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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03. 2024

내 삶을 누가 협박한 건 아니어도, 억울할 순 있잖아요

(3) 상상해도 답 없는 미래, 근저당잡힌 오늘의 불안 털이

화요일 오전 11시 36분. 결재 버튼을 누르며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한숨. 난 분명 숨을 쉬었는데, 나오는 건 왜 힘 없고 더운 “하아-”인건지.

아, 인생이 또 한숨으로 뒤덮인 하루의 나날이 돼 버렸다.


면역력 제로의 최근 내 이주일. 마음에 감기가 올 것도 같아, 두려움에 단도리 친다는 것이 더욱 병을 악화시켰나보다. 하긴, 감기에 안 걸리겠다고 문을 꽁꽁 걸어잠가봤자다. 창문 한 번 환기시킨다고 열어놓으면 다음날 아침 콜록거리는 게 감기인 것을. 나는 그것 하나 걸리지 않겠다고 그렇게나 애를 써서 두려움에 떨었나. 평안한 시간을 또 다시 망쳐 가며. 그러니 네가 결국 병들어버린 것은 네 탓이다. 눈 앞의 시간이 소중함을 몰랐던 또 나의, 또 그릇된 생각으로 인한 과오. 글썽거리는 눈물이라던가 여전히 찌르르 가슴을 찌르는 통증 같은 건 다 내가 가져온 어둑시니란 말이다. 힐난하려다가 불쑥 반항기가 고개를 치밀고, 나는 억울해 소리친다.


-더 잘 살고 싶어 불안에 좀 떨었던 게, 뭐가 그렇게 죄가 되어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나는 주어진 작고 소담한 삶에 늘 만족해야만 하는 거야? 반짝이는 넓은 삶을 왜 남들마냥 살지 못하는 거야, 한 번 꿈이라도 꿨다고 지금 벌을 주는 거야? 그렇게 나는 늘 현재에 만족하고 오늘을 감사하며 ‘이거라도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하고 고개를 떨구며 살아야 하는 거냐고!


근 2주간 나를 괴롭혔던 기준점은 - ‘돈’이다. 정확히는 서울의 새 아파트같은 번쩍거리는 주거.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아파트 한 채 없는 실패한 인생이 되었던 거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 죽으면서 그들의 삶의 단점을 찾아 배배 꼬는 자격지심에 미친 사람이 된 거고, 더 나이든 자들이 이룬 결과만 보며 내 세대는 결코 저럴 수 없을 것이라는 인생사 부정 테크트리를 타고 삐뚤어진 거고.


그리고 또 안다, 푸념할 사이에 뭐라도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그치, 막말로 주식이건 경매 투자건 하다 못해 로또라도 직접 사야 이 모든 걸 타개할 끄트머리라도 붙잡을 수 있겠지.

근데- 이제 그만 노력만 하고 싶단 말이다. 인생에 언젠가 거저 얻어지는 그런 행운, 나에게는 평생 올 수 없는 건가?

 답답하다. 옛날부터 운동회 1등 경품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 그 흔한 마트 참가 경품도 내 차례만 되면 재고 소진. 남들은 잘만 사는 세상, 왜 나에게는 이렇게 가혹하고 답답하고 불행한 건가, 그동안 뭘 덜 열심히 살았다고.


그간 이뤄온 모든 것들이 너무도 하찮아서, 내가 지켜낸 내가 또다시 ‘고작 이런 나'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분노와 불안에 휘몰아친 누군가들을 일 때문에 상대해야만 하면서 나는 초라해져갔다. 겨우 이런 삶을 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나 싶어서. 고작, 기껏해야, 절망뿐인, 오늘을.


답답한 가슴께가 찌르르한 버저를 만들어냈다. 두 가슴 사이에 불쾌하고 무겁고 기분 나쁘게 진동하는 돌덩이를 얹은 기분. 꺼지지 않는 커피 주문 알람벨을 머리 위에 둔 테이블의 기분. 앞으로는 카페 진동벨이 울리자마자 부리나케 들어서 테이블을 구해줘야지, 엉뚱한 다짐이나 하고 있을 무렵. 2주가 지난 어느 날. 나를 괴롭혔던 그놈의 업무가 마무리 되었던 어제, 버저는 여전했고 나는 영문을 몰랐다. 어라, 이 업무가 끝나면 어느 정도 마음이 가뿐해질 줄 알았는데- 왜 여전히 버겁지. 드디어 힘든 날 다 끝났다며 상쾌하게 두 팔 들고 기지개를 펼 수가 없지. 그러다 만난 누군가.


[고생했지, 이번 주.]
[많이 힘들었지?]


갑자기 들이닥친 두 마디, 예상치 못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뿌앵 하고 시원하게 울지도 못해, 나는 소리 없이 숨죽여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일렁이는 내 시야는, 조록조록 흐르는 슬픔은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또 몰라줬구나. 스스로 자신을 방치했구나. 나를 돌봐줄 내 편, 내가 되어주지 못했구나 하는 죄책감도 함께 몰려왔다. 또 나를 힐난하고 채찍질하고 말았어.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나는, 좀 더 잘 살았어야 했는데…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는데… 여전히 거두지 못한 칼을 내려놓게 하는 어떤 토닥임, 그리고 한 마디.


[지금까지 잘 견딘건, 네가 너라서야. 너니까 이만큼 잘 해낼 수 있었던거야.]



내가 나라서- 그래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잘못되지 않았다고. 잘 살아왔다고. 오늘까지 죽지 않고 견뎌온 내가 대단한 거라고. 모든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사실은 그 말을 제일 듣고 싶었나보다. 내 어떤 시간도 헛되지 않았다고. 미래가 막막하고 보이지 않고, 현실은 불만족스럽고, 그래서 나는 과거의 모든 내 시간을 난도질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가슴께 아픈 통증을 만들어내 버거워하고 있었는데.


토닥토닥, 그리고 포옹. 계속 흐르는 내 눈물, 그런 나를 보며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 앞 사람.



[뭐야, 갑자기 왜 울어?]

[그냥-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까. 속상해서.]



번듯한 집 대신 오피스텔에 살아도, 지금까지 타지 생활을 해내며 겨우 모아온 작은 돈도, 그 대신 선택해 겪은 다양한 일들도. 그간 먼지 쌓이게 두고 가치 없다고 평가절하했던 모든 과거를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 건- 몇 마디, 그리고 힘들었던 스스로를 알아채고 오늘을 받아들인 나.


눈물로 닦아낸 자리는 먼지를 쓸어내 깨끗했고, 누군가의 몇 마디는 내 삶을 다시 반짝이게 페인트칠 해 주었다. 이상하지, 달라진 상황 하나 없는데 나는 희망이라는 걸 또 품는다.


 씩씩하게 유튜브를 켜고 주식 종류를 찾아본다. 내일 투고 홍보 PPT를 기필코 시작이라도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당분간 KB부동산 시세 어플은 켜도 소용이 없으니 적어도 6월 중순으로 미루자, 생각한다. 2주동안 한 시간씩 글도 쓰고, 주식 책도 읽어보고, 부동산 기초 공부도 시작해 보고, 하지만 나를 위한 운동을 꼭 하자는 계획을 짜야지- 마음을 정리한다. 



인생은 여전히 어렵고 나는 남들보다 몇 배 고생하여 겨우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복잡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좌절해도 빛나는 나는, 부서져도 찬란히 성장하는 사람이니까.


앗차, 잠시 덜 반짝일 뻔 했네! 슬픔 몇 방울로 아름다운 나를 내가 못 알아볼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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