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사람
강 씨는 녹슨 문고리를 거칠게 돌렸다. 덜컹거리는 소리만 의미 없이 이어져 강 씨는 행동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 옆에 커다란 화분을 들어 올리자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열쇠가 있던 자리가 흙으로 덮였다. 강 씨는 화분을 들어 문 가운데 세로로 이어진 유리를 가격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날아들었다. 강 씨는 깨진 유리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달칵. 도어록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던 강 씨의 걸음이 느려졌다. 캄캄한 거실, 이상야릇한 냄새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그림자. 익숙한 상황이었으나 달갑진 않았다.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의 것이었던 낡은 전등이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실을 세로로 가른 수영의 몸이 얇은 노끈 하나에 의지한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빛이 수영의 곧은 등 위에 내려앉았다. 창문 모양을 따라 흐릿하게 각이 진 햇빛 위로 하얀 먼지가 천천히 하강했다. 그 작은 공간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흘러가던 강 씨의 시선이 멎은 곳은 수영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서류였다. 강 씨는 시선은 정면에 둔 채 손을 뒤로 뻗어 완전히 닫히지 않고 경고음이 울리는 문을 닫았다. 잠금 소리와 함께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던 경고음이 사라졌다. 강 씨는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고 다가가 허리를 숙여 서류를 주웠다. 진정서라고 적힌 서류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적힌 글이 있었다. 진정인 강수영. 거기까지 확인하고 강 씨는 시선을 내려 가장 긴 문장과 긴 호흡으로 적힌 칸을 훑었다.
본인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합법적인 대부업이라 하여 자금을 차용하였습니다, 차분한 글씨체 위에 잉크처럼 번진 핏자국이 있었다. 사업? 강 씨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영의 얼굴에 흐르다 멎은 피와 눈물 자국이 눌어붙어 있었다. 짐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니어서 강 씨는 낮게 욕지거리했다. 팽창한 수영의 몸을 바라보다 소파에 널브러진 수영의 휴대폰을 들었다. 상단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발신자는 신해영이었다. 일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강 씨는 조용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119에 연락을 할 수도, 경찰에 연락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강 씨는 휴대폰을 도로 소파에 던졌다.
너무 멀리 온 걸까. 강 씨는 수영의 걸음을 따라 의자에 올라 서 수영의 목을 지탱하는 끈을 풀었다.
*
경준은 눈을 의심했다. 해영은 무릎을 꿇고 소리치고 있었고, 그의 앞에 나무껍질처럼 부서진 여자가 있었다. 사람의 형체가 아니었다. 버석한 살은 갈라져 여기저기 나뒹굴었고 희끄무레한 빛덩이가 여자의 몸에서 떠올랐다. 부서질까 선뜻 만지지 못하던 해영은 반딧불이처럼 날아가는 빛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검푸른 공간을 비추는 빛들이 눈처럼, 꽃잎처럼 분분히 흩날렸다. 경준은 난생처음 보는 숨 막히는 광경에 호흡을 떨었다.
경준은 공원 주변을 돌다 숲으로 향하는 해영의 뒷모습을 봤다. 이름을 부르려다, 기시감을 느껴 소리를 죽이고 뒤를 밟았다. 며칠간 해영을 도우면서, 경준은 해영의 눈동자 속에 가득했던 감정이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요괴와 해영의 기묘한 사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으로 남았기에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경준은 한 손으로 나무를 짚고 비틀거렸다.
사방으로 퍼지던 빛 중 하나가 경준에게로 날아들었다. 눈을 찌푸리고 손을 휘적이며 뒷걸음질 치는 경준을 끈질기게 따라붙던 빛이 경준의 팔에 스며들었다. 뜨겁고도 차가운 감각과 함께 온몸이 팽창하듯 기억이 밀려 들어왔다. 경준은 피하에서 요동치는 빛을 더듬거렸다. 빛이 들어간 팔에 온전한 형태로 빛을 내고 있었다. 부유하던 기억이 정확히 뇌리에 스쳤을 때, 경준은 저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주저앉았다.
분명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경준의 눈앞에 어릴 적의 희소의 모습이 보였다. 양 뺨이 발그레하고 지금보다 한참은 앳되고 작은. 경준은 멍하니 손을 뻗어 흔들었다. 그림자처럼 까만 손에 희소의 모습이 가려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경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말 요괴가 있단 말이지?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이 묶고 노란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희소가 붉어진 눈가에 힘을 주었다. 나도 들어갈 수 있다고. 다짐하듯 작은 주먹을 꽉 쥔 희소가 당당한 걸음으로 숲에 들어갔다. 경준은 내내 입만 움찔거리다 안돼, 절박하게 중얼거렸다.
희소는 양옆을 두리번거렸다. 깊숙하게 들어온 것 같은데 요괴가 나타나지 않자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온통 푸른 나무였다. 덜컥 겁을 먹은 희소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경준은 숨을 죽이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바람이 세게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자 희소가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게 우는 희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경준의 눈가가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람이 멎고,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희소가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왜 울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경준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온 여자는 분명, 나무껍질처럼 부서져 쓰러진 여자와 닮아 있었다. 요괴, 경준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환영이나 기이한 요술이라고 생각하지만, 희소가 입은 옷은 그의 기억 속에 분명히 있었으며 여자는 요괴가 분명했기에, 경준은 희소가 해코지라도 당할까 조마조마했다. 희소는 훌쩍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길을 잃어서……
여자는 허리를 수그려 눈높이를 맞추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혼자 왔어?
희소가 입꼬리를 축 내리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랑 아빠는 집에 있어요. 난 그냥 요괴가 있다고 해서……
희소의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아롱아롱 맺히자, 여자는 희소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요괴? 여기에 요괴가 있어?
경준은 여자의 뻔뻔스러운 말에 눈을 찌푸렸다. 훌쩍임이 잦아든 희소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봤다고 했어요. 골똘하게 생각하던 여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요괴라니. 꼭 전해줄게.
희소는 싱글벙글한 여자의 얼굴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요괴는 왜 만나러 왔어? 여자가 물었다. 희소는 뜸을 들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희소의 눈이 경준과 정확하게 마주쳤다.
아빠 때문에……
경준이 흠칫 몸을 떨었다. 희소는 다리를 배배 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빠가 사업했거든요. 근데 그게 잘 안돼서, 우리 가족 다 같이 이사 가야 한대요.
사업, 이사, 전부 8년 전 일이었다.
친구들하고 헤어지기 싫어요.
희소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울컥 치미는 울음을 참았다.
사실 그보다도, 뒷말이 삼켜지고 겨우 멎은 울음이 비집고 나오자, 여자가 희소의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등을 쓸어내렸다.
아빠가 힘들어하니까……
희소가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여자는 차분하게 희소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규칙적으로 등을 두드렸다. 경준은 머리를 맞은 사람처럼 굳었다. 그의 시선은 벌게진 얼굴로 울고 있는 희소를 향했다.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진짜처럼 생생하던 장면이 사라지고 나무 사이로 어둑해진 밤하늘이 보였다. 환한 빛이 사라지자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남았다. 경준은 멍하니 앉아 소매를 걷고 손목을 살펴보았다. 얇은 막 사이로 태동하듯 움직이던 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눈앞에 희소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도무지 요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짓던 여자의 얼굴도. 경준은 흘러간 시간을 되짚었다. 혜경을 위한 일이라며 자위하고 남은 이들에게 자신과 같은 감내를 강요하던 나날을. 경준은 조용히 신음하며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희소. 경준은 감은 눈을 번뜩 떴다. 후회는 엎지른 일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버려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경준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들어온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해영은 재처럼 부스러진 몸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러 개의 빛이 하늘로 떠오르고 적막한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여자의 몸은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았다. 언제나 한 걸음 늦는 자신을 책망하는 것도 무효했다.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해영은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깊숙한 어둠에 젖은 숲이 몸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풀벌레가 울고, 다시 동이 틀 때까지.
붉은빛이 어둠에 갇힌 숲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해영의 등을 타고 여자의 몸 위로 떨어졌다. 새까맣게 부서진 몸에 불그스름한 빛이 스며들었다. 천천히 저린 몸을 일으키던 해영은 숨을 들이켰다. 여자의 몸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흩어진 조각과 가루가 한데 뭉쳐 형체를 만들었다. 검던 피부에 햇볕을 머금은 붉은 기가 돌았다. 파르르 떨리는 여자의 눈꺼풀 사이로 빛이 반짝거렸다. 해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서서히 눈을 뜬 여자도 마주 웃었다. 해영은 이 순간, 거역할 수 없는 충만한 감정을 느꼈다.
이때까지의 생이 얼마나 남루했던가. 눈물지어 한탄도 해 보고 몸 밖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들을 따라 버려도 보았고 삶을 가장 작게 찢은 조각을 유심히 관찰하며 감정의 형태로 남아 있는 불행의 이유를 언어로 세웠다. 그러나 여자의 담백한 한 줌 말로 지난 생은 철저히 부정됐다. 해영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톺아보며 평가했다. 박하고 엄격하며 변함없는 현실에 빛깔 좋은 전복 같은 건 없을 거라고. 그러나 여자는 그를 무너뜨렸다. 언어와 질서로 이루어진 그의 생을 한 마디로 부수었다. 그는 무질서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다. 선행해야 했던 스스로를 위한 사랑이었다. 부친의 삶을 거부할수록 몸부림마저 그와 닮아갔으나 그럼에도 붙들 수밖에 없던 온 생이 소리친다. 어서 와. 기다렸어.
그것은 마치 고장 난 버스의 창문을 비상용 해머로 모서리부터 깨뜨리듯, 중심으로 퍼지는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을 덮었다. 완전히 부서져 내린 창밖에 여자가 있었다.
아무도 수면 아래 발버둥 치는 백조의 다리나 헤엄하는 물고기를 보고 우아함을 논하지 않는다. 마음껏 추해지고 발버둥 쳐서 원래부터 제 것이 아니었던 우아함을 흘려보내 빈자리를 내일로 채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절박함과 내일에 대한 막연함을 품고 오늘을 살아간다. 물속을 동경하던 여자도 죽음과 삶을 떼어놓지 못한 남자도 흘러감을 용납하지 못하는 남자도 모든 것을 마음에 묻고 살아낼 수밖에 없던 여자도, 위태로울지라도 한 걸음 더 내딛고 힘을 풀어도 가라앉지 않고 주저앉을 뿐인 뭍에서 살아낸다. 우리는 영영 우아할 수 없고 그냥 살아지지 않겠지만 본래 남루하고 사라질 것을 위해 추해지는 게 삶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저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