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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24. 2024

세상에 셀프 휴전선언, 야 좀 쉬자. 싸움종료는 아니고

엄마 생일에 폭탄 선언을 던질 수 없어서, 여기다 던지는 내 대나무숲

가족에게 지금까지 숨긴 비밀이 있는데, 어제부로 하나 더 추가됐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로 시작한 생각덩어리가 절대 말하지 말자라는 도착지로 날 이끌었다. 어느 불효녀가 세상에 엄마 생일에     


“엄마, 나 우울증이랑 불안장애가 중증도보다 수치가 높대. 그래서 직장에서 사실 혼자 있을 때마다 울게 됐어.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왔어. 계속 그렇게 있다가는 안 되겠어서 한 달동안 병가를 냈어. 나 그래서 한시적 백수가 됐어. 어제부터. ”     


라는 말을 하겠냐고요.     


내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지난 우울증과 달라 나는 갈 길을 또 잃었다. 내가 가치롭고 아름답고 빛나는 여성임을 안다. 예쁜 생명이라는 것도. 그런데 나는 왜 자꾸만 주룩주룩 눈물을 떨구고 있는 걸까. 자꾸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스스로 취조를 하다가 마치 데미안의 주인공처럼 새가 되어 날아버릴 것만 같다. 미쳐버리겠단 뜻이다. 진짜 날겠다는 건 아니고 당연히.     


나의 시간 테이프를 어제로, 또 그제로 돌린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면 말이지- 세상에 지기로 결심한 게, 불과 이틀 전이었으니 따끈따끈한 소식이다. 호외요! 호외! 하고 여기저기 뿌리는 소식은 다만 강릉에 계신 부모님과 친척들만 몰랐으면 좋겠다. 며칠 전(사실 몇 주 전)부터 졸졸 새어나오는 눈물이 직장 휴게실에서도 그새를 못 참고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삼일 전에는 구내 식당에 갔는데 글쎄,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왈칵 눈물이 고였다.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이걸 어쩌나 고민했다. 점심을 드시고 계시는 팀장님 어깨를 두어번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 말하기를 시도했다.      


“저기, 팀장님. 제가 지금 상태가 안좋아...ㅅ....”
“자기야 왜 그래. 일단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본다. 응응, 그래. 무슨 일이야. 울고 싶으면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아침에? 별 일 없었다고? 응, 그래. 그럴 수 있지. 손도 벌벌 떨고 있네. 자, 여기 휴지. 일어날 수 있겠어?”     


엿같았다. 나도 모르는 이유로 자꾸 눈물이 나오니 이게 슬퍼서인지, 서른 살 여름이 시작되면 갑자기 눈물이 무조건 나오는 뇌로 처음부터 셋팅된 채로 태어난건지, 혹은 리모델링이 된 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기분이, 없다. 또 없어졌네, 그놈의 행복이니 슬픔이니 불행이니. 맨날 도망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는 찾아 그렇게 헤메었는데, 또 내게서 잠시 이별을 고했나보다. 난 감정에게 무심하게, 그것도 결별 통보도 없이 잠수 이별로 차였다,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겼다. 기억력이 나빠지고, 배가 부르고 고픈 걸 모르겠고, 왜 우는지 모르겠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그래서 결심했다. 잠시, 세상에 지기로. 병가를 쓰겠다고 정신과 선생님께 진단서를 부탁드렸더니 그걸 이제야 말하냐며 금방 써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물으시기를


“일단 최소 6개월 이상으로 썼는데, 더 길게 넣을까요? 어때요, 본인은?”     


선생님, 제가 그걸 알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 오지 않을 겁니다. 라는 불만이 오늘도 또 생겼다가 사라졌다. 더 좋아질거라는 희망을 안고 한 달만 병가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에서는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직장 일은 잊고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했던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것까지만 해 주고 가면 안 되냐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점점 약이 세져서 적응하느라 눈꺼풀이 뜨겁고 무거운데도. 머리가 왼쪽으로 누군가 망치를 탕탕 때리는 것 같은데도 해냈다. 


결국 또 해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심각하게 아픈 줄 모르고 자꾸 ‘해내기’에 급급한 개선장군 타이틀을 쥐려고 했었나보다. 그래서 지금 몰아서 온갖 연약한 척은 다 하라고 공공연하게 눈물로 드러내주나 보다. 


참지 않았다. 드디어 세상에 땡깡부렸다. 누군가가 보기에 모자랄 것 없어 보일 나는 모종의 이유로 힘드니까 좀 쉬게 도와달라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한달이라는 시간을 얻어냈으니.


 나의 성실이 보상받은 기분이다. 내 업무를 대신 떠안아야 할 직장 동료들이 오히려 내게
“미안할 생각 하거들랑 더 화낼테니, 건강과 너만 생각해!” 하고 보내주었으니.      


목적지를 모르는 고속열차에 티켓을 끊은 기분. 더불어 눈물이 제일 많은 사람 순으로 좌석 배치를 해서 1등석에 탄 기분. 한 달 뒤에 어딘가에서 내리는 나는 잠시 세울 정차역에서 무얼 보게 될까. 어떻게 될까. 


일단 하루차 감상이란- 이렇다. 내 세상을 일시정지 눌렀더니, 두 눈 뜨고 바라보던 주변도 새롭다. 내가 걷는 이 길이다. 내가 잘 내 방이다. 내가 살 이 하루다.


 나는 알차게 사는 걸 포기할거다. 유치해질 거다. 다만 멍청해지지는 않을 거다. 


엄청난 시도다. 약간만 게을러져도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내가 경험을 꽉꽉 채워 성취해야 늙은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다 오늘을 크게 놓쳐 어디서부터 잡을지 또 갈팡질팡하는 꼴이라니. 기회비용이 더 든다. 그러니 나는 덜 효율적으로, 덜 착하게, 덜 현명하게 지내 볼 것이다.


생각지 않는다. 생각지 않는 게 한 달 동안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일단 오늘 저녁은 어디에 있고 싶니, 나는 나에게 묻는다.
한 달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은- 너, 진심으로 그러길 원하니?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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