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은 명백하다는데, 전 왜 아직 모르겠죠
결혼한 언니들이 내게 푸념같이 똑같이 말하는 베스트 3 문장이 있다. 그 중 부동의 1위는 역시
“너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이다.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경험하지 않은 자에게 [야 너는 하지 마.]라는 말이 얼마나 갖잖은지, 거꾸로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들은 제 인생에서 부모님의 말을 수도 없이 거역하면서 알았을텐데, 그런데도 결혼 서약서에 싸인을 하는 순간 꼭 일 년에 저 말을 100번씩, 미혼의 남녀에게 흩뿌리고 다녀야 하는 비밀 조약이 있는게 틀림없다. 대한민국 한정으로다가. 외국 사람들은 저런 말 잘 안 하던데. 아닌가. 내가 외국 사람이랑 친구가 아니라 모르는건가. 결혼의 축복 대신 확신의 저주를 퍼붓는 저 1위 문장 말고, 오늘 내가 쓸 말은 명예의 전당 2위와 3위에 대하여이다.
“100% 상대방을 확신해서 하는 게 결혼이야. 그 확신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지는 게 결혼이고. 그러니까 할까 말까 고민되는 상대가 있으면, 안 하는 게 맞아.”
오늘 말할 주제인 이게 3위, 참고로 2위는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이다. 나도 돈 많은 여자 아니라서 말 할 주제가 못 되니 쿨하게 패스.
결혼할 확신이라.
그럼 그 확신은 얼마만에 들어야 하는걸까? 어떻게 드는걸까? 왜 드는걸까? 들어야만 하는 게 결혼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모든 유부남녀를 뒤삼켰고, 나는 그들이 토해내는 공통된 울부짖음만 들을 뿐이다
. “그런 생각 하는 거 보니, 넌 아직인가 보다. 멀었네, 멀었어.”
뭐가요. 결혼이요? 아니면 인간됨이요? 하지만 다들 그렇잖아요. 인간다운 걸 다 장착하고 인간성 시험을 보아 딱 맞는 사람만 적절하게 지구에 인간으로 배치되어 태어나자마자 “어머,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소자 처음으로 문안 인사드리옵니다.” 하고 절을 넙죽 하지 않잖아요. 나는 억울해 소리친다. 그러니, 결혼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꼭 확신 같은 것 없어도, 그냥 시간이나 어떤 것에 휩쓸려 하면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로또가 꽝인 걸 알면서 5000원을 넣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두 1등이 되기를 바라며 매 주 커피 한 잔 값을 잠깐의 기댓값으로 바꾸는 거지. 어이 없어, 정말. 가진 자들의 불평불만이야. 하던 어느 날- 미용실에 갔다. 뿌리염색이 시급한 내 머리, 드디어 전체염색을 하러 새로운 곳에 방문했다. 미용사는 남자였고, 나는 처음으로 방문한 미용실에서 가타부타 내 이야기를 않는다. 별 이유는 없고, 귀찮아서다. 어디 살고, 이 미용실은 누구 때문에 왔고, 앞으로 무슨 머리를 할 예정인지 그놈의 [introduce myself] 청춘들은 늘 겪는단 말이다. 지겨워 정말. 아무튼 그는 내게 별 말 없이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딱 필요한 만큼만 대답했다. ...그랬는데 이 주둥이는 멈추지를 않아. 빈 시간이 뜨면 가만히 흘려 보낼줄도 알아야 하는게 도인의 도리거늘, 나는 대인 아니고 소인이라, 소소소인이라 잠시만도 못 참는다. 그리하여 말을 내가 또 건다.
“저기, 결혼 하셨어요?”
“아. 아니요. 근데 곧 하려고요. 원래 비혼주의자였는데, 여자친구가 유치원 교사거든요? 저랑 동갑이고. 서른 셋이요. 사귄지 8년 됐는데, 강하게 결혼하자고 밀어붙이더라고요. 근데 그게 또 나쁘지 않더라고요? 얘랑 있으면 아직도 깔깔거리면서 웃거든요. 재미있고. 아직 아이는 잘 모르겠긴 한데,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얘랑은 평생 있을 수도 있어서 결혼하기로 했어요. 요새 그래서 집보러 다니고 있어요. 근데, 고객님은 어디 사세요?”
집에 삽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대충 00동 원룸에 자취한다고 흘렸다. 그리고 내가 묻고 싶은 말로 냉큼 화제를 돌렸다.
“근데, 결혼할 확신은 어디서 드는 거예요? 비혼주의자에서 결혼을 하기까지는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혹시 무슨 큰 사건이라거나….”
그는 쉽게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볍게 대답했다.
“별 사건은 없고, 재미있어서요. 얘랑 계속 살아도 될 것 같아서요.”
그치, 이게 정답이지. 확신이라는 건 별 게 아니었다. 아줌마가 됐다고 다들 잘난척을 높게 했던거다.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확신이라는 것도 이렇게 간단한 거였는데, 내가 배배 꼬여서 ‘시부모님 직장, 나이, 학력, 취미, 아이 계획, 향후 30년간 재정 포트폴리오’같은 것들로 걸러 들었나. 생각해보면 그들은 ‘확신’을 가지라고 했지 ‘다양한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지라고는 안 했다. 다만, 이런 말은 했었다.
“어떤 단점이 하나가 크게 걸리는데, 그게 네 마음에 계속 신경쓰이는 정도라면 결혼하지 마.”
확신은 아니어도 애매모호하게 걸리는 단점, 그게 꾸리꾸리하게 나를 따라오는 이상하고 퀘퀘한 냄새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고. 그러면 자꾸만 결혼을 한 제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나. 모든 사람, 그러니까 나를 포함하여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내게 거슬리지 않는 단점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고, 그 중에서 내가 장점이 확실해 결혼할 확신이 단순 명쾌하게 든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면 되겠다. 느낌표가 머리를 딱 치고 지나갔다. 미용사분은 내 머리를 아주 부드럽게 자르고, 말리고, 스타일링까지 섬세하게 해 주셨지만, 말로 나를 강렬하게 쾅 찍어주셨다. 고맙게도.
저렇게 간단하게 결혼하는 이유가 나오는 사람이라면, 정말 괜찮겠다. 저 둘은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몽실몽실 피어나온다. 나도 내 미래의 남편이 “얘랑 왜 결혼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3줄 넘는 긴 서술형보다는 10글자 이내의 단답형이면 좋겠다. 그만큼 압축해서 강력하게 표현할 나의 장점, 그것에 제 미래를 걸 줄 아는 남자라면 나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신부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자동이요, 5천원이요.”를 또 할 것이다.
갑자기 결혼 어쩌구 하다가 무슨 소리냐고? 확신할 수 없는 미래는 즐겁고, 로또 1등 당첨이 되면 [돈이 많으면 아파트 살 것임.]이라는 10글자 이내의 명확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술형으로 3줄 다 필요없는, 강력한 로또만의 끌림. 아, 로또랑 결혼을 해야겠… 아니다. 로또는 명백한 단점도 있다. 애매모호하게 걸리는 단점도 아니고 확실하게. ‘인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