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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Aug 26. 2024

우울증 치료가 덜 된 채 복직한 기분, 어떻냐고요?

살아내야 하는 나의 생계,  당연히 뭣같지만 변한 게 있다고!

복직했다. 우울증이 심해져 병가를 낸 지 어언 2달, 나는 12시 땡 종을 치면 자본주의 세상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야하는 신데렐라였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부린 일상 멈추기라는 두 달의 마법은 끝이 났다. 평범한 직장인, 서른 살 여자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어떻냐고? 뭐같지.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상사는 여전히 지랄맞게 나에게 꼽을 주고, 동료들은 내가 또 우울증으로 탈주할까봐 다들 조심하고.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마법이 풀린 나. 나는 이제 연약히 울며 움츠려들던 여느 사연 있는 npc가 아니다. 게임같은 세상 속, 막대기라도 잡고 몬스터를 무찌르는 용맹한 전사다. 

나는 레벨업 퀘스트를 무찌르고자 칼을 휘두른다. 일상에서, 이건 누군가의 말에서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해 왕왕 짖는 나의 도전기. 특히 레벨 1, 하루차의 기록.


퀘스트 1, 거슬리는 말 하는 사람에게 표현하기. 

나의 상태가 어떻냐고, 무척 걱정했다며 내 자리로 다른 부서 부장님이 찾아오셨다. 나는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감정에 늘 솔직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했다. 2년동안 먹었던 약의 양 중 최근이 최대치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걱정하셨다고. 아직도 악몽을 꾼다는 말을 했더니 약 복용량을 늘려놓아 약을 삼키키도 버겁다고. 그랬더니 부장님께서 하시는 말씀.


“자기야, 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 내가 암이었을 때 머리가 다 빠지고 그래서 엄청나게 아팠단 말야. 의사가 무슨 약을 먹으라고 엄청나게 처방을 해 놨더라고. 근데 나는 하나씩 다 검색해서 약 먹는 게 안 좋을 것 같아가지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엄청 노력했거든? 약 하나씩 안 먹기 시작하고 알아서 줄였다니까. 그랬더니 글쎄, 몇 달 뒤에 의사가 엄청 놀라더라고. 어떻게 이만큼 갑자기 좋아질 수 있냐고. 내가 약 필요할 때만 먹었다는 말은 안 했는데, 자기도 그래야 해. 이겨내려면 약 하나씩 다 검색하고, 다 했지? 뭐, 안 했다고? 너무 약에 의존해선 안 돼.”


로 시작하여 5분이 넘게 잔소리 섞인 말은 끝이 날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까끌거렸다. 어디서 그랬냐고? 그건 내가 용기 내 표현한 대답에서 찾으면 된다.


[그, 저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 마음이 불편한 말이 있어서요. 저는 제 나름대로 이겨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약을 하나씩 안 먹는다던지, 이런 것들은 제가 신체가 아픈 게 아니라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아요. 병도 제 멋대로거든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왜 더 안하냐는 말씀 같아서 좀 그 말이 힘들었어요.]


옛날 같았으면 그저 이해해고 혼자 아파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나를 위해 신경써주려고 일부러 달려온 부장님의 상황과 아팠던 과거 병력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좀 거슬리는 말이 있어도 그저 참고 넘겨야 한다고, 그게 올바른 사회 생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제 스스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1순위로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인 걸. ‘참지 않는다고 사회 생활을 아예 못 하는 게 아니다. 표현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하여 나는 용기내어 주먹을 쥔 손을 가린 채 말했다. 그랬더니 그 분께서는 살짝 머쓱한 티를 내셨지만,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친절히 설명도 해 주시고 웃으며 자기 자리로 가셨다. 


됐다, 성공했다. 나는 나의 마음을 지켜냈다. 불편한 말을 더 듣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했다. 

래도 상대방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내 상황을 이해해야지, 지금 나는 상대방의 상황을 내가 더 이해해서는 안 될 마음의 병이 있는 환자이다. 그리하여 나를 무조건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원칙을 세웠고, 그걸 실천해냈다. 뿌듯했다. 내가 기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련했다. 내가 지금 여기, 이 순간 그 말이 잠시 불편했다는 것을 표현해도 된다. 나는 그래도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퀘스트 2. 상사의 기분 나쁜 말 담지 않고 넘겨버리기. 

휴직을 했던 터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내게 회사 사람들은 놀라며 물었다. 

[네 직속 상사가 네 일 다 처리해서 힘들어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그렇게나 했는데, 정작 처리한 게 없다고? 와, 그 사람 다시 볼 일이네.] 이

 나쁜 인간. 그렇게 생색을 낼 거면 진짜 내 일 다 처리해주고 하던가. 괜찮냐느니, 건강은 어떻냐느니 물어보는 것 하나 없이 오자마자 인수인계 할 파일이 있다고 따라오더라고 하더라. 어휴, 저 인간은 변하질 않았네- 하고 속으로 욕을 어마어마하게 했다. 그리고는 눈코뜰새없이 야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계획서 세우기 및 결과 보고서, 프로젝트 경과 확인 등의 일을 부리나케 처리했다. 그리고 뭐 하나 급한 일이 있어 계획서를 빨리 결재해 달라고 갔더니, 그 양반이 하는 말.

[아, 이런 건 좀 앞으로 미리미리, 빨리. 오케이?]


오케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기가 내 일 좀 처리해 줬으면 이렇게 바쁠 일도 없었겠지. 말로만 번지르르 자기가 내 일 다 했다고 하지 말고. 그래놓고 하는 말이 뭐? 지금 정신 없어 죽겠구만, 빨리 미리 올리라고 계획서를? 나는 다시금 통감했다. 아, 세상은 변하지 않았구나. 제정신으로 날 배려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 에에- 예에.] 


저런 사람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된다. 어이가 없지만 대꾸할 수 없는 상사의 말은 흘려 보내는 게 상책. 나는 내 마음에 저 사람을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기 전에 생각나 벌떡 일어나봤자, 저 양반은 내가 저런 말이 짜증났다는 말도 모른 채 제 잘난 맛에 살테지. 그래서 튕겨냈다. 저 말을. 내 마음 속에서. 그랬더니 마침 프로젝트 논의를 위해 그 자리에 함께 계시던 팀장님께서 나를 두둔해주셨다. 쟤 일 엄청 많은 거 보고 깜짝 놀랐다고, 지금 1초도 허투루 안 쓰고 일만 하고 있어서 안쓰러워 죽겠다고. 내게 한 소리를 했던 상사는 그 말을 듣고는 아무런 말을 못 했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아오, 통쾌해.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정확히는 나의 1순위가 바뀌었다. 이해에서 감정으로. 남에게서 나에게로. 미래에서 오늘로. 내 오늘의 감정이 상처받지 않도록, 충분히 보호하기. 내 1순위를 지켜냈으니 나는 오늘 레벨 2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 또 레벨업을 향해 외칠 것이다.
다 꺼져, 내가 제일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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