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화랑 Aug 05. 2024

I'm not fine thank you and you

행복을 잃은 자에게, 여행이란 또 다른 무성 영화일 뿐이라도, 어리석게도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금기 질문이 있다. 먼저, "왜 우울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우울증은 무슨 일이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럼 다치는 질병이 아니다. 그저 어느 날, 이유 없이 갑자기 우울하고 슬퍼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고 그런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는 것 뿐. 내 경우도 그렇다. 어느날, 이유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직장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게 완벽하잖아, 가족도 건강해, 연인도 생겼어, 사랑도 뭔지 알게 됐어, 친구들도 평안해, 네 취미가 뭔지도 알게 됐어, 운동도 해, 대체 뭐가 부족해서 울어?'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나는 그렇게도 나를 힐난했다. 그게 우울증의 특징이다. 스스로를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 것. 감정을 잘 못 느낀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질문 2위는, 오늘의 주제이다. 


"언제 그럼 웃어요? 행복을 못 느껴요? 행복한 순간이 있지 않았어요?"


어, 아, 음, 그게를 번갈아하며 상대방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리고는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봐요 하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붙이며 결국 자리를 금세 뜨곤 한다.


나는, 행복한, 순간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서.
그게, 나에게도, 너무, 큰, 상처여서.


억지로 짜내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진짜 없으니까. 하늘이 푸르러서 아름다웠기에 행복했다던가, 주말에 자고 일어났더니 늦잠을 더 자도 돼서 행복했다던가, 어느 날 새로 간 카페의 아메리카노가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행복했다는 그런 소소하고 확실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젠장- 나는 감정 무기력 환자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함께 떠안고 약을 먹은지 어언 2개월이 되어간다. 나는 여전해, 약의 성능을 늘 의심한다.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증폭시켜준다고. 불행의 늪에 빠진 뇌에 구명보트를 펼치는 격이다. 그래놓고 겨우 바다 위에서 헤엄치는 자에게 "이제 됐죠? 자, 이제 당신 살았으니까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이야기해 봐요!"라고 어깨를 흔들면 그 사람은 뭐라고 할까.


이 개... 호랑말코 쉬키야, 삶을 살아내는 것 말고 삶을 즐겨야 뭐 어떻게 행복하다고 나올 거 아냐. 너는 땅 위에서 따뜻한 밥 먹고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사니까 겨우 살아내는 사람도 너랑 똑같아 보이냐?


이 정도의 폭언이 나오지 않을까. 오른 손 왼 손 양손에 중지가 삭 들려올려지는 건 덤이고.


8월 스케줄이 꽉 찼다. 여행, 집단 상담, 그리고 또 호캉스. 덕분에 부모님과 약속했던 일본 여행은 패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달력이다. 부산 여행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다가, 하루 짐 쌌다가, 다음 날 4박 5일로 레지던스 호텔에 대학교 친구들끼리 강남으로 행차하고, 예쁜 옷 입고 사진 찍으며 끝나면 저 멀리 시골로 정신 건강을 위한 집단 상담행. 그러고 나면 내 8월 긴 휴가는 끝이 난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단 뜻이다. 그리고 오늘은 부산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행복에 절여져서 신나게 서울용 예쁜 꼬까옷을 싸고 있어야 하는 내 표정은 얄궂게도 어둡다. 누군가 날 보면 자꾸 물어서 곤란할 정도로.

"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괜찮아? 어디 아파?"


알잖아, 나 몸 말고 다른 데가 아픈 거. 하고 소리라도 바락 지르고 싶지만 참는다. 그런 행동 자체가 내가 고장나 버렸다는 신호니까. 쓸데없는 데 이상한 감정 표출하기. 나는 내 존재에 맞서 늘 유도를 한다. 엎치락 뒤치락. 친구들과 2박 3일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점이라고는- 정말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덥다, 부산은 미친 듯한 폭염이었고 나는 내 몸이 이렇게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인 걸 처음 알았다, 내가 더위에 지치면 토를 하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뭘 사도 충분치 않다, 뭘 배불리 먹어도 더 먹고 싶다, 그리고는 그런 내가 역겹다.]


가 전부. 그렇지만 이런 내가 여행을 모조리 취소하고 집에 콕 박혀서 글이나 쓸랜다, 나에게 집중하련다 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것또한 두려운 일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보면, 나같은 애는 불행 오브 불행 넘버 원을 알아서 찾아가 그 앞에서 오도도 떨고 있을테니.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고는 나 정말 별로라서 그렇다며 알아서 혼자 때리고 맞고 있겠지. 이 괴상한 취미 같으니라고.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집에 붙어있고 싶다. 하지만 누가 지금의 스케줄처럼 나를 지칠만큼 밖으로 꺼내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럼 오늘처럼 불만을 토해내면서, 여행따위 사실 하나도 안 즐거웠다고 이렇게 뒷담화나 글로 써내리면서 궁시렁거리는 입을 달고 또 다음날의 짐을 싸고 있을테니. 그러니 우울증 환자의 주변인들이여, 그들을 귀찮게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아예 빼앗지는 말고, 하지만 사랑을 질식할 정도로 주도록.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귀찮은 짓이냐 싶겠지만 그렇게 모순된 존재가 우울증 환자다.


날 사랑해 줘, 아니 날 방치해 줘, 아냐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진 말아줘, 그렇다고 맨날 나를 들여다보진 말아줘, 아 아니야 매일 들여다봐는 줘, 아 그리고 밖에도 데려다 줘. 나는 너가 싫다고 발버둥을 치겠지만 무시하고 날 사랑한다고 꼭 안아 줘, 그렇다고 진짜 싫을때는 좀 놔 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태로 살아내는 인간들에게는 그러니 행복에 관한 질문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나 한정, 우울증 환자 한정, 감정 결핍자 한정, 이런 것을 구명보트에 던져 주도록 하자고.

[행복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내는 당신의 힘은 무엇입니까.]


즐겁고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아름다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되었으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먹는 이유. 매 주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어렵사리 두드리고, 상담센터 상담선생님께 "이제 개인 상담으로 저는 화랑님을 상대하기에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집단 상담을 꼭 신청하셔야만 해요."라고 누군가의 힐난을 들어가면서 또 다음주에 그곳을 염치불구하고 찾아가는 이유.


[어느 날, 이유 없이, 눈물이 찾아왔듯 웃음도 찾아올 것 같아서.]
그러니 결국 행복을 증오하는 자는 행복을 그렇게나 강구하는 자임을. 나는 그러니 다가올 언젠가의 행복을 위하여 지금을 견디고 있음을.
24년도 상반기의 행복한 순간은 없어도, 24년도 하반기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고 있음을.


결국 내 행복은, '미래의 웃는 나를 꿈꾸는 것'일 테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이런 개떡같은 글을 썼던 오늘이 귀엽다고 푸스스 웃어버릴 테다. 그렇게 흐트려지는 공기 섞인 웃음소리에 모든 슬픔의 토악질을 뱉어버릴테다.


그러니 나는 내일 강남 호텔에 갈 준비를 한껏 짜증을 내면서도 착실히 할 것이다. 내일의 내가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갑자기 찾아올 어느 날의 1%를 위해서. 


그러니 내 친구들이여- 이런 개떡같은 투정도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받아주기를. 그런 내 손을 놓지 말고 손 끝으로나마 잡아주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