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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l 19. 2024

최최종 하일 아웃, 최최최종 무화의 사랑은?!

결국 무화는 제 사랑의 허상을 알아차리고, 그 모습을 예뻐하는 누군가에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을 통해 트라우마로 남은 해당 분 및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를 지원할 계획이며, 소정의 배상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인구가족부 장관의 대국민 사죄 발표가 끝나고, 기자들이 무수히 많은 질문을 그에게 퍼부었지만 굳게 닫힌 장관의 입술은 열릴 줄을 몰랐다.     


무화의 사건은 특종으로 각종 뉴스에 장식됐다. 영상 매체에서는 앞다투어 그녀와 인터뷰를 따려고 혈안이었다. 그녀에게 몇 백, 혹은 몇 천의 인터뷰비를 지급하겠다는 언론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수치스러웠다. 하일이, 아니 하일이라는 가명을 썼던 그 놈이, 여자를 납치 및 폭행한 뒤 가스라이팅으로 자신만이 세상의 유일한 남성이며, 그래서 모든 여자는 자신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이른바 ’천하일남교‘의 교주여서가 아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생각해보면 특이한 구석이 한 두 개가 아니었음에도 모든 수상한 정황을 못 본 체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 


“무화씨는, 세상에 남자가 몇 명이라고 생각합니까? 전, 진짜 남자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남자인 척 하는 어떤 생명체들이죠.”
그런 말에 깔깔거리고 웃기다며 웃어서는 안 됐었는데. 또 이런 말들도.


“무화씨는 평생 한 사람만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거, 생각해 봤습니까? 삶의 방향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라는 생명인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로 맺어진 소중한 약속을 깨트려서는 안 됩니다. 신성한 서약을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같은 말들. 좀 뚱딴지 같지만 그래도 로맨틱한 말 아니겠냐며 옛날 시를 자주 읽나보다 정도로 넘겨버렸었던 지난 날들이 무화에게는 모두 수치심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사이비 교주에게 진정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품었다니. 내가, 그렇게, 바보였다니.      


무화의 의지와 별개로 그녀는 어느 한 병원 VIP실에 눕혀졌다. 신경과부터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외과까지 모조리 싹 검사를 돌려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병가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세 달 동안이나 유급 병가를 쓰는데도 평소 같았으면 위에서 제재가 들어올 법 한데, 아무런 방해 없이 이유도 묻지 않고 병가 승인이 났다. 물론 그녀 자신은 이런 사정을 나중에 들었고. 그리하여 무화의 직장에서는 무화가 사실은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아다, 아니면 정치인의 딸이다 같은 허황된 소문이 돌았다. 그런 소문의 선봉장에는, 무화와 가장 친했던 유라가 있었다.


“내가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요? 그건 이런 프로젝트를 만든 정부도, 그 사이비 교주 새끼도 아니에요. 나예요. 나. 사랑이 뭐 그렇게 찾는다고 찾아지는 보석같은 게 아닌데. 난 그걸 누군가 내 마음에 맞게 꼭 채워줄 줄 알았던 거예요. 바보같이.” 


넋두리는 당연히 무화의 목소리고, 그걸 듣는 사람은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온 김배람이다.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남자인 하일은, 사실 아무도 될 수 없었다. 모두 그녀의 허상이었다. 많은 옷을 옷가게에서 입다보면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사는 것처럼, 사랑도 그럴 줄 알았다. 여러 남자들을 쉼 없이 자신에게 재 보면서 무화는 제가 생각한 사이즈에 딱 맞는가 잴 줄만 알았다. 혹은 제가 바라는 사랑이라는 틀에 갇혀 모든 남자들과의 어떠한 가능성마저 놓쳐버리거나 차단해버렸다. 자책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창문을 바라보며 힘 없이 축 늘어져있는 그녀를 보는 김배람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저도 모르게. 그리고 말했다.     


“무화씨.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있습니다. 물론 많지는 않을수도 있어요. 오늘처럼 큰 일을 당할 뻔 했던 점에 대해서는 이틀 뒤에 장관님이 직접 오셔서 사죄 말씀 드리겠다는 방문 의사 밝히셨습니다. 누군가 믿는 게 어렵겠지만, 힘을 내 봐요. 처음에 봤을 때에는 저희 부서 프로그램을 의심하느라 눈이 반짝거리면서 새초롬했는데, 오늘 맥아리 없는 눈을 보니 어, 음....어, 그....슬프네요. 제가.”     


뭐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성격이라지만 여자에게는 아닌데. 말을 마친 배람은 자신이 무화의 손을 무심결에 잡아버린 것에 화들짝 놀라 손을 뗀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것도 죄송하다는 말을 더한다. 그리고는 “꽃다발은 어디에 둘까요?”라며 화제를 황급히 돌린다. 무화는 한숨 섞인 너털웃음으로 배람을 쳐다본다. 이 불쌍한 사람은 공무원이라는 죄로 나를 케어해야하는구나. 무화가 말한다.     

“피해자는 나만이 아니네요? 이런 민원인 때문에 여기서 꼼짝없이 모르는 여자 병수발을 몇 달동안 들게 생긴 주무관님도 피해자 아녜요? 꽃은, 저 주세요. 꽃향, 좋아하거든요.”     


와, 향기 좋다. 보라색 꽃에 파묻혀 코를 킁킁거리는 무화의 머릿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그 모습을 본 김배람의 눈이 함께 반짝여 보이는 건, 무화의 기분탓일까. 둘의 눈이 마주치고- 왜요, 왜 쳐다봐요. 라던지 저야 무화씨를 간호해야 하는 공무원이니까요. 서로 잡담을 주고 받는다. 떨어질 줄 모르는 배람의 시선이, 무화를 향해 닿는다. 


“3개월 동안이나 돈 있는 백수 생활을 하게 된 여자 옆에 꼭 붙어 있을 필요 없어요. 저, 괜찮으니까 배람님 얼른 퇴근하시고, 다음날도 출근 굳이 여기로 안 하셔도, 아 하긴 해야 하는구나. 그럼 늦게 하시고 일찍 가세요! 저희 피해자들끼리 그런 농땡이부리는 시간이라도 보상 받아야죠. 안 그래요?”     


무화의 말이 웃긴다. 평생 시간 약속이라곤 어겨본 적 없고,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며 남자와 민원인들 한정으로 친절한, 사석의 여자들에게는 농담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배람은 무화가 말하는 모든 단어들이 편안하다. 이상하리만치. 안쓰러워서일까. 일로 처음 만나 여자라는 생각보다 사람이라는 생각을 먼저 해서 그런가. 그래서 자꾸만 옆에서 말을 걸고 싶다. 말을 걸어보고, 같이 이야기나누면 재미있을 것 같다. 마음도 불편하지 않고. 어라, 이건 무슨 느낌이지. 배람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안 됩니다. 저는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무화씨 곁에 3개월동안 있을 겁니다.”     


일단 시간은 충분하다. 100일이면 곰이 사람도 되는데 90일 남짓한 시간이라면 배람의 이 간질거리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화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지 알 수 있을 터. 꽃병에 꽃꽂이를 하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점차 깊어질지도. 그리고 그런 남자의 부끄럽지만 단단한 내면을 여자가 알아챌지도. 그리하여 그렇게 그동안 찾던, 사랑, 이라는 것을 찾을지도.     


인구가족부 사랑결혼부서 프로젝트 지무화, 종료. 종료? 일단은.


그리고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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