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과 간지러움으로 인간 곰팡이가 되어버린 하루에
불면증에 시달린 지 한 달 차,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 다양한 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를 통해서냐고? 아니. 한 시간에 한 번 깨는 생활을 30일 남짓 하다보니 찾아온 새벽 세 시의 아하 순간을 통해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가 또 지겨워지기 시작해서. 그러다가 가끔씩 예뻐 죽겠고, 안쓰럽고, 서럽다. 그러다가 스스로에게 짜증도 난다. 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다.
아무리 죽이고 청소해도 절대 내 자취방에서 없어지지 않는 하루살이 벌레같이 자꾸만 침투해오는 것, 그건 빌어먹을 불평불만이다. 나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게. 이건 내 밝은 영혼을 갉아먹는 하루치 불만 곰팡이에 대한 이야기.
무언가 불편하면 벅벅 긁는 습관이 있다. 얼굴이건, 머리건, 허벅지건. 갑자기 간지러워진다. 마음 상태에 따라 예민한 내 몸을 옛날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건선이구나, 생각해 아토피에 좋다는 무향 바디로션을 검색해 쟁여놨을 뿐. 그러다 런닝을 하러 밖에 나가서 10분만에 온 몸이 신기하게도 간지러워지니 확신하게 됐다. 모기에 물렸던 다리는 이해하겠지만, 물리지도 않은 배나 엉덩이, 팔뚝이 간지러워지는 건 그저 환절기 탓이 아니라고. 건선은 더더욱 아니고.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 몇몇이 나를 추월해가고, 나는 참지 못한 간지러움에 온 몸을 벅벅 긁다가 결국 양 허벅지 둘 다 손바닥보다 더 큰 피딱지를 보고 나서야 손짓을 멈췄다. 피가 맺혀 새빨개진 내 양 허벅지는 내게 묻는 듯 했다. ‘이제서야 만족하냐? 지 몸 하나 못 챙기는 지지배야!’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택배로 부쳐준 얼린 사골 곰탕 팩을 양 다리에 얹어놓았다. 다리는 괜찮아졌는데, 샤워를 해도 다른 곳은 여전히 간지럽더라고. 그래서 알았다.
[너 또 요새 너에게 매일 실망하는 중이구나? 뭐가 잘 안 풀려서 이번에는 널 아프게 하니. 왜 또 스스로 때리는거야. 뭐가 문제야.]
나에게 물어야 할 순간임을.
어느 마음이 불편해서 오셨어요, 환자분?
나는 의사가 되어 내게 애써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얹힌 불만을 풀어보자.
다시 잠 자는 걸로 돌아가야 할 차례다. 나는, 사는 게 무서워졌다.
내가 의식을 잃고 잠이 드는 게 두렵다.
시간이 아깝다. 생의 유한함이 원망스럽다. 최근에 계속 하고 있는 생각들이다. 새벽 세 시에 찾아온 아하 생각덩어리. 그건 ‘나,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 걸. 한 철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생명으로 태어난 것은 크나큰 형벌이구나.’ 생각한다. 그럼 갑자기 침대에 들어가 누워 있는 게 힘들어진다. 내가 혼자서 자취방이 조용하면 더 외롭다고 일부러 사놓은 소음 시계의 소리가 무섭다. 에어컨 물 떨어지는 소리도 너무 크다. 에어컨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고, 자세를 바꿔 자연스럽게 나는 이불 바스락 소리에도 깜짝 놀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럼 또 절망에 빠진다.
나는 내일도 피곤할거야. 나는 힘든 내일을 보내겠네. 근데 이런 내일이 내일 모레가 되고, 다음 주가 되면 어떡하지. 피곤한 인간으로 살다가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한 순간에 휙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건 너무 억울한데.
근데 생각해보니 어느 인간도 죽기 전에 잘 죽는다고 웃으며 삶을 내려놓을 것 같지 않은거다. 내가 100살이 되면, 홀가분하게 하늘 나라로 훨훨 날아갈까. 전혀 아니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미련 철철 넘치는 할머니가 되어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겠지.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킬킬거리다가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 나 결국 죽는 인간이라는 존재였지?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 걸, 차라리 탄생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생명에게 가장 무서운 ‘죽음’이라는 순간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늙음’은 피하고 싶고, ‘죽음’은 알면서도 어떻게든 미루려고 온갖 영양제를 먹는 인간들이라는 존재 안에 내가 껴 있는 게, 어쩔 수 없는 걸 자꾸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나라는 게 날 무력하게 한다. 내가 잘 살아보겠다고 안달복달 이런 글 백 개를 써봤자 결국 한 순간 사라져야만 하는 거구나. 그런데 잠을 못 자는 이 순간마저 나는 소중히 여기질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네. 이런 멍청한.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를 두려움의 늪으로 덥썩 집어삼킨다. 불안하다. 그리고 비참하다. 미국 주식 공부를 새빠지게 했던 지난 달의 나도, 작은 책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두 달 동안 생고생을 마다 않았던 2024년의 나도- 모두 헛짓거리라는 허탈함이 또 나를 하찮게 한다. 그러다 보면 밤을 꼴딱 새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내 허벅지 양쪽이 새빨개졌다고. 운동을 하려다가 10분 겨우 뛰고 얼른 집에 돌아와 버렸다고.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내가 너무 짜증난다고. 그랬더니 그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게 얹어진 말이란 이랬다.
“그렇구나. 모기가 물린 몸에 열이 올라서 갑자기 확 간지러워졌나보다. 몸이 깜짝 놀라서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하려고 한 운동을 다 못하고 돌아와서.
근데, 몸이 피곤할 때에는 충분히 쉬어야 해. 10분만 하고 돌아온 건 잘한 거야. 네 몸이 소중하니까, 운동은 천천히 하면 돼. 여건이 될 때, 건강할 때, 그 때. 그 때 다시 하자. 일단은 차가운 걸로 좀 대고 있을까? 에어컨도 켜고. 그럼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뭐 하나 안 된 게 아니야. 밖에 나갔잖아. 그리고 몸을 지켜서 집에 잘 돌아왔잖아. 무리하지 않은 건 잘한 거야.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말자.”
한 달 동안 몰랐던 불면증의 이유를 알아낸 내가 그 이유 안으로 푹 들어가 인간 곰팡이가 되려고 버섯을 온 몸에서 자라게 하고 있을 때- 그 때 그는 그런 나를 시원한 물에 푹 담가주었다. 그리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며 얼음을 가져와 내 몸을 식혀주었다. 차가운 기운에 새빨개졌던 허벅지가 점차 돌아오고, 나는 생각한다.
아, 지금이 내 마음 속에서 뜨거운 불만을 식힐 시간이구나.
뭉게뭉게 지저분한 곰팡이가 피기 전에 차가운 팩을 얹으라고 몸이 신호를 주는 거구나.
마음 챙기라고, 너 챙기라고.
어떻게든, 그래서, 언젠가 끝날 생이라도,
두려워하면서, 오들오들 떨면서, 그래도 살아 보자고.
어쩔 수 없이 상처가 이미 나 버린 곳은 얼음 찜질을 해도 그대로더라고. 며칠간 상처가 나지 않게 잘 약을 발라줘야겠다. 어차피 나버린 상처, 왜 상처 났냐고 스스로 타박하던 짓은 그만두고 조심조심 새 살이 돋도록 아껴줘야겠다. 그럼 언젠가는- 안 간지럽겠지? 그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자, 마음이건 몸이건 모두.
냅다 달리지 말고 쉴 때는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