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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Jun 17. 2024

이도저도 안 된 내꼴, 별꼴인데 왜 예뻐보이는지-

내꼴 별꼴이긴 한데 예쁜게 또 웃겨죽겠고, 미친 게 틀림없는 청춘의 우울

이번주 로또도 꽝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 그렇지. 무운과 성실의 아이콘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적어도 난 그런 경우다. 지난 주에는 정신의학과에 갔더니 원래 진료 보던 선생님께서 앉아 계시더라. 단골 미용실 원장님을 것처럼 괜시리 마음이 반갑더라고. 하지만 웃지는 못했다. 웃고 우는 법을 잊은 청춘이라 병원에 거지, 다시금 통감했다. 선생님께서는 약의 용량을 지난번보다 조금 높여주시고, 약의 종류를 원래 먹던 것으로 바꿔주시고는 물었다. 같은 질문이다.

"이번에 오면서 꼭 물어야겠다는 질문, 있어요? 뭘까요?"


내 대답도 한결같다.


[모르겠어요.]

쭈뼛거리는 말투와 자신감 없는 손가락은 덤이다. 모르니까 왔지 이 양반아, 내가 뭘 잘못되어서 우울한지 알고 있으면 여길 오겠냐고요. 가득찬 마음의 불만은 금새 힘이 없이 사라진다. 약을 타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문득 든 생각.

[왜 세상은 청춘에게 꼭 답이 있다는 듯이 무자비한 질문 폭탄을 던져댈까?]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더위를 피해 그늘막으로 자박자박 걸었다.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답이라고는 이 땡볕 더위를 피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왼쪽 보도블럭 대신 오른쪽 보도블럭이 더 시원하다는 것,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 한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세상이 내게 심심치 않게 물어오는 질문들은 나를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만 같다. 무겁기도 하지. 무섭기도 하고.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


- 결혼은 할 거니?

- 더 좋은 데 살려면 저축 열심히 해야지, 얼마나 하고 있어?

- 요샌 한 직장 다니면서 평생 못 산댄다. 퇴근하고 키울 부캐 없어?

- 이것저것 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야. 알차게 주말 잘 보내고 있는거니?

- 얼굴이 그게 뭐니, 좀 꾸미고 살아야 남들이 무시 안 한다?


자, 내 대답을 찬찬히 해보자면 모르겠고, 비밀이고, 부캐 키워도 물어보는 님한테는 말하기 싫고, 알찬 주말 너나 잘 보냈으면 좋겠고, 그런 말 할 거면 옷 사게 돈 오만원이라도 줬으면 좋겠고.


언젠가 좋은 미래가 있을 거란 희망으로 버텨낸 서울살이. 서른이 되고 돌아보니 내가 제일 후회되는 건, 저 질문들에 하나같이 모두 답을 다 해주려고 친절했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질문에 나는 [모르겠어요.], 혹은 [여기에만 대답할래요.], [이것만 하고 이건 안 할래요.]라고 해도 됐었다. 그럼 저 질문 괴물은 오, 그렇군 하고 쏙 들어가버리는데. 저 몬스터를 퇴치할 방법이 하나 하나 칼을 맞아가며 방패만 들이미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질문들에 사지가 붙잡혀 이것 저것 모두 조금씩 다 충족시키려다 찢어졌다. 진짜 팔다리 말고 마음이.

나는 나였어야 했는데, 나의 목소리를 내가 잘 들었어야 했는데, 내 색을 얼른 되찾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나, 뭐. 옛날부터 국영수사과를 모두 고루 잘 해야 대학을 잘 가던 성실한 모범생 습관이 인생에 악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그러니 나는 이제 내 과녁을 스스로 바꿔 달려고 한다. 그러려면 원래 있던 삶의 다양한 과녁 여러개를 추려서 중요한 것만 남기고 떼 내버려야 했다. 아,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오늘 선심 쓰듯 전기 치료를 해주셨구나- 싶다.


"원래 종합 병원에 가면 3만원 넘게 하는 건데, 이게 동네 정신과라고 환자분들이 다 돈 얘기를 하자마자 안 한다고 하시더라고. 즉각적인 효과에는 이게 최곤데 말예요. 그, 그래서 그런데 혹시 진료 끝나고 시간 있으세요? 어디 뭐 급하게 가셔야 한다거나 그런 거... 아니구나. 그럼 잠시 30분만 전기 치료 좀 하고 가세요."


전기 치료를 하면 어쩌구, 비급여 어쩌구, 등등이 적혀있는 치료 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그랬더니 머리에 헤어밴드하듯 관자놀이께에 기계가 달린 찍찍이를 달아주셨다. 그리고는 회색 소파에 앉으라고 하셨다. 뇌파로 즉각적인 우울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거니까, 잠들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더라. 치료가 시작되었고, 나는 불쾌한 전기 자극이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머리를 놀리듯 때리는 걸 가만히 느꼈다.


지직- 왼 쪽 머리를 몇 번 때리고, 지지직- 오른쪽 관자놀이를 지긋이 때리고

지직-  상담 선생님의 말이 스치고, 지지직- '나예요. 인생의 중심은 나. 상황 말고요.'

지직- 당장 할 수 없는 경제적인 풍요에 할 수 있는 만큼만, 지지직- 부동산공부도 주식공부도 일단 저축을 더!

지직- 배배 꼬여버린 자격지심에 놓친 내 장점을, 지지직- 소설 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지직- 돈을 아끼기 위해 만 원짜리 티셔츠를 사고, 지지직- 만 원짜리 입어도 예쁜 날 기특해하고

지직- 결혼을 할까말까 망설이지 말고, 지지직- 평생 함께할 확신이 들만큼 경험을 쌓아보고


30분이 지났고, 머리에 씌워졌던 기계가 사라졌다.

지금 할 수 있는 오늘을 살아낸다. 무언가 할 수 없는 오늘이 어제 때문이 아님을 알면 된다. 삼일 뒤는 몰라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 정도 기대할 수 있으면, 괜찮다. 그렇게 살아볼 시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러나 저러나 다 예쁜 특별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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