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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y 22. 2024

죽지 말자고 다짐하자, 개떡같은 세상이 내게 찾아왔다

(프롤로그) 20대를 그렇게 버텨냈는데, 남은 건 닳아버린 자격지심

"이게 네가 작년에 그토록 바랐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되냐?"

이렇게 걱정과 근심, 미래에 대한 기약 없는 불안이 가득한 지금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만큼 힘들게 20대를 버텼는데, 세상은 잘했다는 칭찬 하나 없다. 수중에 없는 것만 골라 유튜브 알고리즘에 쏙쏙 넣어 줄 뿐. 앞자리에 3자가 붙자, 동영상 추천이 바뀌기 시작했다.


-진짜 결혼할 상대 알아보는 법

-지금 1억 있으면, 여기 투자하세요

-현금 들고 있는 바보는 아직도 없어야 한다

-요새 MZ가 퇴사하는 이유

-00호텔 호캉스 투어, 명품 HAUL


살아야겠다- 나 이제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지느라 몰랐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무언가 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삶의 출발선이 달랐던 이들을 나는 잠시 눈이 마주쳤다고 같은 레일을 뛰고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 겨우 오늘을 살아내는 나와 다르다. 


내가 어제와 오늘에 아파할 동안, 주변 동년배들은 현실에 눈을 뜨고 부단히 각자의 자리에서 달렸다. 그리고 그들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내게 없는, 평생 함께할 남편과 결혼
- 걱정 없이 오래 거주할, 넓고 쾌적한 보금자리 마련
- 투자 공부
- 힘든 업무에서 안정된 곳으로 직장 변경
- 청춘의 경험을 위해 외국 살이
길 가다 마주치는 아파트들, 이젠 다 부러울 지경! 나, 평생 저런데 못 살 것만 같다



비참해. 나는 나로 살아가기도 벅차느라 원룸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였다. 그 동안 대부분의 지인들이 성취해낸 건, 내가 언젠가 어른이 되면 꼭 해내리라 다짐했던 것들이었다. 심지어 산뜻하고 쉽게 가진 것 같아 보인다. 


억울해. 원룸 하나 계약할 때도 집주인 성격은 어떤지, 전세 사기는 아닐런지, 보증 보험 계약이 되는지, 전세가율은 어떤지, 이 좁은 오피스텔에서 이 나이 먹고 언제까지 살아야 할런지 온갖 걱정과 고난의 풍랑에 빠진 돛단배처럼 현실의 파도를 양껏 맞고 비틀거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자고 해서 결혼했더니, 그 사람이 아파트에서 살자고 했고, 그래서 몸만 들어와서 살고 있는데 새 냉장고라서 예쁘긴 하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를 키울 수도 있으니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꾸깃해진다. [남과 경쟁하면서 살면 자신이 고달프다]고 했는데, 경쟁하지 않고 사는 법을 세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 놓고 도닦는 소리나 하면서 마음의 평화 같은 걸 찾으라니- 당장 현실은 어디 죽 쒀서 개 줬냔 말이다. 걔네랑 나는 퇴근하고 들어가는 문부터가 다르다고. 


내가 가진 걸 세어본다.


- 우울증과 불안증 짬바

- 2N회차 상담센터 상담 이력

- 한 번 걱정하면 땅 끝까지 파고 들어가 공황 증세가 시작되려 하는 몸

- 직장 8년차 경력

- 유튜브에서 내 나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1억 대신, 얼마 안 되는 약간의 예적금

- 옷장의 옷가지들, 보세 가방 네 개

- 독립책방에서 구입한 책 열 몇 권

- 남들과 비교하는 자격지심, 그리고 욕심

-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습관

생각해보니 가진 것 하나 더 있다, 라면 끓이기 실력.



결혼할 상대를 알아보는 눈도 부족하고, 1억도 없다. 직장을 년을 다녔는데 예적금이나 겨우 조금 들고 있고, 주변 누군가처럼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며 퇴직할 깜냥도 된다. 월세집 계약 만료에 맞추어 다음 원룸을 찾아보고 있는 나는, 10년 고등학생이 그토록 바라던 30대의 커리어우먼이 아니란 말이다! 아파트에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경기도에 안착해 주말에는 아울렛 쇼핑을 다니고, 가끔은 해외 여행도 가면서 현명하게 주식 투자도 하는 똑순이가 알았다. 


지금 갖고 있는 건, 몸뚱아리 하나. 우울과 불안증세를 널뛰며 자주 너덜너덜해지는 심장. 몇 년 뒤에도 똑같이 살 것만 같아서 겁이 덜컥 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서울 경기도 삶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기에는, 거기에서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다. 욕심만 가득하고 가진 건 없는 사람. 내일이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쫄보. 그게 나다.

그래서 다짐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는 시대는 저물었고, 나는 그럴 만한 위인도 못 된다고.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손해인 것만 같은 이 세상에
불평 불만이라도 하릴 없이 쏟아내야겠다고. 

이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소비 습관도 이만하면 꽤나 허영 없다고 자부하는데, 그런데도 아직까지 삶에 가진 게 없다면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 세상 탓이라고 욕을 뱉을 거다. 세상은 내게 친절하거나 행운으로 가득한 랜덤 창고가 아니다. 잘 견딘답시고 불행만 가득 안겨주는 불합리하고 못된 깡패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잘못된 건, 이 세상이야.
그러니 욕을 먹어도 싸다- 오늘의 현실은. 


내 앞에 닥친 개떡같은 세상, 욕을 바리바리 한 사발을 뱉어가며 허공에 펀치라도 날릴 것이다.

억울해, 화나, 답답해, 어이 없어! 


긍정적으로 다짐하며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보는 청춘의 20대는 이제 그만,
 난 불평불만 가득한 밉상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아볼 것이다. 죽지 않고. 세상, 개떡같다 소리치면서.


이렇게 생긴 30대 여자가 쏟아내는 불평 불만사 세상 살이, 네가 개떡같다면 내가 더 개떡같이 욕하고 다닐 거다! 선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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