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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북스테이, 함께 - 사랑모임에 기대어 우는 연습

(프롤로그) - 안동, 북스테이 직전의 마음 : 낯선 이에게 기대기 연습

by 라화랑
감이 오질 않네.


이게 내가 처음으로 써야 하는 문장이다.

또 다시 지난 3일간이 꼭 그랬다. 나는 어떤 답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헤메었고,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질문을 마음에 품었다. 6월 2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었던가.

두 번째로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렸고, 두근두근 밖을 나갈 때 떨리던 마음이 조금씩 수그러들었으며,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금 심장에 손을 꼭 얹어야 하는 날이었다.

호모북커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목걸이와 팔찌를 샀다. 소원 팔찌라고 멀거니 반짝거리는 큐빅을 매단 검은 줄이 쇼윈도 밖의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어떤 소원을 빌며 몸에 지니고 있을까. 혼자서도 팔찌를 차는 법을 알려주던 친절한 직원을 보며 생각했다. 내 소원은 내가 바라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이다. 전 남자친구가 준 금목걸이를 드디어 버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부적처럼 내가 산 목걸이와 소원 팔찌를 끼고 다니며 호모북커스의 3일을 추억하기로 했다. 만지작 만지작, 가게에 나오자마자 팬던트에 손이 갔다.


내 인생의 알라딘이 되어줘, 곰돌아. 힘들 때마다 내 마음을 거기에 꼬옥 붙들어 맬게. 곰돌이 너는 내 손을 타고 와 종로의 공기를 뱉어 줘.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와르르 짐이 쏟아져나왔다. 정리할 힘이 없어, 침대에 벌러덩 누워있다 옷을 바꿔입었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 그 시간은 내게 시험대가 될 것이었다. 우울증 약을 먹고 불안한 증세가 있는 28세의 여성은 원래 예정된 느슨한 연대의 모임원들과 어떻게 뒤섞일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인가, 두려움인가, 설렘인가. 무엇인지 모를 떨림이 심장에 전해져왔고 나는 다시 가슴에 손을 꼭 댔다.


나가지 않는 것보다는 나가는 것이 좋으니까. 너는 괜찮을거야.


옷을 골라 입게 됐다. 나는 오늘 어떤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꺼내건, 나는 예쁜 사람이고 싶었다. 내 스스로 못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 아름다운 나를 보고싶었다. 마음 하나 잠깐 아픈 것 별거 아냐, 넌 여전히 예쁘고 멋져. 나에게 다짐하듯 첫 데이트를 하는 여자 마냥 공들여 위 아래를 맞춰 입었다.

약속 장소를 찾아가며 쳐다본 오후의 햇살과 한강은 웃음이 와하하 나올 만큼 반짝였다. 혼자였던 나는 크게 탄성을 질렀다.

"와, 진짜 멋지다!"

다리에 매달려 얼마간 바람에 스치는 물결을 구경했다.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공기가 카페로 가는 내 다리를 부추겼다. 멋진 시간이 될 것만 같아- 기대감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걸 느끼며, 문을 열었다.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커플이었다. 20대 커플들 몇몇이 따로 앉아 한강을 보지도 않고 저들끼리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으며, 50대로 보이는 커플은 멀찍이 앉아 멍하니 한강을 쳐다보며 음료수를 마셨다. 카페는 한강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배였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가벼운 일렁임이 엉덩이를 타고 느껴졌다.

얼마간 책을 읽고 있었을까, 약속 장소에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어떻게 지냈냐, 잘 지냈냐, 그 동안 인생에 어떤 고민이 있었느냐, 머리를 좀 자른 것 같다, 어머 여기 풍경이 너무 좋다, 등의 이야기가 넘실넘실 흘러넘쳤다. 그리고 느꼈다. 지금이다. 나는 지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저, 제가 어떤 직업인지 말 했었나요?"

아니-하는 대답과 직업을 밝히자 잘 어울린다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내 상태를 솔직히 고했다.


"저 사실 오늘 휴가 아니고 병가였어요. 저 며칠 전에 병원 다녀왔어요. 심장이 너무 떨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랑 차 소리가 너무 커서 주저 앉고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세탁기를 켰는데 옆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올 때 저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세탁기를 껐어요. 그래서 그 때 느꼈어요. 아, 내가 진짜 미쳐가는구나. 병원에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워서 가방끈을 꼭 잡고 갔어요. 회사에도 며칠 안 갔어요. 그리고 오늘 사람들한테 처음으로 고백하는 거예요. 저, 사람 많은데 엄청 떨렸는데 오늘 오는 길은 너무 기분 좋더라고요."

안쓰럽게 볼까, 어디에 시선을 두었는지 잘 모르겠다. 담담하자고 약속했지만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는 한강을 타고 흘러갔다. 용기를 들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따스했다.


진심으로 두 눈을 꼭 맞추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토닥이며 안아준 사람도 있었다. 나도, 사실은 그렇게 우울한 적이 있었다며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있었고 무슨 일이냐며 진심으로 화를 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힘들고 아플 때 웃는다.

다른 사람들이 내 걱정을 하는 게 보기 싫고, 내가 감당해야 할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아픈 내 얘기를 하면서 웃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슬픔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 직업과 소상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두 달 만난 어른들은 쉽사리 응원이나 조언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고, 나를 가만히 봐주었다.

눈을 맞추며, 나는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는 아주 좋다고.

마음을 털어내니 그제서야 숨이 편안해졌다.

한강뷰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게 처음이라니, 나는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거지.

열심히 논다고 돌아다녔는데도 나는 여전히 못해본 일이 많고,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과 뒷풀이로 한다. 모임 이름이 '사랑의 이해'였기에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나눴다. 이야기는 연인과의 사랑에서 점차 부모님, 가족간의 사랑, 인생을 향한 자신과의 사랑으로 번져갔다. 예를 들면,


-요새 느끼는 나만의 고민거리가 있어요?

-최근에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모임을 하면서 사랑에 대해 바뀐 생각이 있나요?


같은 것들. 나는 여전히 우울증 환자지만,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개의치 않고 한 모임의 일원으로 대해주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사회적 느슨한 관계 속에, 내가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기분이 비로소 들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평안한 소속감.


나는 지금은 괜찮다. 막연히 느꼈다.


땀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워주는 JH님, 멀리 있는 내 접시에 고기를 담아주는 S님, 내 앞에서 나와 너무 다른 리액션으로 나를 놀라게 해주는 MS님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나는 웃는 내가 그리웠다. 웃는 방법을 잊은 나는 거울로 비뚤어진 입매를 원망스러워했다. 왜 웃어지지가 않지, 진심으로 왜 즐거웠던 적이 생각나지가 않지.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여기서부터가 다시 시작이구나.
나를 터놓은 순간, 나는 웃음을 되찾았다.

다음 날, 미리 예매해둔 기차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안동으로 가는 날이다. 누가 그렇게 정했냐고?



마음 활짝 여는 연습을 조심스레 준비했던 북스테이 전날을 프롤로그로 가져왔습니다.

드디어 오롯이 누군가에게 마음 기대는

따스함 가득한 세상을 맞이하러 안동으로 떠납니다.

그런 6월 초중순의 제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습에 기꺼이 자신들의 다정

당연하다는 듯 내어주신 사랑의 이해 모든 모임원분께

진심으로 특별한 감사를 전해요!



사랑을 이해하겠다며 모인 개인에서 서로의 아픈 경험, 깊고 부끄러운 자신의 내면 작동 구조까지 진솔히 터놓고 서로가 된 모든 모임원분들!

모두 사랑앞에 진실된 멋진 어른들임을,

그런 당신들의 사랑에 우울했던 누군가의 삶이 빛나기 시작했음을 알고 계실까요?


덕분입니다.


우리, 각자의 평안을 빌어주는 다정한 사이로

오래 서로의 삶 주변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하고 사랑해서, 애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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