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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Oct 28. 2024

하고 싶어서 효도하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가능은 한가요, 부모님께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어서 효도

오랜만에 상담을 다녀왔다. 2주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선생님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쏟아냈다. 문제가 있었거든. 수면의 질 문제. 그랬더니 또 엄마와의 관계 때문이란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쥐어뜯었다. 그리고 외쳤다.

"지겨워 죽겠어! 진짜! 또 엄마야 무조건?"

내가 잠이 드는 것과 엄마와의 관계가 무슨 연관고리가 있나요. 엄마로 태어난 것도 죄다 이만하면. 이건 자기 직전 간지러워 잠을 못 자는 나와 간지럽힌 사람이 저 멀리 지방에 사는 엄마라는 걸 깨달은 1시간 동안의 상담 내용.



자려고 눈을 감는다. 가만히 누워서. 그럼 갑자기 팔이나 다리가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최대한 참아보려고 애쓴다. 꿈틀거리고만 싶다. 그 마음을 몸이 알고 있는지, 작은 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팔이나 다리가 제 맘대로 조금씩 움직인다. 옳다꾸나 싶어 박박 몸을 긁는다. 하지만 간지러운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2주 넘게 계속된 나의 고통. 잠드는 것이 짜증날 지경이다. 신체적인 문제인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정말 피곤해서 스르륵 잠이 들 때에는 평온하거든. 누군가 옆에서 함께 잘 때면 그저 곯아떨어지거든. 난 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또 심리적인 문제구나.'








"혹시 요새 삶에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나요?"
"아니요.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오히려 해소된 쪽에 가까워요. 원룸 집도 새 세입자가 정해져서 들락날락거리던 낯선 사람들이 사라졌고요. 경제적인 문제도 대충 어떻게 할 지 계획이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직장도 조만간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었고요. 마음을 한 번 정하고 나니까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거슬리거나 스트레스 받는 부분들이 사라졌어요."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 대답을 듣더니 곤란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명쾌히 답을 내려주셨다.

"그럼, 지금 남은 건 부모님밖에 없네. 엄마. 엄마랑 관계가 너무 신경쓰이는데 자기 전에는 다른 문제들에 휩싸여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자기 전 갑자기 훅 스트레스가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몸이 간지러운 걸 지도 몰라요."


우울증이라고, 다 엄마 때문이라고 폭로한 뒤로 엄마는 내게 전화를 않는다. 일주일에 두 세번씩 먼저 전화해서 [요새는 연락이 별로 없다?]고 투정부리던 사람이.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네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으며 자신은 어떤 생각을 했다고 미주알고주알 떠들던 엄마가 사라졌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생존신고를 한다. "엄마, 나 저녁 뭐 먹어?", "엄마, 나 오늘 머리 잘랐는데 망한 것 같아."라고 가볍게 전화를 하면, 엄마는 어떻게 반응하느냐. 저 멀리에서 훌쩍거리는 소리, 울먹거리는 말투로 묻는다. "밥은, 밥은 먹었니? 밥을 잘 먹고 다녀야 잠도 잘 자지."


...짜증난다. 받아들일 만큼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제 인생을 그래도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는데. 약한 보호자는 정말 힘들다. 내가 또 엄마를 보호하려고 눈치를 보게 되니까.

  솔직히 엄마의 슬픔을 공감할 수는 있지만, 매일 운다는 아빠의 증언을 듣고 난 후로는 엄마와 통화하는 게 불편해졌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 때문에 슬퍼서 울고있다는데 답답해하고 버거워하는 것 자체로 죄책감이 느껴진다. 엄마가 잘 지냈으면 좋겠고, 건강한 정신으로 씩씩하게 전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관계를 망친 게, 엄마를 망친 게 나인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 되뇌이는 것이다.

[내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지. 그러니까 엄마에게 가서 달래주고, 힘내라고 데이트도 좀 해야겠다.]







이름하여 해야 해, 리스트 추가다.

요새 그래서 그런가. 설거지도, 샤워도, 청소도 모두 인생에는 해야만 하는 것들만 가득하다고 생각해 힘이 쭉 빠졌다. 내가 원하는 건 없고- 내가 꼭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만 남아 있는 기분. 삶이 재미가 없더라고. 그런 마음을 토로했더니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화랑님. 우리 잘 생각해봐요. 우울증이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건, 앞으로도 똑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잖아요. 사람들은 자꾸 익숙한 관계의 패턴으로 행동하려고 해요. 근데, 정말 화랑님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건 뭐예요? 저는 어떤 걸 원하는지가 궁금해요. 엄마가 자꾸 눈에 잘 보이니까, 엄마를 위해서 엄마에게 맞춰주려고 또 하잖아요. 그러다가 속병 나서 힘들었고. 우리 지금 그거 안 하려고 이렇게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하는 건데, 또 비슷한 관계의 패턴으로 엄마에게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의 해피 엔딩으로 매듭지어 놓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해봐요."


...하고 싶은 것이요? 전 엄마에게... 원하는 게... 없는...









아,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구나. 그냥 엄마가 언젠가 괜찮아졌으면 좋겠구나. 아직은 덜 친한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구나. 아직 내 마음이 덜 열렸구나. 나, 엄마를 위해 엄마를 토닥여주고 싶지 않은 거였구나. 아직. 엄마가 어른으로서 알아서 극복했으면 하는거구나. 왜냐하면, 내가 힘드니까.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는 왜 하냐고, 카톡은 왜 자주 보내냐고,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왜 엄마한테 우냐고 안 물어봤냐고. 여러 질문을 통해 우린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갔다. 내 대답은 모두 '그걸 해야 엄마가 괜찮아 질 것 같으니까.'였고, 선생님께서는 계속 '그럼 화랑님은 뭘 하고 싶냐고.' 따라붙었다.










[해야 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금의 나와 엄마의 관계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래야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을 때 엄마와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라는 것.]


오늘 상담의 결론은 이거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생각했다. 내가 엄마를 향해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울리는 알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나는 선생님께 투정부렸다. "해야 할 때와 하고 싶을 때를 구분하기 힘들어요.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누가 옆에서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웃으며 그럼 여기 와서 또 투정부리고 힘들다고 하라고. 같이 욕해주고 힘들어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아직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미안해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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