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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Jul 08. 2024

마약 옥수수와 나의 결핍, 여름의 폭식 앞에서

나는 세상에 무슨 불만이 쌓여서 폭식으로 몸을 혹사시키나

옥수수에 마약이 든 게 다름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가 이렇게 빵빵하게 차올랐는데도 식욕 주체 못하는 강아지마냥 계속해서 찜을 쪄대겠냐고.


 심지어 하도 빨리 먹고 싶어 아삭한 식감으로다가 금 입을 들이대다보니, 입천장은 뜨거워 까지고 양치를 하면 피가 흘러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뜨겁고 날이 선 옥수수 낱알을 뜯어먹다가 생긴 영광의 상처다. 스읍, 이만하면 좀 걱정되기 시작한다.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 더부룩해 싫어하는 내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대고 있다는 건, 둘 중에 하나이니 의심을 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음식에 마약이나 카페인, 알코올 등 중독적인 무언가가 들었거나 혹은 마음에 허기가 졌거나의 이유로. 전자면 마트 두 곳에 마약류 신고를 동일하게 해야 할텐데, 그건 귀찮고 무서우니 후자라고 생각해보겠다.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될 것을 나는 왜 또 나의 허기를 의심하고 있나. 묻냐면 내 불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둔해진 몸상태, 그리고 이걸 이겨먹는 어딘가 고장난 정신머리상태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은 일종의 자해 행위라고 상담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기에 성실한 학생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로 한다.    

 

“그렇게 맛있어? 진짜 이건 잘 먹네. 신기하게.”


최근 나와 식사를 자주하게 된 지인이 말했다. 나는 여러 알을 동시에 앞니로 야무지게 깨물며 답한다.


“이거, 여름에만 먹을 수 있잖아. 나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 먹을 수도 있어. 간식이랑 야식도.”


그런 나를 보고 그저 웃으며 먹고 싶은 만큼 먹어야 한다고 제 몫의 옥수수도 내 앞으로 밀어주는 좋은 사람. 덕분에 야식도, 아침 식사도 모두 옥수수로 클리어. 하지만 무언가 자꾸 부대끼는 답답함.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 또 뭘 먹는걸로 풀고 있는거야.’


 배가 고프고 부른 걸 잘 모르게 된 최근의 몸상태에서까지 더부룩함이 느껴질 정도로 먹어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내 안의 판사가 땅땅땅 판사봉을 치며 결정을 내렸다. 이 불쌍한 소시민인 나의 뇌세포는 그저 판사님 말씀이 옳으시니- 나를 채근할 수 밖에. 근데, 뭐 때문인지 모르는데 어쩌죠. 그래도 일단 심문실로 들여, 넵. 1인 다역을 너끈히 소화해내는 내 정신머리들은 영문 모르고 끌려온 내 몸에게 무턱대고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하며 탐문한다. 아둔한 내 몸은 또 겁을 쉽게 먹지, 절제를 못하게 된 나의 연유를 저 깊은 마음속에서 길어와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그런데, 마중물이 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로 어떤 마중물을 부어야 쉽게 해결책이 퍼올려질까. 옥수수로 점철된 나도 모르는 내 결핍. 뭐야. 가사 없는 노래를 들으며, 키보드를 의미 없이 두드리며, 괜히 장마철에 춤추는 나무들에 시선을 두며 나는 내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말도 안 되게 임신인가, 고민했다가 그건 확률이 제로인뎁쇼, 하고 기각. 정신과 약을 바꾼 게 식욕과 관련이 있나, 이건 이번주 토요일 의사선생님께 여쭤봐야 알게 되므로 판단 보류. 스스로 과도하게 채찍질하던 몸에게 성과급으로 주어진 몫인가, 내 몸은 A+등급을 판정받은 것인가, 그래서 이만한 당근- 아니 옥수수를 와라락 넣어주는 건가. 엉뚱하게 올 해 병가로 줄어들 내 성과급을 걱정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닿았고, 오히려 뒷걸음질치다 정답을 쿡 즈려밟아버린 이 기분은 뭘까 싶어 좀 더 탐구해보기로 했다. 생각, 이리와 봐. 너 나랑 같이 본격적으로 좀 더 엉뚱해지자.     


최선을 다해 그만 기특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이제서야 고백하는 건데, 내 몸은 이미 백기투항 중이었다.

 입안은 다 헐었고 입술은 부르텄으며 먹는 족족 살은 다 빠져버리고 있었으니. 그러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일상 생활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세상에게 지기를 선택했다. 삶을 잠시 쉬어도 되는 직장 복지 앞에서 나는 뭘 그리 망설였나. 주변 동료들이 내 일을 대신 떠맡아 안 그래도 바쁜 시간이 더 바빠질 것이 미안해 망설였다. 또, 고객님들의 불편도. 내가 책임지고 맡은 프로젝트, 나 때문에 고맙다는 누군가들의 시간에 저해되지 않고 싶었다. 그러다 내 시간을 내가 파괴자마냥 후드려패면서 견뎌내고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정말로 몰랐다. 내 몸만 알았다. 귀찮게 뜨거운 국물을 들이부을 때 유달리 얼얼했던 입안, 여름에도 필요했던 한밤중의 립케어, 그리고 어떤 유튜브도 꼴보기 싫어 소파에 웅크려 가만히 숨만 쉬던 그 어느 주중들. 


나는 또 다시 정신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기가 죽도록 싫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꼭 바쁠 때 이래야만 하니? 나는 나를 질책했고, 힐난했다. 우울증도 한 번이 귀엽지 두 번부터는 질린다고. 

내가 나에게 질렸다기보다는, 내가 사랑한 주변 관계들이 나의 또다시 빠져버린 우울의 늪에 나를 놓아버릴까 두려웠다. 어떻게 얻은 세상과의 사랑인데- 빛인데- 이걸 또 반납해야 하다니. 내가 뭐가 모자라서. 내가 뭘 잘못해서. 내가 뭐가 필요하길래.


[위로와 따스한 응원]같은 달짝지근하고 아름다운 단어들은 내게 필요치 않았다. 불안에서 내달린 내가 필요한 단어는 딱 한 어절. ‘쉼.’ 두 어절로 늘려주면 ‘휴식.’, 세 어절로 마지막으로 늘리면 ‘멈추기.’     


세상과의 패배 열흘차, 그러니까 휴직 10일차의 감상은 이렇다. 배가 부르고 고프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7시에 일어나 출근했냐는 듯이 잠이 많아졌다. 정신과 약을 비타민처럼 자연스럽게 먹게 되어, 알약 먹는 실력이 늘었다. 살이 좀 쪄서 바지 버클이 꽉 조인다. 마음껏 생각을 한다. 일어나서 할 게 생각밖에 없으므로.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본다. 장장 3년 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주식 책, 드디어 오늘 ‘현금매수’ 버튼을 눌렀다. 파란색이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됐고, 빨간색은 뜨기 힘든 반가운 색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의연할 줄 알았는데, 내가 참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공모주 청약] 버튼이 있길래 무심코 꾹 눌렀다가 덜컥 받아버린 한 주가 남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몇 달 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던 그것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치킨을 공짜로 먹을 생각에 내 침도 같이 질질 흐르기 시작했다. 


또, 요리를 시작했다. 조리만 겨우 하던 내 자취 8년살이에 칼질이 조금씩 늘어간다. 오이가 8개에 2천원이면 파격적으로 저렴하니 무조건 사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결단력을 아주머니들의 열기에서 배웠다. 오도카니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너도 하나 담으라는 무언의 집단 행동 최면에 걸린 내가 오이 김밥이라는 걸 만들게 됐다. 썩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하니까. 어라, 내가 만든 김밥이 맛있을 리가 없는데 쌈장 마법인가. 왜 맛있지. 의문에 가득찬 나는 간도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만 때려넣은 우당탕탕 왕김밥을 만들어냈고, 누군가에게 먹여봤다. “어, 이거 간 했어? 딱 맞네. 너무 맛있다.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 요리 잘한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 입 했더니, 어라. 이거 왜 간이 맞는지 나도 모르겠다. 


숨겨진 세포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한다. 내 인생에 출연하지 못했던 엑스트라들이 주연으로 드디어 오랜 무명생활 끝 발돋움하게 되었다. 매일 쓰던 글을 모아 공모전이라는 데 내 보기 시작했다. 투고가 무서워 두 눈 질끈 감고 매 번 PPT를 만들지 못했다는 핑계로 도망쳤던 나는, 누군가의 평가가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었다. 공모전 결과 발표가 10월 1일이라는데 얼른 발표됐으면 좋겠다. 이건 나의 로또같은 마음이다. 분명 안 되겠지만 일요일 오후 8시가 되기 전까지 1등 소감 발표 연습을 하는 그런 신기루와 같은 마음.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질지언정 먹을 때 달콤한 그런 마음. 


옥수수 먹다가 이게 무슨 고해성사냐, 
그러니까 네 결핍이 뭐길래 자꾸 배부른데도 뭘 먹어대냐-에 대한 셀프 수색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심심해서, 먹고 싶은 걸 찾았으면 바로 먹기로 결정하게 됨. 옥수수가 먹고 싶었으면 찔 줄을 몰라서 못 먹었는데 이젠 찔 시간도 찔 실력도, 냄비도 모두 갖췄으므로 머릿속의 찐 옥수수가 현실로 눈 앞에 딱하니 완성됨. 그리하여 나는 완성된 나의 신기루가 사라지기 전에 앞니로 콱 찍어 배에 집어넣음.’     


내 결핍은 그러니 결국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인가 보다. 그간 못했던 것들 앞머리에 번호표를 달아놓고 하나 둘 씩 피아노 연습 1번에 빗금 하나 지우는 옛 실력 썩히지 않고 빗금치다보니 그 결핍, 이렇게 해소되고 있나보다. 나날이 늘어가는 내 칼질과 뱃살은, 사실 내가 더 살이 찔 수 밖에 없었던 식탐이 현실화 되어가는 무서운 증거들인가 보다. 아이 무서워- 그러니까, 오늘 밤은, 무서우니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마트까지 걸어서 15분, 돌아오는 데는 손이 무거워 더 오래 걸리겠지만 난 내일도 시간이 있을 거니까 택시같은 거 타지 말고 산책하듯 다녀와야겠다. 


아, 옥수수도 한 팩 더 사와야겠다. 이제 몇 분 쪄야 내가 딱 원하는 식감으로 부들거리는 지도 알았으니까. 진짜 진짜 최종 옥수수 찌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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