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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l 22. 2024

익명의 펜팔에게, 내 세상의 꼬챙이는 사랑이라 열받아!

열받아도 어쩌겠어, 내가 너무 예쁘니 참아줘야지- 세상 이놈쉬키

*익명의 펜팔에게 서로 일상을 주고받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 편지 중 하나를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익명의 펜팔님.

202호가 습하지만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날씨를 틈타 202호에 무단침입한 버섯들에게 제 안부를 전해주세요. 잘 살아있다고요. 예쁘게도.     


‘어떤 의미에서 내 ( )은 내 인생의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실과 같아서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삶은 계속된다.’

베르나르 뷔페라는 사람이 쓴 말이래요. 뷔페라니, 저는 애슐리 뷔페말고는 뷔페가 무슨 말을 하건 관심이 없었는데 말예요. 원래 명언이라 함은, 남들에게 마음을 빼앗고 삶에 이정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저 빈 칸은 왜인지 굳이 알고 싶지가 않았어요. 제가 보자마자 빈 칸에 넣고 싶은 단어가 있어서랍니다.     


저는, 사랑을, 꼽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사랑하여]가 제 인생 한줄 평이거든요. 인스타 소개글에도 제일 첫 번째로 쓰여져 있고요.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제 인생의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실과 같았어요. 사실 실이라기보다는 큰 꼬챙이랄까, 양갈비 구워먹을 때 현지인들이 쓰는 날카롭고 뜨겁고 약간 때가 탔지만 왠지 거기다가 고기를 구워먹으면 참 맛있을 것만 같은 그런 철제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꽂혀져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아무 남자나 막 만나면서 연애를 계속 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요, 제게 사랑이라는 건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뜻하는 말이거든요.


 마음과 마음의 만남. 깊어지는 우정에서도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을 있는 대로 서툴게 풀어낸 엄마와의 어느 날 전화에서도 사랑을 발견했고요. 물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따금씩 사랑을 발견합니다. 제가 해 준 밥을 기특하게도 다 먹고 배가 부른데 맛있어서 더 먹고 싶다며 화장실로 호다닥 달려갈 때요. 그 때 저는 사랑을 느껴요.


 ‘더 잘 해 주고 싶다.’ 이게 제가 내린 사랑의 가장 최근 정의입니다.

아, 한 달 전까지 제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것.’이었어요. 누군가의 단점, 끌어안아야 할 제 빈틈까지 내보이면서 서로 함께하기로 하는 게 사랑이지 뭐겠어요.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고자 부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못해서 삶을 따가워했고, 저를 경멸했어요. 그런 제 시간들이 쌓여 우울했던 어느 날, 장일호 작가님의 ‘슬픔의 방문’을 보다가 눈물을 펑펑 흘렸지 뭐예요. 에세이를 싫어했는데 저는 그 날 이후로 에세이 덕후가 되었답니다. 추천할게요. 제가 감동받아 눈물흘렸던 구절이란 이런 것이었어요.  

   

[행간에 숨기도 하고, 행과 행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세상과 몇 번이고 거듭 화해했다.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중략)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익명의 펜팔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슬픔을 매만지는 마음, 끝없이 행복을 밀어내는 마음이 무엇인지 저는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그럴 때 슬픔의 방문을 떠올립니다. 방문한 슬픔을 손님으로 맞아들여 자리를 깔아드리고서는 네가 내 인생에 찾아와도 난 아픈 채로도 괜찮다, 그러니 언제든지 내게 다가와 세상의 다친 마음을 기대 달라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슬픔을 끌어안고도 살아 숨쉬는 오늘을 저는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요. 저를, 세상을, 오늘을, 글을요.      


무섭고 밉다고 삶을 밀어냈을 때에도 저는 결국 사람과 책 사이에서 세상과의 화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화해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세상이 혼자 제게 손을 내밀어줘서도 안 되었고- 제가 혼자 버둥거리며 세상을 붙잡고 애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더라고요.

 서로, “야, 우리 이만 화해하자. 이만하면 나도 너도 지쳤다.” 할 때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하고 부둥켜 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화해를 오늘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시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는 이 힘을 저는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여 저는 제가 기특하니까요. 개떡같은 세상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등지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 제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삶의 꼬챙이란 ‘사랑’이란 두 글자라고 대답해도 될까요?     


일요일 마지막 날에 쫓기듯 편지를 써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익명의 펜팔님과 달리 두서 없이 와라락 풀어낸 제 이상한 사랑타령에 정신이 혼미해 지시거든, 그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유로운 마음이 단정한 출근길로 바뀌어야만 하는 일요일 오후에, 제 편지가 부디 답답한 글자들이 아니기를 바라며, 일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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