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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Aug 19. 2024

집단상담캠프, 새벽 6시에 마라톤을 뛰라고요?!

전 운동 못하는 찌질이인데요,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느꼈다. 마음이 일렁였다. 생각에서 자유로웠다. 나에게 닿았다.] 4박 5일, 핸드폰을 중학생 이후로 처음 뺏기면서 다녀온 집단상담캠프의 감상이다. 가슴이 뜨겁다. 심장이 뛰는 게 세차게 느껴진다. 조금 벅차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부터 죽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들은 상담캠프 규칙상 비밀이다. 다만 내가 오늘 이야기할 건, 내가 새벽에 한 달리기에서 혼자 깨달은 사실, 혹은 느낌.


4박 5일동안,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여섯시부터 간단한 몸풀기 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다시 돌아오는 달리기를 한다. 대략 6-8km 될 거지만 사실상 힘든 코스라 평지 10km처럼 느껴질 거라는 그 지옥의 코스를, 나는 매일 한 시간 반씩 걸려서라도 끝까지 해냈다. 한 번도 뛰는 걸 좋아해본 적 없다. 운동도 싫어한다. 소싯적에 체력장이라고 오래 달리기를 하면 반에서 맨 뒤로 슬슬 걸어오는 성의 없는 애,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애가 매일 발에 물집을 잡혀가며 뛰었다니, 나도 내가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첫째 날에는 그래서 걷다 뛰다를 마음대로 했다. 덕분에 4등인가, 일찍 들어와서 뿌듯했다. 그런데, 어떤 말을 들었고 그게 마음에 꽂혀버렸다.


“달리다가 걷는 사람들 뭐야?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 끝까지 달려내는 게 이 달리기의 목표인데, 너네 다들 뭐해? 간절하지 않아? 다들 간절해서 여기에 비싼 돈 들여 4박 5일동안 시간 빼면서 온 거 아냐? 그럼 뭐든 열심히 해야지!”


누군가의 외침. 나는 빠르게 수긍했냐고? 아니, 절대. 대신 반발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저 사람 말, 내가 한 번 끝까지 다 듣고 달린 다음에 꼭 말하리라.

 [네가 한 말,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다. 네 정답이지 내 정답 아니다. 내가 해보니 별로더라.]

 라고. 그래놓고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달리다가 뿌앵 울면서 반환점을 돌았다. 다른 사람과 부둥켜 안으며 진정했다. 달리기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느껴서, 드디어 오늘을 느껴서 감격해서다. 날 드디어 찾아서.


죽도록 힘들었다. 심각하게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이런 코스를 집단 상담에 대체 왜 넣어서 이 지랄을 하게 만드는지, 나는 여기 오기로 결정한 내게 먼저 화가 났다. 그러다 생각했다. 아니지, 날 자책해선 안 돼지. 그러다 왈왈 짖는 소리를 들었다. 내리막길에 집들이 있는데, 그 중 한 집에서 개를 키웠다. 그 개는 맹렬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꺼지라고. 얼른 내 집 주변에서 사라지라고.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러자 마음에 갑자기 울컥 치밀어오르는 열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길에서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렇게.


“아니, 저 쪼그마한 개새끼도 지 역할 다하겠다고 저렇게 온 몸 다해 왈왈 짖어대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내 마음 하나 못 지켜서 지금까지 이렇게 막내 딸 개고생을 시키는거야? 여기에 뛰게 만든 건 내가 아니고 엄마 아빠네! 아, 짜증나. 자기들이 자기 역할 제대로 했으면 내가 이렇게 아프고 짜증나고 더운 짓 안했을 거 아냐!”


아, 참고로 내 우울증의 원인을 알게 됐다. 부모님께 화를 못 내는 그저 착한 딸 역할에 갇혀서 그렇다고. 그러다가 자신을 잃었다고. 역할에 갇혀 착한 척 다른 사람만 챙기고 자기는 죽이려고 드는 자살 시도자라고. 그러다 너 진짜 죽는다고. 내게 상담가들은 너, 칼 보고도 안 무섭다며 요새. 물었고 나는 뜨끔했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울부짖었던 내 안의 화랑이가, 드디어 눈을 반짝 떴다.

 나는 그리하여 외쳤다. 일단 날 쫓아와 덥게 만드는 태양에게부터.


“아, 꺼져 제발!”

한 번 소리지르고 나니 마음이 상쾌했다. 개운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달리면서 엄마 아빠 욕을 신명나게 속으로 했다. 그러다 화가 치밀어오르면, 욕을 뱉었다. 아주 크게, 다 들리도록.

“아, 미친 진짜 열받아! 다 내 인생에서 제발, 제발 꺼져!”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짜증나!”

...사실 좀 더 심한 욕인데, 심의를 거쳤다. 그러고 나니 내 안의 화랑이를 만났다. 나는 내게 물었다.


[화랑아, 지금 어때. 제발 생각 말고 느껴봐. 어때, 힘들어 안 힘들어?]
나는 대답했다. [힘들어!]
나는 또 묻는다. [그럼 저 새 소리는 어때, 좋아 안 좋아?]
나는 울컥해 대답한다. [좋아! 나 느껴져! 다!]
화랑이는 내게 칭찬한다. [잘했어. 너 너무 예뻐. 기특해.]


나는 내 안의 화랑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리는 달리면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이처럼 뿌앵하고 울었다. 지금까지 내가 울면서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제발 소리내서 울어. 네가 소리 없이 끅끅 눈물만 흘리는 거 보면 내가 더 아파.]라고.

나, 이제 소리내서 울 줄 안다. 마라톤에서 배웠다. 욕하면서, 짜증내면서, 느꼈다. 그래서 반환점을 돌 무렵, 나를 기다리던 사람 중 한 명에게 폭 안겨 남은 눈물을 털어냈다. 이건, 슬픔이 아니었다. 온갖 감정이 나를 휘몰아쳤는데, 순서대로 열거하자면 짜증, 분노, 서러움, 벅참, 평안함, 뿌듯함이다.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나는 소리 없이 고통을 참지 않는다. 이제 소리내어 있는 대로 칭얼거린다. “아, 더워 죽겠네! 열받아!”, “다리 아파 뒤지겠다!”라고. 그렇게 내 안의 화랑이와 나는 드디어 마음과 마음으로 맞닿았다. 뭐, 그래서 날 사랑하게 되어 죽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심심하면서도 감동적인 그런 이야기. 달리기에 흥미가 약간 생긴 건 덤이다. ...사실 글 쓰면서 앞에서 조금 울었는데 그것도 내가 기특하고 예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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