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잃은 자에게, 여행이란 또 다른 무성 영화일 뿐이라도, 어리석게도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금기 질문이 있다. 먼저, "왜 우울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모든 게 완벽하잖아, 가족도 건강해, 연인도 생겼어, 사랑도 뭔지 알게 됐어, 친구들도 평안해, 네 취미가 뭔지도 알게 됐어, 운동도 해, 대체 뭐가 부족해서 울어?'
"언제 그럼 웃어요? 행복을 못 느껴요? 행복한 순간이 있지 않았어요?"
나는, 행복한, 순간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서.
그게, 나에게도, 너무, 큰, 상처여서.
이 개... 호랑말코 쉬키야, 삶을 살아내는 것 말고 삶을 즐겨야 뭐 어떻게 행복하다고 나올 거 아냐. 너는 땅 위에서 따뜻한 밥 먹고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사니까 겨우 살아내는 사람도 너랑 똑같아 보이냐?
"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괜찮아? 어디 아파?"
[덥다, 부산은 미친 듯한 폭염이었고 나는 내 몸이 이렇게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인 걸 처음 알았다, 내가 더위에 지치면 토를 하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뭘 사도 충분치 않다, 뭘 배불리 먹어도 더 먹고 싶다, 그리고는 그런 내가 역겹다.]
날 사랑해 줘, 아니 날 방치해 줘, 아냐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진 말아줘, 그렇다고 맨날 나를 들여다보진 말아줘, 아 아니야 매일 들여다봐는 줘, 아 그리고 밖에도 데려다 줘. 나는 너가 싫다고 발버둥을 치겠지만 무시하고 날 사랑한다고 꼭 안아 줘, 그렇다고 진짜 싫을때는 좀 놔 줘.
[행복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내는 당신의 힘은 무엇입니까.]
즐겁고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아름다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되었으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먹는 이유. 매 주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어렵사리 두드리고, 상담센터 상담선생님께 "이제 개인 상담으로 저는 화랑님을 상대하기에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집단 상담을 꼭 신청하셔야만 해요."라고 누군가의 힐난을 들어가면서 또 다음주에 그곳을 염치불구하고 찾아가는 이유.
[어느 날, 이유 없이, 눈물이 찾아왔듯 웃음도 찾아올 것 같아서.]
그러니 결국 행복을 증오하는 자는 행복을 그렇게나 강구하는 자임을. 나는 그러니 다가올 언젠가의 행복을 위하여 지금을 견디고 있음을.
24년도 상반기의 행복한 순간은 없어도, 24년도 하반기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고 있음을.
그러니 내 친구들이여- 이런 개떡같은 투정도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받아주기를. 그런 내 손을 놓지 말고 손 끝으로나마 잡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