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은 고요하다. 로이킴 노래를 몇 개 듣다가 귀가 아파져 이어폰을 뺐다. 노면 소음만 달달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유튜브 소음이 그들의 이어폰 너머로 방귀 새어나오듯 들린다. 지난 주 강화도 국자와 주걱은 찾아가는 길부터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경계심을 풀지 못했는데, 이번 주 이천 오월의푸른하늘은 이 빨간버스만 잘 타고 내리면 되니 한결 풀어진다. 먹먹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기압도 반갑다.
그리고 엄마 전화.
아, 시간을 보니 오후 3시다. 토요일에 이 시간까지 연락이 안 되고, 내심 왔으면 좋겠는 애가 어딜 갔는지도 궁금하고, 누구랑 뭘 하고 노는지도 궁금할 거다.
진
짜
로
받기싫다,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 나 지금 버스 안. 도착해서 전화할게.
[어? 어디가는데? 으응, 그래.]
언짢은 내 목소리가 차분하고 조용하게 기분을 전달했나보다. 더 궁금한 것을 차마 묻지 못한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울컥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마음 안에 있는 생채기를 토해 내듯, 눈물 덩어리가 나왔다. 남들이 모르게 얼른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프다. 눈가를 정리했다.
좀, 가만히 좀 놔둬 주라.
뭐가 이렇게 잘못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왜 이럴까.
가족이 버겁다. 관계가 무겁기만 하다. 편하고 쉴 수 있는 다정한 연대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족은, 지금 나에게 편안하지 못하다. 내가 병들었다. 오면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그 손길들이 피로하다. 엄마는, 엄마는… 엄마는 늘 나에게 말한다.
-화랑아, 너무 잘 하려고 노력하지 마. 너의 삶을 살아.
그렇게 말해놓고는 실제로 아빠에 대한 서운함, 오빠에 대한 답답함, 언니 결혼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모두 나에게 이야기한다.그리고 나서 꼭 실수했다며 저 말을 덧붙인다.
나는 그럼 되뇌이는 것이다.
-엄마가 더 미안해하지 않게, 내가 다 괜찮다고 보듬어 주어야 해.
그렇게 엄마 눈짓 한 번, 손짓 한 번에 얼마나 언짢고 속상해하는지 주의깊게 보다보면 두 눈은 더 이상 내 마음을 보지 못한다. 이미 엄마에게 모두 고정되어 있는 걸. 그래서 난 내 마음을, 감정을 들여다볼 줄 모른다. 누군가는 나를 성숙하고 부러운 엄친딸이라고 하고, 엄마는 나를 '미안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책임감 있는- 독립적인 막내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지가 더 나빠졌는지도 가늠조차 못해 결국 스스로에 대한 환멸로 도망치고 마는 멍청이라고 부른다.
엄마가 엄마의 정서적 몫을 못 하는 데에는 아빠 때문도 있다. 확실히 자부한다.
본인이 남편으로 응당 해야 할 자신의 평생 연인 마음 a/s를 거부한다.서로 맞춰 주고 사는게 그리 힘든가. 서로 안 맞는 걸 알면서도 대화가 통한다며 결혼을 택했다 들었다. 그럼 속마음까지 서로 터놓으면서 필요한 점을 얻어내며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아빠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가족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그럼 답 나왔네. 아빠는 엄마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엄마는 아빠에게 자유로운 일상 시간을 보장해준다.아빠가 너무하다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줄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난 원래 그런 사람인데 네가 견뎌내야지-하는 무심한 태도가 싫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 버리는 내가 가장 싫다.
그저 그렇게 태어나버린 사람인데, 무리한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아닐까. 가족이라고 무조건 원하는 정서적인 보듬기를 다 해줘야 하는 건 아닐텐데- 하고 말이다. 수능 당일,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느냐"
며 놀라던 아빠에게
-내가 그렇게 공부하고 밤 새며 오늘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면서, 오늘이 수능이라는 것도 몰랐어?
라며 엉엉 컴퓨터 앞에서 가채점하며 울어버리던 상처받은 청소년 시절은 지났다. 나도 느슨한 딸의 연대를 그저 놓아버리기 직전으로 대한다. 그리고선 또 기대를 품어. 그래도, 아빠니까- 딸이 궁금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아빠는 딸이 저녁에 떠오르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부러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지.
-아빠, 아빠아- 뭐해애애애?
하는 애교섞인 목소리로. 그런 내 자신도 밉다.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일까 대체.
도돌이표같이 죄인 찾기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버스는 목적지인 덕평 1리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내보낸다. 지난 주에 챙겼던 물품 그대로 오늘도 오른쪽 어깨에 멨다.
나를 따라 죄책감도 같이 내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cu편의점을 두 개 지나 직진하면 갈색 입간판으로 '오월의 푸른하늘'이 써 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 사람이 안 살 것 같지만 누구보다 화려하게 꽃을 피어 진달래 색으로 가득한 몇 집들을 지나면 한옥이 보인다. 그게 오월의 푸른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