어요, 단호하게 말했다. 반쯤 파먹은 케이크가 중심을 잃고 접시 위에 퍽 쓰러졌다. 해수는 포크로 빵 부분만 긁어 먹으며 심상하게 덧붙였다.
서수아요, 서수아.
서수아, 속으로 따라 읊었을 뿐인데 코끝이 아릴 정도로 진한 향기가 밀려 흘러왔다. 서수아. 나이아. 이름. 기시감이 들어 떠오르는 단어를 나열하며 골몰하던 해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다 코코아 가루가 진득하게 달라붙은 목에 이물감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기침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본 해수가 티라미수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타박하며 휴지를 앞으로 밀어 넣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 맛과 입안에 달라붙은 코코아 가루의 씁쓸한 맛과 텁텁함이 깊숙한 곳을 간질였다. 저 학원 시간 다 돼서 가 볼게요. 찾으면 연락 주세요. 빚도 갚으시고. 해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해영이 따라 일어났다. 해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해영을 바라보다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시원스럽게 몸을 돌렸다. 해영은 멀어지는 해수를 바라보다 숨을 가다듬고 빈 컵을 트레이에 담아 정리했다.
명. 머릿속에 여자의 말이 섬광처럼 스쳤다. 기시감의 정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원을 위해 건 명이 목숨이 아니라 이름이라면, 여자의 이름은 나이아가 아니니까, 다름없이 인간이니까……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안쪽이 걷잡을 수 없이 팽창했다.
*
5년 전 실종, 외양 일치. 무슨 이유로 숲의 요괴가 된 건지 모르지만, 정황상 그 여자는 ‘서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요괴가 아니라, 사람. 그러나 해영은 막막함을 먼저 느꼈다.
이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지. 해영은 역시 여자를 붙잡고 물었어야 했다고 또다시 후회로 얼룩지기 전에 막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숲으로 간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름을 알고 있다고? 명이란 게 이름이 맞냐고? 그게 아니라면, 그럼 이제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알아낸 거라곤 이름뿐인데, 그마저도 생김새만 같은 건지 정말 그 여자인 건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언제나 그랬듯 내린 결론과 숲으로 가는 걸음은 허술하고 부단했지만 기묘한 확신이 달뜬 호흡처럼 새어 나왔다.
서수아. 서수아. 서수아. 해영은 익숙해진 길을 걸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무가 우거져 질식할 만큼 녹음이 가득한데도, 그 안에 뚜렷한 물 내음이 서려 있었다. 옅은 바람에 숲이 흔들렸다. 여전히 사람은 없고 고요했다. 명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소원이란 걸 무를 수 있다면, 이제는 말을 삼키지 말 것을 다짐하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도망쳐 왔을 땐 아무렇게나 달렸어도 여자가 나타났는데, 이번엔 맞게 찾아갔는데도 여자도 못도 없었다. 못이 있었던 자리를 에워싼 나무만 있었다. 나무가 빽빽한데도 폐허처럼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이아.
대답이 없었다.
나이아.
해영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불렀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여름이라 일몰이 일렀다. 지붕처럼 하늘을 덮은 나무 사이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해영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길을 잃었을 때도 거짓말처럼 여자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일부러 피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언제까지고 버티긴 어렵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언제나 침묵을 견디지 못해 먼저 운을 떼거나 자리를 뜨곤 했으니, 이제는 기다릴 차례였다. 찬기가 다리에 들러붙었다. 해영은 고개를 젖혀 어둑한 하늘을 바라봤다. 해수와 만났을 때 마신 음료가 전부라 목은 마르지 않았지만 배가 고팠다. 열매라도 찾아야 하나, 해영이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자그마한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마른 흙을 지르밟는 소리였다. 해영은 소리 나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설마 짐승은 아니겠지. 식은땀이 난 등을 서늘한 바람이 어루만졌다. 해영은 천천히 뒷걸음질하다 나무 뒤로 빼꼼 나온 옷자락을 보았다. 해영은 숨을 멈추며 걸음을 멈췄다.
나이아.
멍하게 중얼거렸다. 돌처럼 굳은 해영이 더는 말을 잇지 못하자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아, 하고 부르려던 해영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양쪽 다리에 깊게 그어진 붉은 선이 있었다. 까맣게 썩어가는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생명이 생겨났다. 여자의 얼굴은 비늘 문양의 균열이 일어 얇은 조각으로 갈라져 한쪽 눈은 감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갈라진 틈새로 선홍빛의 얇은 막이 찐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가느다란 숨을 따라 비늘처럼 얇은 살결이 흔들리는 모습은 꼭 물속에서 건져진 물고기가 흙 위에서 아가미를 펄럭이는 것 같았다. 해영은 여자가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 당신의 목숨이랑 내 안위를 저울질했어.
해영은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눈앞의 여자가 부서질까 빠르게 운을 뗐다. 다급한 표정이 꼭 절박해 보여서 고해처럼 들리기도 했다. 순식간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여자의 몸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바람결을 따라 부스러진 빛이 흘러갔다.
당신이 말한 그 소원 때문에 내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하거든.
나아진다. 자신과는 관련 없을 거라 생각한 막연한 단어가 형태화되어 단단해졌다. 여자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해영은 삶과 가까워졌다. 그간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고 갈등하던 해영은 확신 속에서 입을 열었다. 여자는 언제나처럼, 호롱불 같은 눈으로 물끄러미 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영은 여자의 얼굴의 균일하지 않은 메마른 갈라짐이 나무껍질의 벗겨짐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다. 다리의 붉은 선은 손도끼의 자국이라는 것과 까맣게 그을린 발은 담뱃불이나 라이터의 흔적이라는 것도. 여자는 숲이 되어 드문드문 새겨진 흔적에 메말라 찢어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서수아, 맞지.
여자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자 한쪽 눈동자가 완전히 부스러져 떨어졌다.
당신 이름이잖아.
명이 생명이라면 이름 같은 건 죽어가는 여자를 살리는 데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해영은 여자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
숲을 지키는 수호자, 정령, 혹은 소원을 들어주는 요괴, 여자가 발각된 건 순전히 달린 꼬리가 많기 때문이었다. 탐욕이 여자에게로 이끌고 파멸에 이르게 했다. 누군가의 절박함이 여자에겐 독이었다.
물속에서 용과 고래와 인어를 보았냐고 여자가 물었을 때, 해영은 무심코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어느 민담, 신화처럼 당신의 발밑엔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용이 살고 바다로 넘어가기 전의 고래가 살고 왕자를 죽이지 못한 인어가 산다고. 그렇게 영영 물 아래를 모르길 바랐다. 분명 물 위에 떠 있는데 언제든 가라앉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자꾸 물 아래를 궁금해하니까. 해영은 정해진 정답 주변을 빙빙 돌다가 마침내 정답을 입에 담았다.
당신이 살았으면 해.
한여름의 대낮처럼 강렬하고, 어긋남 없이 또렷하게, 줄곧 어느 편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하고 명확하게 결정짓지 못한 해영이 이 순간 무엇보다 확신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여자가 눈가를 떨자 균열의 속도가 빨라졌다. 부서지지 않게 단단하게 몸을 굳혔지만 잔떨림마저 멈출 수는 없었다. 해영은 여자의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동일하지만, 다른 말. 죽지 못해 사는 해영에겐 살라는 말은 소음이 뒤섞여 들렸다. 다만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여자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곧 ‘함께’를 의미했다. 해영은 이제 내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여자도 자신도, 함께 아득바득 살기를 바랐다.
가만히 석상처럼 서 있던 여자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해영이 던진 돌에 짙게 밀려오는 파동을 가만히 느끼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