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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Feb 08.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온도, 태국

(18) 온도를 맞춰나가는 다양한 사랑을 사랑하여 - 일랑

태국 여행 3일차, 기찻길 시장에 갔다. 말 그대로 기찻길 위에 시장이 형성된 독특한 곳. 기차가 지나가면 그 때만 잠시 장사를 접고, 손님들은 모두 가게 안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기차가 갈 때까지 얼마간 지나감을 구경한다. 엄마와 나는 이 기차를 탔고, 각자 눈에 담은 세상이 달랐다.


 당연히 난 사랑이었다. 또 다시.


방콕은 무척 덥다. 오늘 기온은 34도였다. 민소매에 얇은 긴팔 가디건을 입은 나는 더위에 기분이 삼켜졌다. 사람들은 많지, 날씨는 덥지, 앞에 가야 할 길은 보이지도 않지, 길은 좁지. 온갖 나의 짜증이 모아지던 찰나. 가이드분께서 미리 에어컨이 기차 안에 없다고 말씀해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한국 욕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선보일 뻔 했다. 부리나케 자리를 찾은 엄마와 나는, 햇빛이 비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는 4-50대 되어보이는 프랑스인 커플이 앉았고, 통로에는 영국 혹은 미국 커플이 영어를 쓰며 서 있었다.

이 사람들의 사랑을- 구경했다. 이 무더위 속에, 이들은 자신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내 관전 포인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먼저 바로 앞 자리에 마주 앉은 프랑스인 커플.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에게 치댔다. 웬만큼 애정 표현 잘하는 사람이 자신 있게 도전장 내밀어도- 눈 하나 꿈쩍 않을 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여자의 곁에서 끊임 없이 말을 건다. 그리고 뽀뽀를 하기도, 포옹을 하기도, 손을 달라고 보채기도, 어깨를 깨물기도, 팔뚝을 쿡쿡 찌르기도, 그러다 팔을 스륵 감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창 밖의 모든 세상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듯- 핸드폰을 든 다른 한 손은 기차 밖으로 서슴없이 내민다. 그리고는 바깥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걸 여자는 가만히 쳐다보다, 손을 꼭 잡더라. 이 무더위에 저들은 저렇게 붙어있어야만 하겠지, 저게 사랑이라는 거겠지, 화가 날 법한 온도에도 재기발랄한 그의 말투에 나까지 어이없어서 허탈한 웃음이나마 날 지경이었는데- 연인은 오죽하겠나 싶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은, 뜨거웠다.


다음 커플. 통로에 서 있는 두 사람. 키가 차이나는 두 사람의 간격이 한 뼘 정도 떨어져있더라. 더워서 그런건가- 표정을 살폈더니 긴 생머리 여자가 불편해 보인다. 짜증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더위 견딤. 이를 보고 남자가 조용히 자신 머리 위에 달린 선풍기를 알아챈다. 그리고는 용케 스위치를 찾아 작동에 성공한다.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잠시 걸리고, 남자는 그 틈을 타고 다정히 말을 건넨다. 여자는 웃으며 남자에게 대답한다. 이 둘의 온도는 저 만큼이구나. 더워도 내색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친구를, 남자는 소중히 대해주려고 더욱 내색 않고 무언가 필요한 것을 알아채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은, 따스했다.



이 두 커플을 바라보다 무심결에 엄마를 봤다. 엄마가 내 무릎에 햇빛이 비치자 동동거리며 어떡하냐고 울상이었다. 그리고는 자기랑 자리를 바꾸자며 엉덩이를 들썩들썩. 손으로 해를 가려보겠다며 애쓰다가, 자꾸만 새어나오는 빛에 가디건을 덮어주다가, 이러면 너무 덥지 하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엄마, 나 안 더워. 괜찮아. 햇빛 안 세.



거짓말. 엄청 덥다. 햇빛이 쬐어 익어가는 내 한쪽 다리는 뜨겁다. 하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이므로.

 좀 더 내가 불편하고, 엄마 신경 안 쓰이게 마음 편하게 해 주기.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 태연하게 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랑은, 오늘도 차갑지 않았다.


지켜내는 사랑의 온도-
어려운 상황에서 드러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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