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선언 일주일 뒤, 난 여전히 개떡같은 세상 속에 산다
부모님께 우울증 환자 선언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목요일, 정기 상담에 간 내게 상담 선생님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답했다.
“어, 음, 답답한데 후련하고 오히려 더 막막하기도 해요.”
이건 내가 여기까지만 오면 내 삶이 180도 변할 줄 알았건만, 실상은 360도- 그러니까 다시금 오늘의 이 자리에 핑그르르 돌고 있는 내 환상적인 희망과 무참히 깨져버린 현실에 대한 이야기.
지금까지 내 우울증의 해결 키는 부모님이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기. 하기 어려운 숙제를 해내면 내 병은 자연 치유될 거라 믿었다. 하루만에 싹 다 낫는 명약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쾌한 공기라던가 내일의 반짝이는 순간이라던가 같은 좀 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단 말이지.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자기 전 호달달 두려움에 떤다. 여전히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는 괴랄한 악몽들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나는 내게 열이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야! 네 뜻대로 결국 다 해결됐잖아. 왜 아파, 근데. 아직까지 왜 악몽 속에 너를 던져놓고 사냔 말야.]
또 있다. 출판사에서 30차례 이상 무참히 까인 내 원고들, 결국에는 독립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독립 출판사의 한 프로그램으로 미니북의 형태를 담은 책이 되었다. 내 첫 책인 셈이다. 이 날을 위해 나는 얼마나 생고생을 자처했던가. 매일 아침 출근도 전에 [소중한 원고를 투고해주심에 감사하지만….]으로 시작되는 메일을 보고 기분 잡치기는 기본, 결국 찾아낸 프로그램에 신청하자마자 뭣도 모르는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일부 배워야 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독립서점에서 함께 한 날은 3일밖에 안 되지만 나는 그 조그마한- 손바닥보다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어보겠다고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다음 날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눈알은 덤이고. 그렇게 결국 만들어진 내 책, 오프라인 북페어로도 판매될 거라는 내 첫 글책을 맞이한 심정이란 이런 것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돌아버릴 것 같다.
내 손에 쥐어진 게 무엇이든간에, 이렇게 건강을 해칠 정도로 귀중한 것이었는가.]
나는 내 작은 책을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시간 제한도 선물로 받아야 했다.
아, 하나 더. 인디자인 프로그램 사용을 끝내 어도비 프로그램 계약을 해지하자, 어도비에게 취소 수수료라며 한 달치 구독료를 삥 뜯겼다. 뒤늦게 아차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도비에게 돈 뜯기지 않고 해지하는 방법’이 네이버 블로그에 수두룩 빽빽이었다. 나는 클릭 몇 번으로 몇 만원을 눈 뜨고 코 베인 시골 여자가 되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결제 취소를 취소할 수는 없나…. 하다가 어도비 개같은 회사 프로그램 다시는 안 쓴다며 욕지거리를 지하 주차장에서 해댔다. 절망적인 내 미국 주식 계좌같으니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 돈만 죽죽 훔쳐가버리는 못된 것들. 이래서 국산이 중요해. 라는 이상한 중얼거림을 한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당신들은 피해야 한다. 눈이 돌아버린 상태니까.
분명 바뀔 줄 알았다. 나도, 내 주변의 무언가도.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은, 조금은, 내 삶이 바뀔 줄 알았단 말이다. 그런데 이것만 잘 넘자며 한 고비씩 인생의 고개를 고생하며 끙차 넘어왔는데 보이는 건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고 또 넘어야 할 새로운 유형의 등산로였다.
상담 선생님이 2년간 이 순간을 위해 상담을 해 왔다며 기뻐해도, 주변 동료들이 드디어 글 쓰던 네가 작은 책을 냈냐며 예쁘다고 칭찬해주어도 나는 여전하다. 바뀐 것 하나 없이. 모든 하루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스스로의 삶에 만족 못해 삐뚤어진 서른 살 여자. 거기에 좀 더 불평할 것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몸부림쳤는데 왜 내 오늘은 달라지지 않았냐고! 더 열받아. 차라리 노력하지라도 말 걸. 노력하지 않았으면 희망고문에 빠질 수 있었는데, 이젠 도망갈 환상도 없잖아.’
그러다 소름끼치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미 내가 변한 세상을 못 알아볼 정도로 나도 꽤나 시선이 변해버린 것 아니냐는 사실. 겨우 이만큼 변한 걸 가지고 기특해야 하냐며 짜증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다. 뭐, 아예 100% 안 변한 건 아니고, 약간, 아주 야아아악간 가뭄에 콩 나듯이, 내가 아주 가끔씩 어쩔 수 없이 콩을 집어먹는 횟수로다가 변한 것도 있긴 하다.
작년에는 겨우 한 두 개 출품하던 브런치북이 올 해에는 자연스럽게 네 개가 되었다는 것.(계속 출판하고 싶어 글을 쓰다보니 이렇게 모였다.)
엄마 아빠가 내 눈치를 보고 연락을 안 하려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작은 책 열 부나마 어디에 팔 생각을 하니 또 다른 희망고문이 생겼다는 것.(혹시, 정말 혹시 우연히 지나가던 대형 책 출판사 직원이 내 글을 보고 감명받아서 내게 출판하자며 연락을 해온다는 로또 맞는 것 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상상!)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추석에 바로 본가로 내려가 일을 떠맡는 것 대신, 이틀 정도 자취방에서 충분히 쉰 다음 전투 준비를 다 하고 천천히 내려갈 것이라는 다짐까지.
결국 나는 또 다시 등산로를 오르며 이 산을 또 넘으면 이번에는 기필코 아름다운 라일락이 흩날리는 꽃밭에 최종, 최최종, 진짜 최종으로 도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수도 없이 최종은 진짜 최종에서 진진짜 최종, 정말 마지막 최종으로 바뀌겠지. 그러면서 나는 또 다시 힘들다고 털썩 주저앉아 나만 힘든 이 인생을 저주할 것이다. 그러면서, 힘이 나지 않는 다리를 또 다시 움직여가며, 결국은 오늘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