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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Oct 07. 2024

쟤 봐 또 살쪘어라고 타박하면서 밥 먹기

꼴보기 싫은 나를 견디는 방법, 겨우 살아내기

제목의 쟤는 나다. 남이 아니고. 오해할까 봐 미리 일러두는데, 난 남에게 살이 쪘니 빠졌니 할 정도로 관심을 쏟을 힘이 없다. 겨우 내 감정도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살이 빠지고 찐다고 타박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밖에 없단 뜻이다.


요새 내가 꼴보기 싫어 죽겠다. 내가 밉다. 안 예쁘다.

거울에 비친 나는 한 달 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가 머리가 핑 돌아 일반식을 먹은 후로 이전보다 더 뱃살이 쪄 버린 서른 살이다. 덕분에 작년에 입었던 모든 바지들을 못 입고 있다. 고무줄 바지를 출근하느라 부랴부랴 두어개 인터넷 최저가로 샀다.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보며 이건 임신이 분명한데, 생각하지만 그럴만한 건덕지는 없다. 게다가 갑자기 찾아온 가을바람으로 피부가 금세 뒤집어졌다. 턱 아래쪽에 왼쪽 귀 밑부터 오른쪽 귀 밑까지 올 해도 죽지 않고 찾아온 나의 가을 맞이 뾰루지.  거울을 보며 지난 주에 났던 코 밑 뾰루지를 다시 한 번 짜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못생겼다. 아, 내가 스스로를 못생기다 생각해버리면 남들은 더할텐데. 그러니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데, 같은 후회는 거울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아니- 어떤 날은 내가 솔직히 별로인 날도 있지 않나?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라는 인스타 속 자기 계발 문구는 365일 연중무휴인건지. 이건 자체 휴무를 결정한, 내가 예쁠 수 없는 최근 몇 가지 이유들.


일단 게을러졌다. 글을 전혀 쓰지 않는다. 옛날에 어떤 인스타 문구가 내 뼈를 때린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고, 글 쓰는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냐.].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하는 평범한 잔소리였겠지만- 저 한 마디가 내 같잖은 글쓰기 인생의 채찍 겸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를 언제나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끄적였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읽어주니 신기했다. 이게 최근 우울증과 겹쳐 경제적인 시너지를 내고 싶어졌다. 제 2의 직업 혹은 새로운 길로의 자기계발로. 이 얼마나 멋진 경로냐고. 내가 좋아하는 걸 돈으로 만들어본다는 게. 그게 내 재앙의 시작이었지.


글 쓰는 게 누구도 시키지 않은 숙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안 쓰고 일주일 내내 있자니, 마음속 모범생 자아가 나를 다그친다. [이거라도 없으면, 너는 너답게 살아가는 순간이 단 한 시간도 없잖아. 영혼이 빠진 채로 그렇게 매일 살 거야? 정신차려!] 그렇게 어거지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옛날에는 밤 12시에도 글을 안 쓰면 잠이 안 오더니, 이제는 개뿔. 오후 8시에 퇴근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회사에서 내리 쓰던 보고서 생각밖에 안 난다. 그럼 또 키보드를 외면하고. 그렇게 밤 11시가 되어 침대에 누우면 지난 8월, 집단 상담 캠프에서 직접 그린 내 그림 밑 문구가 나를 또 때린다. [매일 1시간 나로써 살기.] 너, 오늘도 실패야. 삑- 하고  마음 속에 빗금이 그어지는 기분이다. 빨간 색 색연필로다가.


답이 없다. 답을 찾아도 내가 바뀌질 않으니, 미치겠다. 하나는 불면증 얘기고, 하나는 경제 얘기다. 부모님과 정서적 독립을 선언한 뒤로 마음 속에서 애쓰고 있는 중이라 잠결에 자꾸 꿈을 꾼다. 꿈 내용은 비슷하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야 하는 용사이거나, 마법사이거나, 거인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난쟁이다. 그런 내게 신이건 늙은 할아버지건 어떤 신성한 목소리건 빛이 말을 건다. ‘너는 선택받은 존재야. 네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너 하나만이!’ 어쩔 때에는 그게 서동요처럼 노래로 들려올 때도 있다. 그럼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래, 할 수 있어!’ 따위의 다짐을 품고 한 발짝 모험에 나선다. 딱 그 때 매 번 꿈이 깬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오늘의 삶을 평범하게 살기 위해 마음 속에서 눈을 뜬 나 대신 열심히 두려운 마음들과 싸우는 중이라고, 너 참 힘들겠다고, 안쓰럽다고 하셨다. 동의한다. 그렇게 상담 선생님께는 위로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는 새로운 수면제를 처방받아 왔다.

지난번 수면제는 말을 하도 안 들어 머리가 지끈지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그 앞에서 온갖 짜증을 다 부린 결과다. ‘다 주치의를 잘못 만나서 그래요.’ 따위의 농담을 하는 의사 선생님께 나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약을 바꾼 그 날, 그야말로 근 한 달만에 꿀잠을 잤다.

화장실 가려고 한 번 깬 것 빼고는 푹 잤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삶이지. 개운한 머리로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다음주에 병원에 가서 이 약이 잘 맞았다고 고했더니 2주 동안 약을 유지하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약을 평생 먹을 수 없다는 걸. 이 평화는 일시간 휴전 선언을 선포한 지금의 대한민국 같은 것이다. 나는 언젠가 내 정신머리와 수면이 평화 통일을 이루어 무력적인 약물 없이 자연스럽게 잠이 들어야 할 테지. 나는 대체 언제 멀쩡해질 수 있을까.

계속되는 약 복용이 나를 되려 지치게 한다. 나는 언제까지고 환자여야 할까. 지겨워 죽겠다. 이 약을 먹어야지만 깊게 잠을 잘 수 있는 내 자신이.

경제도 비슷하다. 그간 내가 예, 적금에만 몰두해 돈을 모으는 데 오래 걸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세상에는 펀드와 주식, 발행어음 같은 신기하고 다양한 돈놀이판이 깔려져 있었고 나는 그 첫 번째 허들을 넘었다. ‘절대 돈을 굴릴 수 없는 100%의 안전에서 벗어나기.’ isa 계좌건, etf건, 안전 지향 투자 방법이건 내 머릿속에 넣고 실천하기까지 꼬박 1년 남짓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꽤 억울했다. 왜 억울한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이런거 모르고도 잘만 턱턱 좋은 아파트 사던데- 혹은 이런 거 내가 백날 외워봤자 진짜로 내 돈이 더 늘어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도 못하는데- 하는 푸념. 돈 아끼겠다고 오늘 마트 두 군데를 들러 덜 비싼 데에서 양파를 사면 뭐하냐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외국 etf들은 다 마이너스인데. 그렇다고 내 주식 계좌가 엄청나게 손해를 볼 거란 생각은 없다. 시간과 분산 투자를 전제로 한 투자 전략이라, 적어도 5년은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

지금처럼- 내 삶이 하나 변하지 않더라도, 나는 허리띠를 계속해서 졸라매야겠지. ‘미래에는 좀 더 나을거야.’라는 자기 위안을 부적 삼아. 그렇게 살다 보면, 가끔 인스타를 들어가게 된다. 내가 평생 돈을 모으거나 굴려도 사지 못할 좋은 아파트를 쉽게 사려는 누군가, 혹은 몇 년 전부터 돈놀이에 관심이 있어 모험처럼 주식을 시작해 억대 수익이 난 누군가, 혹은 이 모든 걸 모르지만 지방에서 편안하게 오늘의 행복을 알고 사는 누군가들이 나는 모두 부럽다. 그리고 부러워만 하고 오늘이 변하지 않는 내가 답답하고.


언젠가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을 얼만큼 견뎌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쁘다고 얼마나 위안을 삼아야 할까. 너는 네 최선을 다했다고- 얼마나 제자리걸음을 뛰어야 할까. 그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막 살거나, 최고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는다.


아, 2달 전 같은 생각을 했던 우울증의 나와 비교를 해 보겠다.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바로 태도.

2달 전 우울증으로 깊이 어둠의 땅굴을 파고들던 나는 ‘허망’, ‘슬픔’에 머물렀다. 지금의 나는 어떻냐고? 저렇게 불만 투성이인 나는 ‘허망’대신 ‘열받음’을 선택한다. ‘슬픔’ 대신 ‘견딤’을 선택한다. 오늘 하루 바뀌지 않고, 맨날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하냐고 있는 힘껏 짜증을 부린다. 그리고 소소하고 확실한 탈선을 시도한다. 장바구니에 한 달 동안 넣어놨던 2만 9백원짜리 회색 고무줄 슬랙스 구매하기. 아, 짜릿해. 그리고 이 작은 소비 하나에 짜릿해하는 나를 온 몸으로 싫증내하면서 견딘다.


‘인생은 원래 하기 싫은 것들의 연속이야. 나를 포함해서. 나를 사랑하기 싫어도 사랑해야지. 그게 인생이니까. 아오, 근데 열받네. 맨날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하면서 견뎌본다.
 일단, 내일은 생각 않는다.
오늘이라도 견딘 게 어디냐, 난 모르겠다! 하고 게으른 내 몸을 침대에 또 뉘인다.

그럼 내일이 오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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