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보태달라고 부모님께 땡깡을 부려보았다
일요일 오후, 아빠에게 다짜고짜 전화했다. 엄마 어디 있냐고 물어본 뒤, 몇 달 전부터 곱씹던 말을 용기내어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 말을 듣고서 아빠 왈,
[너는 무슨 돈을 맡겨놨냐, 나한테?] 어이없는 웃음소리는 덤이다. 기가 차겠지. 단 한 번도 뭐 해달라 졸라본 적 없던 막내딸이, 대학 시절에 용돈을 평소보다 많이 입금하면 한 시간 안에 전화 와서 돈 도로 가져가라고 소리치던 애가, 돈을 벌려고 처음 경기도에 나왔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해 준 원룸 보증금을 2년이 지나고서 부모님 통장으로 다시 입금시키던 성격의 자식이, 한 말은 이거였기 때문.
"아빠, 나 이번에 원룸 아파트 계약했어. 그, 보증금 좀 줘 봐. 돈 줘!"
게다가 [네 집은 네가 알아서 형편에 맞게 구할 것이지, 왜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거냐.]라고 대꾸했더니, 더욱 뻔뻔해진 서른 살 막내딸이 하는 말이라고는
[응, 맡겨놨어. 낳았으면 책임져!]
...상당히 패륜아스럽고 상스러웠단 말이다. 어떻게 이리도 뻔뻔하게 내뱉고 글까지 쓰면서 박제를 시키냐, 물으실테니 알려드림.
3주 남짓한 부동산 투어를 마치고, 드디어 원하는 아파트 단지에 괜찮은 가격으로 올수리 10평 아파트를 구했다. 지난 토요일, 집주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지금까지 봤던 원룸 건물주들과는 달리, 선량하고 평범해보이는 눈빛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간 4번의 이사가 있었다. 이번이 5번째 계약이다. 내가 만난 모든 집주인들은 하나같이 번들번들한 눈동자에, 최소 60대 이상이었다. 내 말 끊어먹고 자기 아들 자랑하기는 기본에, 은근슬쩍 반말하기는 옵션이었고 내 쓸데 없는 신상 털기는 보너스였다. 8년동안 그런 개똥밭에서 구르며 나는 그간 경기도 집주인들은 다 저렇게 싸가지가 밥 말아먹고 똥으로 배출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아파트 주인은 달랐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에 긴 머리를 하나로 틀어올린 채 안경을 쓰고 시간에 맞추어 공인중개사무소로 왔다. 꼿꼿하게 소파에 앉더라고.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사실 이 집 같은 컨디션을 2년 전에는 구할 수 없었냐, 4년 전에는 돈이 안 모여서 도저히 무리였냐 묻는다면 답은 '그건 아니올시다.'이다. 3-4년 전부터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이 쌓이며 쥐꼬리의 손톱만큼 모인 내 저축으로 지금과 같은 컨디션의 집을 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작년 초 까지의 내 우선순위는 주거 환경보다 교통, 그리고 절약이었다. 티끌만한 돈이 소비로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면 그것만큼 슬픈 게 없으니까. 그래서 단 한 번도 8평 이상의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작년부터 쭉 나와 함께하고 있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내게 소리쳤다. '이제 네 현재의 행복도 어느 정도 좇아 보라고. 너 그래도 파산할 정도 아니라고. 네 성격상 절대 탐욕스럽게 살지 않는다고.' 상담 선생님도, 엄마도, 가까운 친구도 나를 답답해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밑밥을 까나, 싶지? 뭘 답답해 했나 싶고. 내 고질병 고백을 하려 그런다. 구구절절한 변명은 이제 다 깔렸으니 바른 대로 읊겠다.
'나 혼자 할 수 있어. 괜찮아.'병이다. 가족에게도 예외 없다. 오히려 가족이라고 마음을 놓고 다 주었다가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어른이 되면 이렇게 된다. 좋은 말로 '독립적인', 나쁜 말로는 '그 누구도 못 믿는.'
삶을 살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게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난 더욱이 자신에게 기대라는 부모님의 두 손을 열심히 뿌리친다. 어렸을 때에도 "내가 이게 사고싶으니 당장 사달라."는 말을 해본 적 없다. 부모님께 성적이나 봉사활동 따위로 일에 대한 '보상'을 원했을 뿐.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노력을 하라는 게 부모님의 경제 교육이었다면, 이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다. 경제 교육 하나 하려다 마음의 불안정함까지 함께 얻었으니.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도 부담스럽다. 당연하게 받을 수 없었다.
직장이 머니 작은 중고차를 하나 사 주겠다, 이 월세 보증금은 네가 가지는 게 어떻겠냐 등 감사하게도 내게 무언가 주고 싶어했던 적 많은 엄마였지만 나는 그 모든 걸 거절했다. '집에 나 말고 돈 써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돈도 버는 내가 저 돈을 받아서 되겠어?', '집에 빚이 이만큼 있는데, 나 좋자고 이 돈 받아봤자 뭐 하겠어.'라는 마음이었다.
나보다 집의 경제 상황을 우선시에 두고 살아왔던 지난 30년. 나는 부모님이 못미더워 집을 오히려 걱정하는 딸로 자랐다. 상담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 모든 가정 상황을 듣고는 말한다.
'세상에, 나는 엄마가 그런 말 하면 당장에 받아먹었다. 너네 집이 그렇게 못 사는 집도 아니고. 네가 걱정할 만큼 그 돈 주면 풍비박산 나는 데도 아닌데. 넌 왜 주는 복을 걷어차?'
'화랑님. 그냥 받는 연습을 해요. 그것도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연습이에요.'
몇 년 전, 술에 취한 엄마가 내게 푸념한 적도 있다. 넌 왜 부모님이 주려고 하는 모든 경제적인 지원을 걷어차냐고. 그렇게 남처럼 칼같이 보증금 500을 돌려줄 때 자긴 오히려 상처 받았다고. 뭐 좀 사 달라고 얘기하라고. 니 언니처럼. 먹고 싶은 게 있냐 물으면 맨날 아무거나라고 답하지 말아달라고.
난 부모님께 '부모님'으로서 자식을 지지할 기회를 뺏어버렸구나, 어느 순간 느끼게 됐다. 부모님께 사랑을 달라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는 자식보다 눈치를 보며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자식의 태도가 더욱 불효막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줄 수 있는데 받아 먹지를 않는 사랑이 그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겠거니, 하는 것도.
여전히 나는 부모님을 진심으로 믿지는 못하겠다. 또, 어린 아이도 아니고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을 벌여놓고 어느 정도 책임져달라는 말은 죽어도 못 하겠더라. 그래서 안전 장치를 만들어놓고, 땡깡을 부려보기로 했다. 사실 보증금, 내 돈으로 다 낼 수 있다. 이사 날짜에 맞춰 예금과 적금도 잘 조정해 놓았다. 거액의 돈을 한 번에 쏠 수 있도록. 있지만, 사실 필요하지 않지만 돈을 달라고 해 보기로 했다.
이사 너무 힘드니까 도와달라고도 하기로 했다. 물론 이사 두 달 전부터 이사 간다고 직장에 이야기해서 연차도 받아놨지만. 이사가 다섯 번째라 어떤 과정으로 뭐가 필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지만. 모든 걸 다 혼자 할 수 있지만-
지난 일요일, 두 손을 꼭 쥔 채로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각각 말했다.
"엄마, 아빠. 나 보증금 중에 조금만 대 줘."
날 책임져 줘. 사랑할 기회를 줄게. 사랑받을 시간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