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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Sep 09. 2024

평가자가 당황한 성과평가

What the Company Thinks #4

우리는 창업 후 5년 차에 성과평가를 도입했다. 


그전에는 서로 한솥밥 먹는 식구들 같았기 때문에 따로 누군가를 평가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무리에서 조직으로 발전해 가면서 인재선발과 동기부여 방식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었다. 몇 주에 걸친 고민 끝에 평가를 진행했고 결과는 대혼돈의 카오스를 맞이했다. 그래서 배운 게 참 많다. 


보통 기업에서 활용하는 다면평가 등의 방식은 거의 모두 정성적 평가에 가깝다. 다만 그 정성적 평가자를 상하좌우로 나누어 좀 더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인데, 개인적으로 팀장이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하향 평가방식과 결과면에서 크게 다르지 못한다고 본다. 누가 평가하든 개인의 주관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개인의 모든 성과물을 정량적 지표로 측정하고 싶었다. 그럼 결과가 정확하게 산출되어 가장 공정한 평가가 될 것이고 직원도 대표도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확한 정량평가 방법이 없었던 우리 역시 할 수 없이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믹스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한 평가 안은 이랬다. 


1. 하향식 평가로서 팀장이 팀원을 평가하고, 경영진이 평가를 리뷰한다. 그리고 경영진이 팀장을 평가한다.
2. 피평가자는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최대한 정량적으로 기술하고 자기 평가를 한다. 
3. 평가는 4점 척도로 이뤄지며 중간값은 없다.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는 우선 '평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평가역량이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상향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료평가 또한 공정한 평가보다는 상호 호혜주의에 입각한 긍정 멘트로 채워지기 쉬워서 배제하였다. 


자신의 성과를 정량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무엇보다 평가 시 4점 척도를 적용함으로써 중간이 없도록 했다. '보통'이라는 중간값이 있다면 대부분 애매한 경우 모두 3점을 주게 되는 '중간편향'을 없애고자 했기 때문이다. 척도는 매우 부적절함, 개선이 필요함, 평균 이상임, 시장 최고임 이런 식이었다. 


자, 그럼 약 40 여 명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성과 평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평가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첫째로 자기 평가에 있어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다 달랐다. 이 사람과 계속 같이 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만큼 성과가 저조했던 사람이 스스로에게 최고 점수를 준 케이스는 물론, 반대로 성과가 뛰어났는데도 스스로에게 낮은 점수를 준 겸손한 케이스도 있었다. 


둘째로 나쁜 점수는 대부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마찰은 고성과자가 아니라 저성과자들에게서 생겼다. 나쁜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평가가 잘못되었다,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정량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에도 본인의 과오가 아니라 다른 팀이나 동료를 탓했다. 


셋째로 나쁜 점수를 받은 사람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성과평가 결과가 바로 인사조치로 이어져 고용 안정성이 침해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성과평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자체가 냉정한 평가를 통해 솔직하게 소통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방편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소중한 인격체이므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아(ego)를 가지고 있고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DNA는 자동적으로 발현된다. 이 방어기제는 우리가 좌절과 불안에 빠지는 것을 막고 정신적인 안정 상태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시스템이다. 결과가 크게 잘못되어도 앞으로 잘하면 된다거나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기 위안 내지 합리화하는 것들이 해당된다. 


보통 이런 방어기제는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자기 방어기제가 때로는 장애로 작용할 때가 있는데, 개인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성장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특히 역방향으로 작동한다. 


성과평가는 평소에 보호받던 우리의 이 방어기제를 샌드백처럼 심하게 두들긴다.  




회사마다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성과평가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고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투명하게 소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래서 평가 이후 피드백의 시간을 꼭 가졌다. 그리고 이때 많은 걸 깨달았다.  


우선 평가를 받는 사람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성장을 원하는 사람인가,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의사결정권자와 얼굴을 맞댈 기회가 많은 작은 기업이라면 평가결과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평가를 대하는 자세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80%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가 나쁘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설령 객관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음을 인정하더라도 이에 대한 원인은 다른 팀이나 회사의 상황에서 찾는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외부의 공격에 방어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평화로운 정신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이 인간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하려면, 때로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파괴하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즉 성과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의 성장성과 역량에 자신이 있다면 이번에 성과가 안 좋았어도 어디 두고 보자 하며 다음번에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평가는 오히려 약이 되며 이들은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평가를 받으면 받을수록 이들은 성장한다. 자기 방어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찾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쁜 점수를 받은 사람 중에 결과를 빠르게 수용한 한 사람이 있었다. 피드백 과정에서 흥분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이는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또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열심히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답을 해 주었다. 

양질의 피드백(?)을 온몸으로 받은 그는 다음 해에 월등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이 인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성과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인데 결과가 그렇지 못했다면 방법을 알아내자'라고 생각했던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평가자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을 경우에만 평가가 의미가 있었다. 


평가자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평가자는 사람이 아닌 성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회사의 목표와 기준을 잘 이해하고 이에 비추어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평가를 하는 목적은 좋은 인재를 알아보고 성장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문제해결능력이 없습니다." 보다는 

"당신이 지난 2분기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는 어떠어떠한 성과를 보였는데 진행되었던 과정에 비추어서 여기서는 문제해결능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가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평가자도 경력이 조금 더 있을지언정 사람인지라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직 전체의 평가역량이 완벽하지 않은 수준일지라도 평가의 과정은 반드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평가의 정확성을 떠나서 그 과정 자체에서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랬다.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성과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최고의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성과평가를 통해서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배웠다. 사업의 과정은 비즈니스 자체보다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사람에 대해서 배울 때가 정말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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