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점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을 줄 알았는데, 겨우 찾자면
나는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과 매일 치열하게 싸운다.
어느 날은 내가 이기고 어느 날은 내가 진다. 모순적인 사람은 스스로와 늘 견주며 살아낸다. 그러니 다채로워 좋겠다는, 볼 때마다 새롭다는 찬사는 집어치워줬으면 좋겠다.
어제는 별 일이 없기도, 많은 일이 있기도 했다. 누군가가 보기에 내 하루는 부러울 만치 평안했을 것이고, 내가 겪어내기에 내 하루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침대보를 쥐고 숨을 겨우 내쉬었으니까. 판단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당신은, 내 글을 읽어내는 불쌍한 독자지 뭐. 시간 낭비겠지만, 그래도 읽어줘서 고맙다. 베리 땡큐다.
어제 나는 대형 북카페에 갔다. 가서 네 시간을 내리 있었다. 어라, 민폐녀 고백이네. 변명하자면 거긴 대부분의 손님이 그렇게 오래 있으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한다. 아무튼간에 세 달 전에 쓰는 사람이 재미없어 때려쳤던 소설 하나를 드디어 다 써냈다. ‘프로젝트 지무화’. 무언가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지 못해, 나는 그 소설이 끝맺음을 못 맺은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 그래서 어제 날 잡고 그걸 썼지.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 쓸 작정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자꾸 상상이 더해지고, 그 상상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얼른 받아적고. 그렇게 하루만에 a4 10장 남짓한 소설 중-후반부가 완성됐다. 난 kbs 주말 연속극의 충실한 신하이니 에필로그에 반드시 행복하게 하하 호호 웃는 장면도 넣었다.
그렇게 뿌듯함을 느껴...야 할 무렵, 맥락 없는 눈물이 찾아왔다. 우울증 이 개 같은 자식, 눈치도 없이 지금 눈물샘을 툭툭 건드리냐. 가슴이 답답했다. 숨 쉬기가 힘들고, 눈에 눈물은 고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10분 정도간 버티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겨우 버겁게 숨을 쉴 수 있어 짐을 챙겨야했다. 버스에서도 뛰쳐내리고 싶은 마음을 꼭 참고, 집에 마침내 도착한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 때,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친구였다.
[님, 금요일에 만날 수 있음?]
-응, 가능. 숨을 할딱이며 힘이 쭉 빠진 채로 손가락만 움직여 답장했다. 그랬더니 오는 말은
[쉬는 거 부럽다. 좋지?]
...어, 그러게 좋네. 라고 웃으며 농담할 기분이 못 되는데. 아무도 내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고, 같은 병이면 더더욱 서로를 이해 못하는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다. 그러니 괜찮아?라는 낯간지러운 위로 말보다야 저게 낫긴 한데. 잘못된 시간에 꽂힌게지, 문장 하나가. ‘부럽다’는 단어가.
나도 오늘이 꽤 좋았다. 휴직하니 이렇게 주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네, 멋진 곳에 줄 안 서고 앉을 수 있네, 했다. 갑자기 눈물 장군이 들이닥치기 전 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이야, 누가 목을 조른 것 같은 정도로 숨이 답답한걸? 대단해 나도. 또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배가 하나도 안 고파. 일어날 힘도 없어. 숨도 겨우 쉬는데. 그냥 이렇게 한 달을 누워 있으면 나는 아사할까. 2024년에 아사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는 이상한 상상이나 한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부정적인 뇌를 그대로 느껴가며 견디는 것. 나를. 그리고 나에게서 싸워 이기는 건, 이런거다.
‘읏쌰! 하고 일어나 늦은 저녁이지만 뭐라도 먹고 씻기.’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도 늘 나는 싸움꾼이었다. 일단 시간. 하루 24시간 내에 자는 시간을 빼고 나는 뭘 그렇게 바쁘게 사부작거렸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쉬는 게 얼마나 게을러지는건지, 몸이 휴식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른한 시간들과 싸워냈다. 또, 일상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퇴근할 때까지 몰려드는 계획서에, 출근길부터 상사와 함께하는 징글징글한 사회적 관계에, 당연한 듯이 토요일에 업무 관련 연수를 잡아버리는 회사에게서 싸웠다. 지금은 졌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한 지 8년이 되가고 있으니 나는 365X8=2920번의 전투 중 지금 한 달 30일을 빼면 2920전 2890승 30패인거다.
그러니까 나를 예뻐하자던가,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 힘내요! 같은 고리타분한 자기계발서 문장은 내 글에서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이 다음에 쓸 문장이란, 이거다.
그런 세상에게서 좋은 점을 딱 하나 찾을 수 있다는 것. 행운.
얻어걸리는 좋은 우연.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는 게 탈이지만, 세상이 불합리하고 얼렁뚱땅인 제멋대로 나라라서 나에게 가뭄에 콩 나듯이 떨어지는 일. 2024년의 내 행운은 애석하게도 로또는 아니고, ‘관계’다. 우연한 관계. 처음에 만났을 때는 이렇게 나를 위해 마음을 써줄 줄 몰랐던 직장 동료들이라던가, 글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실망해 친해질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글쓰기 클럽 사람들과의 예상치 못한 즐거운 만남. 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으면서, 누구인지 사실은 제대로 모르면서 응원하는 인스타 맞팔 친구들.
마침 휴직하기에 딱 좋게 배정된 내 올해 업무 부서라던가 어쩌다 눈에 띄게 되어 진료비를 지원받게 된 청년 마음건강지원 사업 포스터까지 포함해 주겠다.
개떡같이 떨어지는 불행이 수두룩 빽빽이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쫌쫌따리 죽지는 말라고 행운을 쏙쏙 끼워넣는 이 못된 세상 같으니라고.
나는 매일을 포춘쿠키 뜯으며 살아낸다.
오늘도, 제발 무사하자는 기도와 무관하게 모종의 사건은 벌어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