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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10. 2024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아니 나보다 힘들리가 없다

유달리 아프고 깊이 불안한 고통은 나만 겪는게 맞았다, 불공평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꼬는 말로 들린다. 정신 상태가 메롱이라서 그렇다. ‘너만 힘든 것 아닌데, 왜 그것 가지고 유난이냐.’라던지 ‘그럴 거면 다른 길을,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그랬냐.’라는 힐난으로 들리곤 하는 요즈음, 결국 나는 육개월 만에 다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이런 곳에서의 짬바는 안 찼으면 하는데 말이지.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에 익숙하게 접수하는 내가 웃기다. 그러면서도 여기 이 초록 소파에 몸을 기대고 말았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좌락좌락 흘렸다. 남들도 저처럼 이렇게 힘들게 마음을 다잡고 삽니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면제를 타러 온 할머니들밖에 안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여기서 치매 검사도 해주냐는 손자가 내 유일한 나이뻘이다. 원래 진찰을 해주시던 의사 선생님도 오늘따라 급한 일정이 있으셨다나. 그래서 잘 모르는 의사선생님께 진찰을 받아야했다. 다른 과와 달리 정신건강의학과는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여는게 참 중요하고, 나는 낯선 의사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심장 주변이 찌르르해요. 무거운 돌이 얹혀진 채로 사는 기분이에요. 잠도 잘 안오고, 자도 금방 깨고요.” 요약하자면, 약을 빨리 내놓으라는 소리다.






약을 받고, 다음날 출근을 했다. 상사가 한 달 동안 지지고 볶던 내 계획서를 보더니 또다시 전화를 해댔다. 잠시 자기 자리로 좀 오라고. 바쁜데 지가 오면 좀 어디 덧나나,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자리에 갔다. 솔직히 고하기도 했다.


[저, 요새 정신건강의학과 다녀요. 우울증과 불안장애요. 그래서 마음 상태가 정말 안 좋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알겠다고 하고 바로 계획서 이야기로 넘어간다. 어쩌구 저쩌구, 참 혀도 길고 말도 시끄럽지, 그러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제가 다시 …”
“아니,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니고, 원래 작년에도 이 일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왜 했는지 나는 너무 궁금해서.”

진상 규명을 바라는 상사는 세상에 없다. 빙빙 착한 척 하면서 제 위선도 세워가면서 자꾸 말을 돌리냐고요. 거기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까지 제가 알아채주기를 바라는 건 너무하잖아요. 안 그래도 정신 머리 멀쩡하지도 못한 사람에게! 울컥 치미는 마음에 눈물이 튀어나오고, 나는 내 계획서로 가타부타 말을 지껄이는 상사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10분 정도 진정하니 갑자기 미안해졌다. 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도 안 듣고 뛰쳐나가는 업무자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냐고.


“요새  MZ는 저렇게 싸가지가 없나?” 라고 할 수도 있다. “저게 왜 저래? 허 참 내. 내가 못할 말 했어?” 할 수도 있고. 죄송하다고 말해야겠다, 다짐하고서 멀쩡치 못한 정신머리로 다시 문을 열었더니 - 웬걸. 팀장님과 차장님이 내가 뛰쳐나가건 다시 돌아오건 안중에도 없이 일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말했다.

“저어- 제가 갑자기 공황처럼 갑자기 정신이…”
“어어, 괜찮아. 화이팅!”

하고는 그러니 결국 저 계획서의 고칠 점 3가지를 꼽아주는 게 아닌가. 네 하고 받아들고 나오면서,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몰려왔다. 팀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냐고 뒤늦게 물었지만 소용없었다. 억지로라도 웃을 힘이 제로였기 때문이다.


와, 대박.
화이팅이라니. 그것도 왼 손 주먹을 꼭 쥐어 보이며 깜찍하게.
갑자기 뛰쳐나갈 정도로 멘탈이 약해진 사람에게.
 공감 능력은 어디 창문 밖에다가 던져 버렸는지, 혹은 똥 싸면서 같이 변기에 내려버렸는지.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났다. 그러다가 혼란스러웠다. 남들도 다 나처럼 힘든 줄 알았는데, 남들은 왜 저렇게 산뜻하고 쉽게 살아가나 싶었는데 이유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소주 잘 먹었다, 흥
그냥, 생각이 없는 거였다.

나처럼 깊이- 누군가의 마음을- 사려깊게 생각지를 않아.

그저 제 잇속만 챙기면 그만인 게 남들이라는 집단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나처럼 살지 않는다. 남들은 나보다 가볍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맞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그래서 남들만큼, 남들처럼 저렇게 살고 싶냐.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 저렇게 안 살래.

내가 왜 유달리 삶을 사는 게 더 힘들고 팍팍하고 고통스럽나 했다. 내가 착하고 예쁘고 마음이 유달리 고와서 그런 거였다. 어차피 이 글 읽는 모든 사람들 내 진짜 모습 모를 테니까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중요한 건, 내가 진짜로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는 게 아니라 남들에 비해 더 대단하다는 걸 알아채기로 했다는 점이다.

내가 남들처럼 살 수 없다고 힘들어했던 건, 남들보다 더 대단해서다.

세상에 별로인 남들이 너무나도 많고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잘 살고 싶어서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던 거였다. 그래서 주말에도 뒹굴거리고 쉬기보다 책이라도 한 자 더 보고, 쓸데없다고 남들이 욕할 때 글자라도 하나 더 써서 인스타에 올리던 거였어. 그랬던 거였다.


다만, 유난은 계속 떨거다. ‘남들처럼 사는 거 힘들어 죽겠다!’하고. 그렇게 생색이라도 내주질 않으면 내가 나에게 너무 미안하니까. 또, 가뿐하게 특별한 나를 보고 시기질투해서 내 앞길을 막는 질 나쁜 사람들의 눈을 흐리기 위해서. 아름다운 나를 알아보고 함께 세상을 살 가치로운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사는 거 힘들어 죽겠다. 그 이유는 내가 대단히 큰 그릇을 가진 멋진 사람이라서고, 그래서 그걸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낼 인생이 멋질 거라서. 그리고 앞으로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거리기도 할거다. 가만히 견디면 호구가 되는 이 이상한 세상살이에 맞서기 위해서.

직장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모종의 복수를 다짐했다. 밥을 먹으면서 동료분들께 부장님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공감력 없는 사이코패스인지 글쎄 뛰쳐나가는 나를 보고 “화이팅!”이라며 손을 들고 응원해주었다고 고자질했다. 사람들이 경악했다. 알고 봤더니 다른 동료분들께도 ‘이건 신뢰의 문제야’라며 복무 문제로 사람 속을 긁어놓았던 쫌팽이 짓이 적발되었다. 나의 승리다.


부장님은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드냐며 같이 욕할 동료가 없다. 나는 내 오늘이 미친듯이 힘들었다며 칭얼거릴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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