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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북스테이, 안동 하회마을 인생의 끈은 몇 개?

(3) 안동 하회마을 - 혼자서 어른이 될 수 없어, 사람은 사람과

by 라화랑

다양하게 쏟아지는 말을 라디오 듣듯 고스란히 담고 있다가,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가 있어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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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충효당에 가면 지붕 밑에 줄이 하나 매달려 있어. 양반 주인들이 신발 신고 벗을 때 넘어지지 말라고 줄을 매달아 놓은 거지. 근데, 인생에 그런 끈을 한 개만 둬서는 안 돼. 사람 인생에는 줄을 여러 개 매달아 놔야 한단 말이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잡을 수 있게 여러 명한테 줄을 팍팍 달아 놓아. 그리고선 필요할 때마다 손을 꽉 내밀란 말이야. 그래야 사람이 살 수 있어. 사람은 사람 없이는 못 살아.


낚싯대도 물고기를 잡으려면 미끼를 다 던져놔야 하는 거야. 그냥 해선 안 되는 거야. 그럼 물고기가 뭐 잡혀? 그런 낚싯대를 인생에 많이 들여놓으란 말이야. 인생에 뭐 금싸라기 논마지기 몇 개 더 있는 것보다 그게 낫지 뭐.

옛날에, 엄청 유명한 관찰사가 죽었어.

그래서 어떤 양반이 자기 종한테


얘야, 저 양반이 천당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하고 시켰어. 그랬더니 금방 그 종이 와서 대답하더란 말이야.

그 양반, 지옥에 갔더랍니다!


하고. 그래서 양반이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느냐?

하고 물었더니

초상집에 오는 사람들이
"에이, 그 사람 잘 죽었네-"하고 들어가면 지옥간다고 하고
"아이고, 아이고 그 사람 왜 죽었을꼬"하면서 곡소리 내면서 들어가면
천당 간 거라 그래 말하대.



그래. 인생을 그래 살아야 돼. 인생에 중요한 게 쌀마지기 몇 개가 아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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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꼿꼿이 사는 게 어른이 되는 길이라 믿어 달려왔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혼자 모든 걸 끌어안아야 좋은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거야, 내 일도 내 감정도 모두 내 책임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는 없는 거야- 너는 집에서 혼자 술이나 먹고 버텨.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날들이었다. 그런 나의 하루들이 모아져 마음의 병을 일으켰고, 그래서 나는 터덜터덜 책이 있고 사람은 없을 것만 같은 안동으로 여행을 오게 된 터였다. 분명 나는 독립된 혼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기댈 다양한 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돌이켜보니 무수히 많은 끈들을 먼저 잘라내고 뿌리쳤던 건 내가 아니었나 싶던 거다.


더욱 혼자가 되려던 여행에서, 혼자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사실은 그게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맞아, 나는 혼자일 수 없어. 나의 아픔과 즐거움은 혼자 감당할 수 없단 말이야.

나도 이제 말도 없이 무조건 괜찮다고 웃는 건 그만 할래.

내 인생에서 필요할 때마다 줄을 꼭꼭 당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줄을 찾는다.
내 오늘치 어두운 마음을 기댈 사람을 여러 명 찾을 것이다.
그런 공간도 여러 군데 만들 것이다.


내가 안동 여행을 온 이유가 밝혀졌다. 나는 더이상 몸도 마음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혼자 잘 논다며 너스레 떨던 28년간의 내가 가여워졌다. 괜찮아, 이제 평형을 찾아가는 거야. 사람에게 필요할 때는 기댈 수도 있다는 걸 이제라도 알았으니, 되었다. 스스로 토닥여주고 싶었다.

나는 금싸라기, 은싸라기 몇 마지기보다 더 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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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자전거를 타며 마을을 여행할 이유가 없어졌다. 슬러시를 파는 가게 앞 의자에에 슬러시를 들고 앉아 여행 온 가족, 연인들의 표정을 한가로이 구경했다. 사람들은 저렇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만 그걸 독립적이랍시고 내던지고 살았구나. 더운 햇빛에 상쾌한 바람이 일었다. 차가운 슬러시가 몸 안으로 쭉쭉 들어간다. 파아아 퍼지는 기분이 달콤했다.


[우리 이제 밥 먹을까요?]


때마침 적절히 DM이 왔다. 흔쾌히 알았다고 말하며, 자전거를 반납했다. 일본 친구는 앞서 만나기로 했던 입구에 날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답 했더니 친절히 자신도 방금 왔다며 웃었다.

참, 착하고 참한 친구야-

혼자 들어갔으면 먹지 못했을 커플상을 두고 한국과 일본 여자 둘이 앉았다. 안동 찜닭과 간고등어 구이 모두를 놓칠 수 없던 여행객들을 타겟으로 음식점은 반-반인분을 섞은 세트를 판매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한국에 온 이유, 일본에 있는 맛있는 음식, 오늘 본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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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밥 먹는거, 안 불편해요? 일본은 원래 혼자 따로 먹는 문화잖아요."


-어, 근데 일본도 가족들은 같이 한 그릇에 먹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같은 그릇에 먹는 거 익숙해졌어요.


언제 봐도 나보다 더 한국말을 잘 한 단 말야, 생각하며 편안하게 먹으라고 다양한 나물을 소개해줬다. 앞에 쓱 놓아주기도 했다. 손이 잘 안 닿을 것 같단 말이지-

일본 친구는 오후 2시에 있을 탈춤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탈춤에 관심이 없었기에, 유일하게 안동 여행에서 찾아보고 온 병산 서원에 향하기로 했다. 버스 시간과 장소를 잘못 본 탓에, 버스 기사님께 뺀찌를 당했다. 여기가 그곳이 아니라니, 이 시간이 그 시간이 아니었다니!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여행자의 낭패감이었다. 20분을 땡볕에서 버스를 놓칠새라 그늘도 못 가고 기다렸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더워서 내가 미쳐가는 건가- 싶으면서도 평범하게 기분이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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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병산 서원까지는 택시를 탔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7500원이 나왔다. 여행자여서 좀 더 비싸게 바가지 받은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어차피 마음 챙기러 돈 탈탈 쓰기로 결정한 판국에, 7500원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난 요새 통장에 눈을 감고 살아가니까.


병산 서원 입구에 내리자마자 낙동강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그 낙동강! 한강만 보던 내게 낙동강은 신선들이 놀 것만 같은, 술이 아주 잘 넘어갈 것만 같은 장소로 비춰졌다. 배산임수라는 말은 낙동강을 보고 지었나보다- 싶었으니. 끝없이 정갈하게 이어지는 긴 머릿결과 같은 강물 옆으로 듬직하게 여인을 지키는 듯이 감싸고 있는 산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래서 어른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구나, 절로 끄덕여지는 광경이었다.

입구에서 병산 서원까지는 가까웠다. 동재-서재로 구분지어진 학생들의 기숙사 앞마당에 사람들이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 위로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큰 강당과 같은 곳이 있었는데, 사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거기 앉으면 강과 산을 두루 멋지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안다. 직접 앉아 보았기 때문이다. 벌러덩 누워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관리인에게 주의를 받는 것을 보며, 5분 정도 앉아있다가 "이제 됐지? 얼른 출발하자!"라고 부추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거기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계속 강과 산을 쳐다보았다. 무더위에 지친 나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광경. 기다렸다는 듯이 불어주는 바람이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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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다이어리를 꺼냈다. 문득 마음을 쓰고 싶었다.

솔직해지지 못하는 스스로가 밉다가도 해사하게 웃으며 내 손을 이끄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무던히 함께 웃고 화내고 질투하고 울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 발짝 세상 안에 더 가까워지는 나를, 나는 그 때 내가 좋아질 것이라 마법을 거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에 기대어 약하게 살고 싶다. 나, 이제 세상에 좀 더 솔직해질 준비를 한다.


약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강한 마음에서 나오는지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진정으로 내비추어 드러내겠다는 건, 공격을 받으면 그만큼 충분히 아프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드리웠던 방패막을 걷어내려고 나는 안동 여행을 왔다. 병산 서원의 상쾌한 공기에서 다시 한 번 연약해서 더욱 아름다워질 나를 생각하며,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이 내 침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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