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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Apr 05. 2024

내가 예민하다는 걸 받아들이기, 내 몸의 예민함도

(28) 예민한 사람이 되어 내 몸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사랑하여 - 일랑

나는 내가 둔한 줄 알았다. 


나에게 거짓말쟁이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솔직해지는 중.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왜 이렇게 따갑고 아팠는지 모른다. 이젠 잘 말한다. 누군가 [혹시 좀 감정에 예민한 편인가요?]한다면 끄덕거린다.


나는 진짜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키는 방법으로 내가 그간 선택했던 건, 둔한 척 하기. 본성 숨기기. 무던한 사람인 척 가면 쓰기. 이제는 예민한 나를 착실히 받아들인다. 그동안은 예민한 감정을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내 몸의 예민함을 잘 알아채고 있다. 몸의 유쾌와 불쾌의 경계- 몸의 어떠한 욕구를 스스로 예리하게 눈치챈다.


어떻게 알았냐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배아픔을 이렇게나 겪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번에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회사 반차를 내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침대에 누워보았다. 대낮에. 이러한 이유로 내가 반차를 내도 되는거야? 하는 의문은 없다. 응, 나는 아파. 집에 갈래. 누울래.

이런 통증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누워있는 내가 오랜만이라서.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니, 몸도 처음 겪는 일들 투성이다. 



어렸을 때 부터 자주 다쳤다. 운동에 소질이 없던 부모님을 닮았는지 달리기는 늘 꼴등. 언니 오빠는 검도에 태권도에 하고 싶은 신체 활동 학원을 잘만 말하고 가더만, 나는 그 학원 문 앞에서 늘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싫었다. 몸을 그렇게 왜 굳이 힘 빼며 움직여야 하지. 어릴 때부터 가만히 앉아 책 읽기만 주구장창 좋아했던 나. 덕분에 길을 걷기만 해도 어색한 몸동작으로 발을 헛디디곤 했다. 

아직도 내 무릎에는 여덟살부터 지금까지 다친 상처가 여럿 남아있다. 멍도 자주 든다. 팔목이나 손등을 보면 어딘가는 늘 까져 있거나 죽 그어져 있다. 누군가 그걸 발견하고 내게 묻는다. 


-여기 왜 그래? 언제 다쳤어?
내 대답은 늘 같았다. [몰라. 나 언제 다쳤지? 안 아팠는데.]



사실 아팠나보다. 그걸 애써 모른척, 통각을 뇌로 덮어버렸나 보다. 아주 사소하게 변하는 신체의 변화를 이제는 잘 알아차린다. 그래서 약간 아프면 바로 내게 컨디션을 묻는다. 스스로. [아파? 집에 가서 쉴까?]  

옛날에는 0퍼센트로 체력이 소진되기 전까지 견뎠다. 


[50퍼센트 체력이 남았을 때, 인정하기.] 

이게 내가 최근 실천하고 있는 내 신체의 예민함 인정하기, 불쾌한 지점을 넘지 않는 방법이다.







사소한 신체 변화, 잘 알아채는 거 하나 더 있다. ‘소화’.  



약간 더부룩하거나, 조금 입맛이 없어도 금방 음식을 놓는다. 옛날에는 그래도 눈 앞에 있는 음식이 1인분이니 다 먹고 나서 그 다음에도 괜찮은지 두고 보자. 설마 이걸 먹는다고 이 정도에 뭔 일이 나겠냐는 대책 없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점심을 조금 많이 먹거나, 혹은 같은 양을 먹은 것 같은데 좀 더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메뉴를 되돌아본다. 그럼 꼭 밀가루나 튀김 음식이 껴 있더라. 그래서 매일 저녁에 주로 먹던 메뉴인 라멘, 떡볶이, 칼국수를 애석하게도 떠나보냈다. 너무 먹기 싫지만- 맛이 없지만- 꾸역꾸역 몸에 좋겠지, 그리고 잘 때 속이 불편하지 않겠지 하며 샐러드를 먹는 날이 늘어간다. 물론 매일 하기는 힘들다. 이러다 신나게 약속이 잡힌 날에는 술도 먹고 매운 닭볶음탕도 먹고, 그렇다. 하지만 그 다음 날에는 몸 속 균형을 맞추겠다고 샐러드를 먹으려고 노력한다.


아, 내 몸 받아들이니 미각은 좀 고생이다. 맛있는 걸 억지로 떠나보내는 사람의 슬픔, 매일 먹방 영상 보며 침 흘리는 중. 심지어 나는 솔로 보다가도 데이트 하러 나갈 때 음식만 본다. 저거… 지금 먹고 싶은데, 하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운동을 무엇보다 싫어하던 내가 억지로 에어로빅 같은 몸부림을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다는 것. 집에 매트를 들여놓았다. 그리고 홈트 영상을 튼다. 매일은 못 한다. 제대로 따라하지도 못한다. 길게도 못 한다. 그래도 화내면서 한다. 이렇게 내 멋대로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약식으로도 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소화를 시키고 편안한 몸으로 잠들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운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땀 흘리는 행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 하면 더부룩하게 잠들고, 제대로 숙면 취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 오프라인의 친구들이 보면 박수칠 일이다. 정말, 진심으로, 운동 좀 하자고 온갖 보물을 다 줘도 도망다니던 나였기에.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래, 
네 나이 앞에 3자가 붙어서 그래. 
너도 이제 철 들었구나? 하고 주변 사람들이 웃으며 내 변화를 지켜본다. 그런 사람들 앞에 내가 할 말은 없다. 그저 맞다, 내가 늙었나 보다- 하고 맞장구쳐줄 뿐.



사실 그거 아닌데.
난 드디어 내가 예민하단 걸 온 몸으로도 받아들인 것 뿐인데.
그래서 내 몸을 신체로서 아끼는 개념을 알아가는 중인데.


저, 감정도 몸도 다 예민해요!

그러니 이 글은 내가 나에게 말하는 셀프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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