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한 번씩 월세 인상을 피해 도망치는 삶
또 이사철이다. 2년마다 강제로 돌아오는 이 집 바꾸기 시간이 나는 달갑지 않다. 어렸을 때에는 자주 이사를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 한 적도 있다. 옛날부터 한 지방 구축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았던 나는 이사가 멋있어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들이 집을 사는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 집 하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 신세가 가련해서’라는 걸. ‘이 넓은 땅덩어리에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집 하나 없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나는 잘 안다. 대학교 기숙사 시절을 제외하면 벌써 5번째 이사다. 그간 겪었던 세입자로서의 설움. 나는 집주인 전화가 회사 상사보다 더 무섭다. 내 당장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겪은 세입자로서의 슬픔, 무주택자로서의 서러움.
제일 큰 슬픔은 내가 내 인생 계획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 쓸데 없는 감정 소비는 덤이다.
계약 만료 2-3달 전이 되면 먼저 연락을 하는 집주인과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계약 만기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는 집주인으로 나뉜다. 빠릿빠릿하게 돈을 주고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는 집주인들은 대개 먼저 연락을 한다. 지난 번 집주인은 내가 2달 전 먼저 나가겠다고 문자로 통보를 하자, 전화를 해서 ‘사람이 그렇게 무턱대고 말하면 안 돼지!’라고 화를 냈다. 아무튼, 한 번도 2년보다 더 살지 말지 고민하는 내게 ‘월세를 동결하겠다.’는 집주인을 본 적이 없다. 그들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겠지만, 한 달에 월세로 얼만큼까지 돈을 내겠다는 내 재정 계획이 쉽사리 무너진다. 그럼 나는 되도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재계약 대신 더 싸고 안전한 원룸을 찾아 부동산 중개소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부동산 중개소에 도착하여 여러 매물을 보다 보면 중개업자가 묻기를,
“다음 이사 날짜는 정확히 언제가 좋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아, 그게, 제 집이 아직 안 빠져서 정확한 날짜를 드리기는 어렵고, 아마 12월 중순에서 1월 초순 정도가 ….”
그럼 친절한 공인중개사들은 결정되면 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공인중개사들은 내게 화를 낸다.
“아니, 정확히 날짜도 결정되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빨리 집을 보러 오시면 어떡해요!”
…아, 두 세달 전에 집을 보는 게 너무 빠른 건가요? 나는 대꾸하고 그들은 찌푸린 미간을 펼 생각 않고 끄덕인다. “대부분 1달에서 1달 반 사이에 와요. 적어도 이사 날짜는 정확히 알고 와야지.”
무슨 소리십니까. 내놓은 제 원룸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분명 두세달 전 이사 날짜를 들고 찾아왔는걸요. 하고 싶은 말은 꿀꺽 삼킨다. 나는 잘 보여야 한다. 그들에게 웃는 낯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그래도 고개를 숙이고 나와야 혹시 내가 원하는 매물이 나올 때 날 생각해 줄 테니 말이다.
갑자기 내 다음 세입자가 정해지고, 이사 날짜가 정해지면 새 집을 구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공인중개사, 새로운 집주인, 은행 대출 창구 담당 직원, 내 다음 세입자의 부모님, 내 이전 집이 될 지금의 집 주인. 많은 내 시간을 뺏긴다. 그럼 직장 상사의 면담이 이어진다.
“자기, 요새 외출이 잦네. 무슨 일 있어? 아, 이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건 다른 가족 시키거나 좀… 주말에 하면 안 돼나?”
직장 상사님이시여, 은행 대출이 언제부터 토요일에 상담이 가능한 것이었나요. 언제부터 집 관련 계약을 할 때 본인 말고 대리인을 그렇게 쉽게 내세워서 할 수 있답니까.
온갖 서류를 다 떼서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와 계약을 진행하라고 할까요. 제가 직접 살아야 할 집인데 제가 잠시 반차를 내고 보면 안 되는 걸까요. 제 반차는 당신 것이 아닌데요. 당신이 선심 쓰듯 내주는 게 아니잖아요. 국가에서 허락된 노동자의 합법적인 휴무 시간이란 말입니다.
나도 내 이사 날짜를, 이사 결정을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다.
그 날 계약을 해야 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나쁜 집주인 때문이다. 기간이 뜨면 먼저 이사는 나갈 수 있어도 보증금은 못 돌려주겠다더라. 당연하다는 듯이 월세 인상을 말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 때문이고. 또,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업무가 가능한 우리나라 은행 업계의 근로 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이 날 계약을 해야 내 전세 보증금이 안전하게 확정 날짜를 받고 그 다음날 바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행정복지센터의 권고 사항이 있기도 했다. 요새는 전월세 보증금 사기가 들끓기도 하여 믿음으로 먼저 계약이나 이사 날짜를 주말에 잡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이 뭣같은 사기 공화국 현상에서 살아남기 위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주거 비용을 아껴서 5년 뒤에도 오늘보다 더 잘 살아 보겠다는 이 젊고 창창한 청년의 아름다운 미래 설계를 누가 대체 이렇게 쉽게들 짓밟는 것인가. 왜 이리 내 작고 소중한 삶에 서로 자기들 이익에만 맞춰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냐고요. 그러니 나는 오히려 화가 나서 외치는 것이다.
“지들만 지들 이익 챙겨? 나도 내 삶 잘 챙겨 볼 거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적당히 네네 하고 숙인 자세 취할 때 이상한 말 그만 보태라고요. 그럴 거면 내 전세 보증금이라도 보태시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