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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Sep 02. 2024

아빠 생일날 우울증 오래됐다고 폭로하기, 어떤데?

2년 묵은 우울증 폭로, 오늘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

짰다. 내가 먹은 내 눈물 맛이다. 

소금을 100스푼 탄 물 맛 같더라고. 우울증으로 개고생하면서 눈물을 한강만큼 흘려봤다고 자부하지만, 입 안으로 눈물이 들어오는 건 또 처음이라. 이런 맛은 어렸을 때 바닷물에서 허우적거리고 나서 오랜만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혼자 주룩주룩 울며 창밖을 내다보는 나는, 나에게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감정이야.
잘 모르겠어. 마음이 꾸깃꾸깃 구겨져서 펴지질 않아. 그런 기분이야.
그게 어떤 기분인데?


아직까지도 답을 못 찾았다. 그래서 가슴께가 스트레스 받으면 으레 그렇듯 찌르르 아프다. 그래도 기록하는, 나의 용기 있던 지난 일요일의 고백. 언젠가 잘했다고 토닥거릴 나를 위한 사건. 


정확히는 아빠 생일 전전날이다. 아빠 생신이 화요일인지라,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토요일에 내가 특별 주문한 케이크로 아빠 생일을 축하했다.  기분이 한창 좋았던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다. 다음날 속이 쓰려 "내가 어제 많이 먹었다."라고 자백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 아침밥을 준비하며 그간 연락이 뜸했던 막내딸이 그래도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렇게 아빠 눈에 담긴 고마움, 엄마 눈에 담긴 애정을 뒤로한 채 나는 말해야했다.


"엄마, 아빠. 여기 와서 앉아봐. 이거 읽어봐."

내가 내민 것은 의사 선생님이 써주신 진단서였다. 직장 제출용과 달리, 차트를 요약하듯 자극적인 단어들로만 촘촘히 짜여진 6줄의 문장.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위 환자는 2023년 5월부터 자살충동, 자해충동, 극도의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본원에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되어 휴직하고 현재까지도 6개월 이상의 비정기적 치료를 요함.]

그리고 툭 식탁에 던져진 내 약봉지들. 아빠는 이게 뭔지 상황이 이해가질 않아 나를 쳐다보았고, 엄마는 충격에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걸, 이 오래된 걸, 이제야, 왜... 왜..."


2년동안 많이도 아프고, 외롭던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혼자서 끙끙거리고 애써 밝은 척 하던 지난 시절의 나. 힘든 걸 힘들다고, 다 네 탓이라고 돌릴 줄 몰라 나를 쑤셔대던 나. 도려내진 심장으로 시체처럼 하루를 살다 생을 저버리고자 했던 나. 그리고- 힘을 찾았던 순간도 동시에 날 찾아왔다. 4박 5일동안 새벽마다 한 시간 반씩 달리며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고 투덜대던 나, 그러다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 숙소로 돌아오던 나, 태양 앞에서 내가 필요치 않은 빛은 필요 없다고 꺼지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나, 달리면서 눈물이 터져 그만 상담사에게 와락 안겨버렸던 나. 

나는 침을 삼켰다. 꼴깍. 입을 떼기 힘들었다. 상황을 던질 용기까지는 났는데,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라고 탓을 돌려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죄책감이 덮쳐왔다. 그 때, 또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와르륵 떠올랐다. 매일 악몽을 꿔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는 나를 페이스톡으로 진정시키던 다정한 남자친구, 그래도 네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같이 술을 먹어주던 내 오랜 친구,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라고 내가 안쓰러워 죽겠다고- 그러니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하던 내 상담 선생님까지. 그리고- 그리고- 나. 


나는, 살고 싶었다. 이제 죽고 싶지 않았다. 슬프고 억울하여 답답한 세상일지라도, 나는 서른 한 살의 나를 위해 오늘을 견뎌내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나- 이거 2년 됐어. 휴직도 했었고. 그리고 아직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깨. 내가 왜 자꾸 일찍 일어나는데. 엄마 옆에서도 공황 와서 뛰쳐나가고 싶은 적 있었는데. 엄마, 아빠는 진짜 몰랐어, 2년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이렇게 이상한데? 망가졌는데?"


담담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왈칵 울음이 차올랐다. 나는 그리하여 떨리는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끝까지 토해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숨 한 번만 쉬어도 무슨 감정인지, 어디 있는지 다 알겠는데 엄마 아빠는 왜 모르는데? 내가 엄마 아빠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날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왜 몰라줘. 왜, 말을 안 해도 알아줬어야지. 그게 엄마 아빤데. 왜!"


엄마는 그런 날 보고 함께 흐느꼈다. 나는 그것조차 보기가 싫어졌다. 왜, 내 앞에서, 내가 제일 아픈데 엄마가 울어? 내가 또 그러면 엄마를 위로해 줘야 하잖아. 나는 정말 하고 싶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화내며 얘기했다.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기. 나는 차분해져 차갑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나한테 해야 할 말, 친구한테 해야 할 말, 아빠한테 해야 할 말 구분해서 얘기했으면 좋겠어. 나는 딸만 할 거야. 아빠, 나는 다정한 아빠 역할 바라지도 않아. 아빠를 이해하니까, 인간적으로. 근데, 내가 왜 아빠를 다 이해해줘야 해? 다 이해해줘야 하는 건 아빠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한테 똑바로 남편 역할 했으면 좋겠어.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버거워서 아플 일 없었을 거 아냐."

엄마 아빠는 이런 내게 뭐라고 했을까. 딸이 우울증을 숨기고 2년동안 죽고 싶어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무슨 반응이건 내겐 마뜩찮았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선택은 각자 이랬다.


엄마는, 나를 이해시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뒤 사과했다.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며. 네가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했고- 딸한테 못 할 말 한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들렸냐며. 지금까지 일상을 공유한 건, 네가 가족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게 눈에 보여서 걱정할까봐 그랬던 거라며. 그랬는데 그게 짐이 됐다면 미안했다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 말했다.


아빠는, 자신만의 해답을 내게 강요했다. 그래서 나에게 되려 된통 혼났다. 내가 부모님을 사랑해서 밝히는 것이라고 하자 사랑이 무엇인지 아냐며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하고자 들었고, 우울증이 걸린 이유를 모르면 '때문에'라는 단어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허,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나는 열이 받아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내 우울증에 대한 답은 내가 찾아. 아빠 아니고. 그러니까 아빠는 제발 들어! 마음으로, 마음을 들으라고! 그냥 말을 듣지 말고, 감정을 들으라고! 나 생각보다 세. 그러니까 내가 찾을 거야."


그리고는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난다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아빠는 되려 웃어보였다. 됐다, 아빠는 이만하면 됐다. 나는 성인 대 성인으로 아빠에게 대항했고, 아빠도 나를 성인으로 받아들였다고 직감했다. 내가 답을 찾을것이라는 말에 웃어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나 모자란 사람, 혹은 쟤가 부족해서 저런 거라고 생각했다면 내게 끝까지 자신의 답을 밀어붙였겠지. 하지만 아빠는 내가 지랄을 떨자마자 바로 웃어보였다. 너, 그 대답도 맞다는 듯이. 


문제는 엄마다. 나는 결국 엄마를 위로해주는 위치에 처했다. 내가 스스로 그 자리로 찾아갔다. 말해놓고 나니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이제껏 사랑하는 자기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어 살아왔는데, 가장 자랑스럽고 가깝다고 생각한 막내딸이 자신이 버겁다고 선언한 꼴이라니. 그리하여 삶을 마감하려고 했다는 협박마저 건네다니. 이게 웬 봉변이냐. 나는 울음이 그칠 줄 모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아빠 차 타고 갈게. 엄마는- 엄만 생각보다 강해. 다 엄마를 사랑해서 말한 거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고백도 안 해. 알지? 엄마는 잘 이겨낼 수 있어."


그리고 아빠에게 내릴 때에도 엄마가 너무 걱정되니 엄마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내렸다. 아휴, 약간의 실패다. 100% 나만 먼저 생각하라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나는 100% 실천하지는 못했다. 엄마에게 말로 칼을 찌르고 약을 발라주려는 더 못된 딸이 되고 말았다. 

지금 나는, 하루가 지난 기분은, 상쾌하다. 그리고 슬프다. 미안하다. 후련하다. 한켠으로는 답답하다.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은 마음이 펴졌다. 꾸깃꾸깃에서 꾸깃으로. 나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어제도 악몽을 꾸며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났다. 맞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부모님께 고백한다고 갑자기 우울증이 다 낫지는 않는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내 우울은 결국, 나의 것이다. 내 안에서 충분히 감내하고 이 슬픔도 받아들어야 한다. 두렵다. 추석이. 조심스러워할 엄마도, 갑자기 100만원을 보내오며 미안하다는 말을 퉁치는 아빠도, 그 둘 사이에서 나를 지키고자 버둥거릴 나도 다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혼자 견디는 것 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안아줄 것이다. 
"부모님께 말한 거, 너무 잘했어. 기특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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