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은 한가요, 부모님께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어서 효도
"혹시 요새 삶에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나요?"
"아니요.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오히려 해소된 쪽에 가까워요. 원룸 집도 새 세입자가 정해져서 들락날락거리던 낯선 사람들이 사라졌고요. 경제적인 문제도 대충 어떻게 할 지 계획이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직장도 조만간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었고요. 마음을 한 번 정하고 나니까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거슬리거나 스트레스 받는 부분들이 사라졌어요."
"그럼, 지금 남은 건 부모님밖에 없네. 엄마. 엄마랑 관계가 너무 신경쓰이는데 자기 전에는 다른 문제들에 휩싸여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자기 전 갑자기 훅 스트레스가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몸이 간지러운 걸 지도 몰라요."
...짜증난다. 받아들일 만큼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제 인생을 그래도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는데. 약한 보호자는 정말 힘들다. 내가 또 엄마를 보호하려고 눈치를 보게 되니까.
[내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지. 그러니까 엄마에게 가서 달래주고, 힘내라고 데이트도 좀 해야겠다.]
"화랑님. 우리 잘 생각해봐요. 우울증이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건, 앞으로도 똑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잖아요. 사람들은 자꾸 익숙한 관계의 패턴으로 행동하려고 해요. 근데, 정말 화랑님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건 뭐예요? 저는 어떤 걸 원하는지가 궁금해요. 엄마가 자꾸 눈에 잘 보이니까, 엄마를 위해서 엄마에게 맞춰주려고 또 하잖아요. 그러다가 속병 나서 힘들었고. 우리 지금 그거 안 하려고 이렇게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하는 건데, 또 비슷한 관계의 패턴으로 엄마에게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의 해피 엔딩으로 매듭지어 놓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해봐요."
아,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구나. 그냥 엄마가 언젠가 괜찮아졌으면 좋겠구나. 아직은 덜 친한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구나. 아직 내 마음이 덜 열렸구나. 나, 엄마를 위해 엄마를 토닥여주고 싶지 않은 거였구나. 아직. 엄마가 어른으로서 알아서 극복했으면 하는거구나. 왜냐하면, 내가 힘드니까.
[해야 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금의 나와 엄마의 관계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래야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을 때 엄마와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라는 것.]
그래서 난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아직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미안해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