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소음 Oct 27. 2024

14. 물 위를 걷는 사람(1)

물 위를 걷는 사람


  그곳엔 어둠이 내려앉은 나무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넘실거리는 눈보라가 있었다. 어디론가 계속 걷고 있었다. 손목을 붙잡은 누군가의 등을 보며 걷고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에 느리게 끔뻑거린 시선은 소복하게 눈이 쌓인 어깨를 향했다. 손을 뻗어 털어주고 싶었는데, 닿으면 눈처럼 부서질 것 같아서 잠자코 걸음을 겹쳤다. 입김이 시야를 가리고 온몸은 빨갛게 부어 살짝씩 스치는 천에도 예민해진 팔이 따끔거렸으며 내딛는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지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나를 굳세게 잡은 손은 따뜻했다. 한참을 걷다가 멈춰 섰다.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떨고 있는 나를 돌아봤다. 엄마. 혼몽한 정신으로 속삭이자 따뜻한 손이 양 뺨을 감쌌다. 수아야, 너는 사는 거야. 다정한 목소리가 떨렸다. 엄습한 불안에 손목을 잡자, 잠시 여기 있으라고, 기다려도 안 오면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얕게 쌓인 눈을 밟는 소리만 어둠 속에서 간간이 들렸다.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눈으로 더듬더듬 따라갔지만 성근 눈 사이로 남김없이 사라졌다.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여기 있으라고 했으니까, 돌아오겠지. 완전히 저문 밤은 어둡고, 시리고, 두려워서, 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춰 섰다. 추위에 코를 훌쩍거리며 겨우 졸음을 참으면서.

  벌어진 옷 틈으로 차가운 눈이 스며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귀가 아플 정도로 화끈거렸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손에 남은 온기를 움켜쥐고자 기도하듯 맞잡고 명치에 가져다 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온통 어둠으로 가득한 숲에서 화한 빛이 쏟아졌다. 그것은 마치 도깨비불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는 푸른 불꽃이었다. 어둠을 몰아낸 빛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비췄다. 나는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벗겨낸 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 사이로 번뜩이는 빛과 가까워질수록 입김처럼 따뜻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홀린 듯 다가간 불빛 너머로 거대한 흐림이 있었다. 멀리서 볼 땐 나무들이 춤을 추듯 흐려지고 얄랑이는 것이 불꽃 때문인 줄 알았는데, 가까워지니 투명한 몸이 나무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이 몸집을 부풀렸다가 숨을 뱉을 때 따스한 바람이 휘감았다. 푸른 불꽃은 꿰뚫을 듯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굵게 얽혀 꽃송이처럼 내린 눈이 흐릿한 경계에 닿자마자 허공에서 녹아버렸다. 찾지 마. 소름 끼칠 정도로 나직한 목소리가 귓속에 웅웅 맴돌았다. 무엇을, 물으려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입을 다물었다. 어디 갔어? 들이켠 숨이 뜨거운 목에 들러붙었다. 호수에. 숨이 턱 막혔다. 어렴풋이 들린 물소리가 떠올라 몸을 휘청이자 발밑에서 뽀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느린 움직임이 머리 위로 쌓이는 눈을 막았다.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는 나를 형체 없는 무언가가 둘러쌌다. 올 때까지 여기 있어. 떨어진 눈물이 가볍게 쌓인 눈 위에 야트막한 자국을 만들었다. 나는 눈이 그칠 때까지 거대한 온기에 휩싸여 있었다.


  며칠간 불꽃의 곁에서 지내며 엄마를 기다렸다. 졸음을 참아가며 기다려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내게 살라고 말했는지, 아마 난 엄마의 시신을 보고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몇십 년이고 기다릴 것이다. 이혼과 죽음, 왜 나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온기를 갈구할 대상을 찾아다닐까. 홀로 남겨진 기분은 생각보다 외롭고 두려워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도 엄마는 없다. 캄캄한 방과 온기 없는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 좀 죽여주라. 불꽃이 건넨 붉은 열매를 한입에 삼키면서 뇌까렸다. 불꽃은 대답이 없었다. 나, 이렇게까지 살 필요 없는 것 같아. 삶이 자꾸 날 거부해. 입을 다물자 자그마한 알갱이들이 입 안에서 터졌다. 혀가 아릴 정도로 새콤한 맛에 코를 살짝 찌푸렸다. 한동안 말이 없던 불꽃이 가까이 다가왔다. 열매 맛이 어때? 이거? 맛있어. 겨울이라 아직 떫어. 봄이 되면 더 맛있을 거야. 열매를 입에 물고 시선을 올리자 빛이 푸르게 일렁거렸다.

  봄에 또 와.

  누구보다 따뜻한 눈을 가진 그의 말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그는 숲에 몸을 숨긴 수신이었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모습을 한 수신은 몸 전체가 투명한 물이었고 눈은 푸르게 빛났다. 수신은 호수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시작된 호수 개간으로 드넓던 호수 일부가 메워지고 쓰임을 다한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면서 호수를 다 덮던 몸은 나무 한 그루만큼 작아졌다. 승천을 앞두고 있었으나, 호수의 오염으로 한쪽 눈을 완전히 잃은 수신은 더 힘을 잃기 전에 호수를 버리고 숲으로 쫓기듯 모습을 감추고 숲의 생명력으로 겨우 연명했다.

  수신과 함께 지내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질 때쯤, 누군가 숲에 찾아왔다.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수신의 존재를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텅 빈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했고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는 듯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수신이 모습을 드러낸 건, 아마 그 애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며 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신을 따라가려다 나무 뒤에 조용히 있으라는 말에 뒤로 물러섰다. 마른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으며, 수신을 마주한 순간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울음에 뭉개진 목소리로 죽여달라고 울었다. 수신은 말없이 그 애를 바라봤다. 수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나무 뒤에 숨어 그 애를 힐끔거리며 숨을 죽이고 갈라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애는 동생밖에 남지 않았다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울부짖다 거의 녹은 눈밭 위로 고꾸라졌다. 수신은 그 애가 쓰러진 자리에 눈을 녹이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손을 들어 그 애의 머리를 감쌌다. 빛무리가 그 애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것이 그 애의 기억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빛이 수신에게 온전히 흡수되기 전에 나는 수신의 말을 어기고 그에게로 뛰어갔다. 뜻밖에 수신은 아무 말도 얹지 않고 그 애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켜야 할 동생이 있으니 내가 없어도 저 아이는 금방 털고 일어나 살아낼 거다. 저 아이는 강하니까.

  표정을 보고 짐작한 듯 수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아무도 저 애를 도와주지 않고 동생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저 애가 생각만큼 강하지 않으면?

  그러나 생각으로만 그치고 입을 다물었다. 수신의 말이 맞았다. 저 아이는 오늘을 잊으면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애를 동정할 만큼 내 삶이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개입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어쩌면 괴로움을 삼키는 것이 내일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내 동정은 아무런 힘이 없다. 나에겐 저 애를 도울 힘도 없었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수신이지 내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침묵하자 수신은 소년을 감싸 안았다. 벌게진 뺨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수신의 몸에 눌렸다. 나는 빠르게 멀어지는 수신의 등만 바라봤다.

   슬쩍 엿본 소년의 짧은 생이 기구해, 기적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모른 척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바란 것이 그만큼 간절하다면, 저 애는 다시 이 숲을 찾게 될까.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 애를 보고 왜 엄마가 떠올랐을까. 엄마도 저런 눈이었을까. 저렇게 괴로웠을까. 나는 젖은 흙 사이로 녹아 사라진 눈 자국이 남은 소년의 자리를 내려봤다. 그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바랐다.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간절한 것이, 저 아이에게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자 연민이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열매를 먹고, 수신을 베고 자고, 다름없는 일상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수신의 몸은 점점 더 작아졌다. 불꽃이 지면에 가까워지는 만큼 온기도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말 안 해주면 안 따라갈 거야. 몇 번씩이나 반복되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수신의 앞을 가로막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그럼 오지 마. 이제껏 들은 적 없는 냉랭한 말투였다. 이제 집에 가라. 그대로 지나치려는 수신을 황망하게 따라잡으며 울렁거리는 몸에 손을 댔다.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니, 멍하니 묻기도 전에 불쑥 가까워진 푸른 불꽃이 화르륵 타올라 위협했다. 나는 생경한 뜨거움에 놀라 뒤로 나동그라졌다. 갑자기 변한 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용히 숨만 헐떡거렸다. 돌아가. 수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어, 수신이 말했다. 단호하고 냉정한 어투에 서러워져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버티는 내게 수신이 손을 뻗었다. 시야가 하얗게 점철되자 나는 소년의 머리 위로 빠져나오던 빛을 떠올리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수신은 잡지 않았다.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베고 지나갔다. 길도 제대로 모르고 뛰었다. 어딘가에서 환하게 터져 나온 빛이 출구를 알려주듯 길을 비췄다. 한계치까지 부풀어 오른 풍선이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아름다운 분신처럼, 펑 하고 폭발하듯 번뜩인 빛이 시야에 가득 찼다.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는 호숫가에서 발견되었다. 숲에서의 일은 전부 잊은 채. 웅성거리는 소리에 감았던 눈꺼풀을 파르르 떨자 안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드세요?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남자가 묻는 말에 멍한 정신으로 대답하다, 잊고 있던 기억이 섬광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엄마는, 어디 있어요?

  누구요? 작은 목소리에 미간을 좁힌 남자가 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길게 내려온 앞머리가 눈을 찔렀지만, 부릅뜬 채 경련하듯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없었다. 분명히 숲에서, 아니 호수던가.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저 집에, 집에 좀 가볼게요.

  젖은 흙이 미끄러워서 휘청거렸다. 뭐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뒤로 구급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지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달렸다. 주머니를 더듬거렸지만 휴대폰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손으로 땅을 짚으면서도 뜀박질은 빨라졌다. 엄마는 호수에 없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문을 열자 냉기가 훅 끼쳤다. 널브러진 이불과 옷, 캄캄한 방. 모든 것이 그대로였으나 단 하나, 작은 현관 앞에 가죽 단화가 없었다. 얼마 전 사이즈가 안 맞는 신발을 버리고 난 뒤라 현관에 있는 신발이라곤 두 켤레뿐이었다. 엄마의 갈색 단화와, 내 운동화. 운동화는 신고 있었고, 단화는 없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필요 없이, 엄마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가만히 도로 문을 닫았다. 쿵, 하고 닫히는 소리에 완전한 단절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세게 뛰었다. 나는 깜빡임 없이 입을 다물고는 심호흡했다. 무슨 말이라도 뱉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혼이 빠진 얼굴로 가까운 경찰서로 갔다. 아까 만났던 남자가 아는 체하며 다가왔다. 실종된 엄마와 끊긴 기억에 대해 기억나는 전부를 말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손을 들어 목을 더듬거렸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말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딸꾹질하기 시작하자 난처한 건지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지 모를 얼굴로 조용히 노트와 펜을 건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꾸벅거리고 노트를 받았다. 눈물이 아롱거려서 고개를 숙인 채 턱에 힘을 주고 아랫입술을 입 안으로 넣어 깨물었다.

  작은 글씨로 끄적이는 걸 남자가 슬쩍 곁눈질했다. 중언부언 길어지는 글을 보고 손을 포갠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돌려받은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은 경찰에게 노트를 넘겼다. 무심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치던 경찰은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잠시 앉아 있으라는 말에 몸을 움츠리고 남자를 따라가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경찰서로 들어왔다. 더벅머리와 거뭇한 눈가. 재가한 지 오래라 얼굴도 가물가물한 아빠였다. 아빠는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곤 한숨만 푹 내쉬었다. 경찰과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은 아빠는 엄마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나는 말없이 앞장서는 아빠를 따라 걸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각자의 길로 갈라선 지 오래였으니까.

  호숫가를 지날 때 예고 없는 장대비가 내렸다. 아빠는 웬 비야, 퉁명스럽게 투덜거리며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아빠의 젖은 어깨를 바라보다, 따라 손으로 정수리를 가렸다. 진눈깨비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아빠의 뒤를 따라 걸었다. 넓은 등을 보고 걸으니 가라앉은 기억 속에서 왜소한 등을 따라가는 장면이 겹쳤다. 누구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빗물에 거칠게 출렁이며 불어나는 물 위로 푸른 빛무리가 아지랑이처럼 상승했다. 그중 아주 작은 빛이 떨어져 나와 잠시간 내 곁에 머물렀으나 눈치채지 못했다. 그 빛은 작은 몸이 차갑게 식지 않게 곁에서 빛을 내다 비가 멎고 해가 뜨자 자연스레 사라졌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아빠를 따라 집으로 갔다.

  다녀왔어. 아빠가 지친 목소리로 젖은 옷을 털었다. 녹지 않은 눈과 비에 젖은 신발 밑창에서 까만 물이 흘렀다. 주저하다 신발을 벗고 아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벙어리냐고 비웃던 소년도, 아빠도, 여자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최소한의 친절과 온정을 베풀었다. 계속 머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머무는 동안 청소와 설거지를 도왔다. 함께 밥을 먹었고 급히 치운 창고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오가도 괜찮았다. 엄마만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다림의 끝에 있는 것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엄마의 시신은 새빨간 핸드백과 함께 호수에서 건져져 부검되었다. 경찰은 자살이 명백하다고 했다. 동반 자살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붙이기도 했다. 장례식과 납골당 안치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아무리 남이래도 도리가 있다며, 아빠가 모든 것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납골당은 많은 죽음이 공존했다. 그 안에 엄마의 함이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함께 안치된 졸업식 사진이 아득해진 어느 날의 향수를 일으켜 그랬는지, 유리에 비친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저절로 입술이 움직였다.

  왜…… 죽었어?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목이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정작 입술을 가르고 나온 말은 원망도 그리움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를 다시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나 사실 너무 외로웠다고, 혼자 잠드는 것도, 분명 함께 있는데 이방인처럼 느껴졌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울음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손으로 틀어막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에 힘이 없었다.

  두려워. 무섭단 말이야. 혼자 남겨두지 마.

  닿지 않을 말이 눈물에 뭉개졌다.

이전 13화 13. 나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