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을 두 배로 가져가 아파해줘, 그럼 내가 살아. 엄마, 아빠.
한 달 남짓 불면증에 시달렸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흘 전에는 출근 버스를 타는데 멀미가 나오더라고. 속이 메스꺼워 혼났다. 그 날로 찾은 내과, 내가 받은 병명은 어이없게도 변비. 소화가 안 되어 그렇다고. 의사는 배 속에 가득한 저 똥덩어리들을 보라며, 배 엑스레이를 처음 찍은 내게 수치심을 가득 안겨주었다. 아파 죽겠는데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는 변비라니, 나는 병원에서 받은 과립 변비약을 물과 함께 삼키며 생각했다. 대체 내가, 왜.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시원하게 화장실을 다녀와 상쾌했던 속과 달리 이번에는 위쪽이 문제를 일으켰다. 머리다. 지끈지끈, 머리 안쪽이 양쪽으로 심장 뛰는 것처럼 나를 괴롭혔다.
이럴 때 차분한 현대인은 1. 연차를 낸다 2. 반차를 쓰고 병원에 간다 3. 그냥 참고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머리를 부여잡고 운다 중에 3번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뭣하러 돈 얼마나 더 벌겠다고 이 회사에 나와서 이렇게 안 아픈 척 방긋방긋 웃고 타자를 치고 앉아있냐.
자본주의의 노예같으니라고. 네가 아픈 그 머리가 사실은 급성 무슨 병이라서 건강에 큰 이상이 가면 어쩌려고 이래. 너는 이 날을 두고 두고 후회할 거야.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을까, 하고.
그리고 이런 후회는 정확히 이틀을 더 갔다. 원래 그렇다.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렇다. 후회를 하면서도 또 후회를 할 짓을 정확히 다음날 또 하고 만다. 그러다 결국 삼일째 되는 날 병가를 냈다. 그리고 나는 내과 대신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다.
“선생님, 잠을 계속해서 못 자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너무 아파요.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요.”
의사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혹시 머리가 지끈지끈 말고, 콕콕 바늘로 쑤시듯이 아프지는 않나요?”
“아니요. 전혀요. 심장이 뛰듯이 지끈지끈, 머리에 심장 두 개를 얹어놓은 것 같아요.”
약을 바꾸고 돌아가니 오후 5시. 부리나케 알약을 삼키고 누워버렸다. 앉거나 서서 움직이면 아픈 머리가 더 헤드벵잉하듯 날뛰기 때문이다. 갑자기, 불현 듯, 뜬금없이, 침대에 누워 머리를 부여잡은 내가 불쌍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잠 하나 못 잔다고 직장까지 쉬어가며 아이고 곡소리를 낼 일이냐. 습관처럼 혼자 끙끙거리며 울었다. 계속 울고 있자니-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그 외로움조차 내 곁에 두어야했던 나의 지난 아픔들- 숨겨진 내 눈물을 나는 이제 드러내기로 했다.
원래 내 신조는 [기쁨은 함께, 슬픔과 고난은 각자.]이다.
어차피 남이 해결해주지도 못하는 나만의 문제, 아프고 힘들다고 찡찡거려봤자 내게 돌아오는 게 뭐 있다고. 하지만 그런 내 신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산다고 지난 2년의 우울증 투병 중에 그렇게도 모든 세상이 내게 소리쳤으니 실천에 옮길 때다.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핑계도 완벽했다. (진짜 핑계는 아니다. 정말 아팠다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렸을 때 말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 나는 아프단 말을 부모님께 한 적이 없다. 감기몸살이라던가, 급체라던가, 술병이라던가 같은 자잘한 통증들을 굳이 말해서 걱정끼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한껏 걱정시킬 것이고, 내 슬픔과 아픔을 남에게 200% 돌려버릴 테다.
“여보세요오. 훌찌럭. 아빠, 왜 엄마 전화 안 받아? 나 아파. 아프다고!”
후엥엥하는 곡소리는 덤. 내 찡찡거리는 슬픔을 오랜만에(거의 처음으로) 맞닥뜨린 아빠는 어떤 모습을 취했냐. 1. 어디냐고 물어봤고 2. 밥을 먹었냐고 확인했으며 3. 약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더군. 그리곤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래도 슬픔이 가시질 않더라고. 그래서 뒤늦게 전화를 받은 엄마에게도 찡찡거렸다.
“엄마, 아파. 머리가 아파. 잠을 못 자서 너무 아파!”
엄마는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마자 1. 후윽, 하고 울음을 터트렸으며 2. 밥은 먹었냐고 했고 3. 병원에 갔냐고 물어봤으며 4, 내일 병가를 내고 쉬는 건 어떻냐고 했다. 그리곤 자신이 나보다 더 크게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괜찮아졌다. 내 슬픔이 동난 기분. 내 눈물이 마음 안에서 몸 밖으로 퍼올라졌고, 끝이 나 말라졌다.
나는 깨달았다. 아, 왜 자신이 힘들다고 사람들이 바깥으로 표출하는 지 알겠다. 제 슬픔을 안으로 고이지 않고 밖으로 내놓으면- 그 슬픔은 끝내 마무리 매듭을 짓고 마르는구나. 나는 혼자 고여 썩는 법만 알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세상에서 구린 내 나는 절절한 아픔 장아찌 시체가 되어가고 있었구나.
그간 사람들이 내게 “너는 어쩜 혼자서도 잘 살것만 같냐.” 물으면 나는 답해왔다.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면, 혼자 감당하는 버릇을 들이라.”고. 이제 나는 그런 말을 똑같이 한다면, 다르게 답할 줄 안다.
[나 혼자서 잘 살려고, 곁다리들에게 이리 저리 기대고 있는 대로 짜증부릴 줄 알아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