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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 우울증, 하회마을에서 외로움 찾기

(2) 안동 하회마을에서 외로움 찾아 둘 되는 방법, 말 걸기

by 라화랑


아침을 먹으며 결정했다. 함께 가기로. 이건 나에게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람이 싫고, 맞춰주는 자신이 싫어 스스로를 분실한 내가 아주 낯선 타인과 하루를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하다니. 동시에 충동적이었다.

모르는 외국인과의 하루는 나에게 스스로에게 출제한 시험지였다.
나를 시험해보는거야.
지금 내가 얼마나 망가져있는지, 어느 부분은 아직 쓸 만 한지.

버스를 기다리며 말했다.


"나는, 안동을 여행하러 온 게 아니라 그저 이 북카페와 연휴를 즐기러 온 한국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편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함께 같이 다녀줬으면 좋겠나요, 아니면 잠시 점심 먹을 때만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귀여운 일본 빵모자 여자는, 어버버버하며 당황한 듯 말을 망설였다.


"어어, 저느은, 같이 옆에 있는 것도 좋고오, 근데 제가 유튜브를 찍으려고 해서요. 사실 어제 보여줬던 핸드폰 동영상들 다 제가 혼자 얘기한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만약, 그게 괜찮으시다면! 혼자서 얘기하는 동영상이나 같이 나오는 게 괜찮으시다면! 어 저는 근데, 같이 여행하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고, 아니면 따로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잘 모르겠어요! 어 어쩌지…"


"그럼, 아무래도 동영상 찍고 이야기 하는 건 혼자가 나을 거예요. 우리 버스 탈 때는 같이 가고 점심 먹을 때 같이 만날까요? "


다정하게 묻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눈망울이 귀여웠다. 마침 특이하게 생긴 안동 여행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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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요! 저거 타야 해요 우리!"

가방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일부러 다른 자리에 앉았다. 혼자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기에 옆 사람이 걸리면 나중에 힘들 테니까. 여자는 어색하게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카메라를 들어 열심히 촬영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좋은 거야- 생각했다.


여행에서 이루고자 하는 게 있구나, 저 친구는.
그럼 나는 뭘까.
내가 이 여행에서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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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무심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논밭과 시골 풍경, 해사하게 밝은 초록빛의 나무들이 반짝였다. 큰 건물 하나 없는 이 지나가는 모습들을 눈에 담으려고 안동에 왔었나- 여행객들이 으레 타는 요란법석한 디자인의 버스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그럴 예정 없는 사람의 눈에는 유럽 어느께 버스 디자인을 표방한 나무 인테리어가 참 귀엽고도 조악스러웠다. 하지만 그래서 신났다. 이건 분명 여행이구나- 느껴지기 때문이다. 창에 팔을 괴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의외의 인연을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하고. 텅 빈 마음을 채워줄 어떤 사건을 기다리며 안동을 찾은 건 아닐까, 싶을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동하회마을이다.


스물 두어살 때, 고등학교 친구와 내일로로 잠시 스쳐간 적이 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한옥들이 가득한 이 마을이 무엇이 특별한 지 모른 채 대중교통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좀 더 대중교통이 그 때보다 나아졌긴 했지만 시골처럼 출발과 도착 시간이 정해져있기에 사진으로 시간표를 찍어놓았다. 일본 친구와는 인스타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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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싶으면 DM으로 연락해요. 요새 친구들은 다 이렇게 연락한다면서?"


"앗 네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정갈히 내게 인사를 마친 일본 여자가 떠났다. 자, 나는 자전거를 빌리러 가야겠다.


지난 안동 여행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 마을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이다. 그냥 뚜벅이로 다니기에 6월이지만 햇살이 뜨거웠고, 자전거로 쐬는 시원한 바람마저 없으면 여길 오자고 한 일본 친구에게 화가 날 것이 분명했다. 마침 입구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장사꾼이 있었다. 만 원에 시간은 무한이라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올라타는 자전거는, 재미있었다. 운동 실력이 좋지 않아 어렸을 때 무진 애를 쓰며 배웠다. 샌프란시스코 5시간을 자전거를 탔던 몸이라고, 자신했지만 타자마자 뒤뚱-거리는 탓에 다시 한 번 안전 조심을 마음 속으로 새겼다.

마을은 여전했다. 사람들은 들어가자마자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찰칵, 찍고 나왔고 건물들은 옛날 모습 그대로였으며, 길가에는 덥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슬러시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별 다를 게 없어 나는 어슬렁거렸다. 자전거 도로 연습 시간이려나- 그러기에 나는 안동까지 온 시간과 돈이 아까우니까, 아무 데나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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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는 마을 한옥 한 곳에 들어갔다.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멀거니 태블릿을 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옆을 흘낏 보니 짚으로 똬리를 트는 할아버지 한 분이 더 계셨다. 작은 표지판에는 '문화 예술 장인'이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그 분께 물었다.


"이게 뭐예요? 알려주실 수 있어요?"


태블릿을 보던 할아버지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를 쳐다봤다. 오호라- 너가 나에게 말을 걸어줬단 말이지. 드디어 손님을 찾은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여기 안동하회마을에 와본 적이 있어? 여자 혼자 여기 처음이야? 아이고, 자전거를 끌고 왔네. 저기 마을 문 밖에 자전거 출입 제한이라는 걸 못 봤나 봐. 하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어쨌던 이 곳은 어떤 곳이냐면 … "

무척이나 설명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가만히 쳐다보며 듣고 있는 내가 있으니, 신명나는 판소리를 하는 명창마냥 즐겁게 이 곳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짚을 가지고 만드는 것은 이 마을의 수호 나무를 위한 줄이라며, 그곳에 한 번 가보면 어떻게 쓰이는 지 알 거라고 하셨다. 아,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을 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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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의 눈매를 읽는다. 나도 사람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그리웠기 때문에, 옳다구나 싶어 이번에는 또 다른 외로운 해설사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마침 사람들이 몇 없는 곳에 또 NPC마냥 정갈한 긴 팔 한복을 껴입은 할아버지를 찾아냈다.


이 여름에 저렇게까지 정복을 입고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나 같았다.
나에게 어서 말을 걸어줘- 나는 너를 위해 언제든지 내가 가진 걸 풀어줄게- 하는 모습 말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그래 그래. 잘 왔어. 여기는 안동 김씨의 00대손이 …. 그런데, 안동 김씨 집안의 권세가 대단했잖아. 그래서 여기는 영의정 좌의정을 지낸 사람이 많단 말이야. 저기 옆에 큰 집 보이지. 그 집이 이 중에서 제일 부잣집 중 하난데, 근데 글쎄 자식이 없어서 그 돈을 다 끌어안고 죽었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이 집을 어떻게 하나- 종친회에서 회의를 해서 공동 관리하기로 했단 말이야. 그래 사람은 생전에 그래 돈 밖에 몰라가지고 말야. 그래도 저 사람이 좋은 일 많이 해야 했는데. 전쟁 났을 때 말야. 저 사람이 러시아에 군용 물품 대 줘 가지고 돈을 막대하게 벌었다잖아. 근데 사람이 그래선 안 돼. 그럼 뭐해? 혼자 외롭게 죽을 거. 주변 사람 더 챙기고, 마을에 필요한 것도 가져다주고, 한국에 잘못 사는 사람들한테 안동 김씨로써 도와주기도 하고 했어야지 말야. 난 그게 불만이야. 아무튼간에 말야, …"


다양하게 쏟아지는 말을 라디오 듣듯 고스란히 담고 있다가,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가 있어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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