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보기 싫은 나를 견디는 방법, 겨우 살아내기
요새 내가 꼴보기 싫어 죽겠다. 내가 밉다. 안 예쁘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야 하는 용사이거나, 마법사이거나, 거인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난쟁이다. 그런 내게 신이건 늙은 할아버지건 어떤 신성한 목소리건 빛이 말을 건다. ‘너는 선택받은 존재야. 네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너 하나만이!’ 어쩔 때에는 그게 서동요처럼 노래로 들려올 때도 있다. 그럼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래, 할 수 있어!’ 따위의 다짐을 품고 한 발짝 모험에 나선다. 딱 그 때 매 번 꿈이 깬다.
지난번 수면제는 말을 하도 안 들어 머리가 지끈지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그 앞에서 온갖 짜증을 다 부린 결과다. ‘다 주치의를 잘못 만나서 그래요.’ 따위의 농담을 하는 의사 선생님께 나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약을 바꾼 그 날, 그야말로 근 한 달만에 꿀잠을 잤다.
계속되는 약 복용이 나를 되려 지치게 한다. 나는 언제까지고 환자여야 할까. 지겨워 죽겠다. 이 약을 먹어야지만 깊게 잠을 잘 수 있는 내 자신이.
그 시간동안 꽤 억울했다. 왜 억울한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이런거 모르고도 잘만 턱턱 좋은 아파트 사던데- 혹은 이런 거 내가 백날 외워봤자 진짜로 내 돈이 더 늘어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도 못하는데- 하는 푸념. 돈 아끼겠다고 오늘 마트 두 군데를 들러 덜 비싼 데에서 양파를 사면 뭐하냐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외국 etf들은 다 마이너스인데. 그렇다고 내 주식 계좌가 엄청나게 손해를 볼 거란 생각은 없다. 시간과 분산 투자를 전제로 한 투자 전략이라, 적어도 5년은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
언젠가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을 얼만큼 견뎌야 할까.
아, 2달 전 같은 생각을 했던 우울증의 나와 비교를 해 보겠다.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바로 태도.
‘인생은 원래 하기 싫은 것들의 연속이야. 나를 포함해서. 나를 사랑하기 싫어도 사랑해야지. 그게 인생이니까. 아오, 근데 열받네. 맨날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하면서 견뎌본다.
일단, 내일은 생각 않는다.
오늘이라도 견딘 게 어디냐, 난 모르겠다! 하고 게으른 내 몸을 침대에 또 뉘인다.
그럼 내일이 오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