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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Aug 21. 2024

영국에서 바라보는 한식의 세계화

한식에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자.

* 이글은 오마이뉴스 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시리즈에 담겼습니다.

https://omn.kr/29n5z


핼러윈데이에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던 아이는 이정재 주연의 오징어게임에 나온 코스튬을 입고 Trick or Treat을 외친다.


벽안의 아이 학교 음악선생님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떡볶이라고 하고, 나중에 제주도에 꼭 가보고 싶다 한다. 딸아이 친구는 불닭볶음면 2단계 먹었다가 혼절할 뻔했다며, 바나나 우유를 먹었더니 그 매움이 좀 가셨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김밥을 싸갔는데 초밥이라고 해서 매번 설명해야 하던 때를 살던 나는, 요즘 영국 현지인들을 통해 한국 문화와 한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시안마트 라면 매대 모습

이민자로 영국에서 살면서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가 많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이 정성스레 해주는 맛있는 한식’이 그립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직접 만들어 먹고자 하면 얼마든지 현지에서도 맛있게 한식을 즐기며 살 수 있다.


런던 근교 뉴몰든 H마트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면, DHL 특급배송으로 공산품뿐만 아니라 신선 음식 재료들도 집 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 동네 아시안마트에 가면 김치에서부터 각종 장류, 라면, 과자에 소주, 막걸리까지  한국산 공산품은 거의 모두 구비되어 있다. 단지 수입품이니 가격이 좀 더 비쌀 뿐이다.


프랜차이즈 펍에서는 한국 버거(Korean Burger)가 따로 광고판을 걸고 판매되고 있고, 치킨 전문점이면 어김없이 한국식 치킨, 한국 양념치킨 메뉴가 있다. 웬만한 트렌디한 식당에는 한국식 음식이나 소스를 메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 H마트에서 운영하는 한국마트 '오세요(Oseyo)' 매장에는 K팝 뮤직이 흘러나오고 한국식 스낵, 음료, 음식제품들 뿐만 아니라 K팝 연예인 굿즈 상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길 건너 긴 줄을 서 있는 매장을 보니 한국식 핫도그로 유명한 '분식(Bunsik)'이 있다. 가는 때마다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주문할 수 있는 인기 있는 맛집이다. 조금 더 사거리 근처로 걸어보니 치맥(Chimak)' 매장이 눈에 띈다. 그 뒤 골목으로 걷다 보면 전통 또는 퓨전 한식점들이 곳곳에 보인다.


최근 영국 대도시에선 예전과 다르게 고급화, 모던화된 한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런던 소호 지역의 변화가 눈에 띈다. 소호 지역은 큰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있는 지역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소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 음식점은 다섯 군데 정도에 불과했다. 현재는 15개 그 이상으로, 최근 급속히 음식점 수가 늘어나고 있다.


미리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니 최근 이 지역 '아랑(Arang)'이라는 한식점의 온라인 평점이 좋다. 직접 방문해 보니 모던한 내부 인테리어에 이른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이 거의 꽉 들어차 있다.

런던 소호 한식점 아랑(Arang)

언뜻 보기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각자 기호에 맞춰 한식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중 한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사진 촬영과 함께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자신들은 거의 매주 이곳에 와서 음식을 즐기고 있노라며, 무엇보다 직접 테이블에서 구워 먹는 바비큐 고기류가 최고라고 웃음 짓는다.


메뉴판을 보니 한국음식 하면 생각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나는 순두부찌개와 물냉면을 주문했다. 물도 공짜가 없는 영국에서 주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반찬이 기본으로 차려지다니, 그 자체가 한식이 낯선 영국인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일 테다. 짜지 않고 간결하게 차려진 음식을 나는 맛있게 즐겼다. 홀 서빙은 젊은 한국 청년들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밝은 기운이 넘쳐 분위기도 좋았다.


영국 음식과 한식의 조화
즐겁게 한식을 즐기기 위한 노력은 영국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 생활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김치를 활용한 음식들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주 먹는 토스티(샌드위치에 압착열을 가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만든 샌드위치), 영국 콘월 지역 특산품인 큰 만두 모양의 코니쉬 파스티(Cornish Pasty), 삶은 계란에 빵가루를 두툼히 묻혀 튀기는 영국 전통 스카치에그(Scotch Egg) 등에 김치 소스나 고추장 등을 가미해 판매하고 있다.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고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치즈와 알싸한 한국 발효식품의 풍미가 어울려 별미다. 익숙한 듯 색다른 맛에 현지인들의 반응도 좋다.

김치와 치즈를 넣어 만든 토스티 photo by 세반하별


얼마 전 덴마크에서 불닭볶음면 3종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한바탕 기사화되었다. 해당 삼양식품이 다시 덴마크 식품청에 금지조치에 대한 반박서를 제출한다고 하더니 잘 설명이 되었나보다. 바로 며칠 전 수입 금지됐던 3종 중 2종은 다시 수입 허가가 났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관련 기사:덴마크서 회수조치된 '한국산 매운맛 라면' 2종, 재판매된다https://omn.kr/29g6k)


SNS 챌린지를 즐기는 젊은 층에겐 이런 경우 되레 입소문 광고 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 식품청을 신뢰하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품질 낮은 아시아 식품이라 판매 금지 당했겠지'라고 생각했을까 걱정이다. 영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말 맛없는 현지 인스턴트 컵누들과 한국 라면은 비교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렇듯 음식에 관한 한 자부심이 강한 유럽 시장은 그만큼 음식에 대해 보수적이고 수입 제품의 품질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영국서 김치 만드는 키미의 목표

한 번은  저렴한 중국산 김치가 있기에 한 통 구매했다. 배추 식감은 물컹하고 이 김치는 발효된 음식이 라기보다는 절임채소를 매운 소스에 담근 듯한 맛이다. 김치찌개로도 끓여 먹기 싫은 정도였다. 이 상품을 처음 먹어본 현지인은 이것이 김치인 줄 알 것 아닌가 싶어 부아가 나기도 했다.   


영국 현지에서 프리미엄(고급) 김치를 공급하고 있는 한인 사업가 한 분과  런던 헤크니(Hackney)에서 귀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런던 현지에서 프리미엄 김치를 공급하고 있는 김치앤레디쉬 대표 김지현님.

사업가 김지현님은 <공장 대량 생산이 아닌 좋은 재료로 직접 맛을 낸 신선한 김치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런던 남부 서더크구에 김치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김치를 만들어 런던 중심으로 유통 판매하고 있다.


최근까지 영국 중심가 웨스트민스터 지역 레젠트 스트릿(Regent Strret), 노팅힐(Notting Hill), 카나리와프(Canary Wharf) 등  런던 중심지에 체인점을 둔 아티스(Atis)에서 키미김치볼(Kimmy Kimchi Bowl)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곳은 주문과 동시에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 바로 서빙하는 웰빙 체인점으로, 건강식을 찾는 입맛 까다로운 런던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나는 직접 온라인쇼핑을 통해 그녀의 김치를 구매해서 먹어봤다. 매운 정도에 따라 차이를 둔 전통 김치 2종을 비롯, 물김치는 레인보우 김치라는 이름으로, 아삭한 깍두기 김치도 있다.  현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명이잎으로 만든 와일드 갈릭(Wild Galic) 김치는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이용한 김치’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먹어보니 그 맛에서 김치의 맛을 지키고자 하는 키미님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 프리미엄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김치앤레디쉬 제품들을 직접 시식해본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

영국 현지에서 한식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영국에서 사랑받는 외국 음식으로는 이태리식, 인도식, 중식, 일식, 태국식이 보편적이다. 중국 음식은 지방 소도시 어디든 배달음식으로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영국 문화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일식의 경우에는 조금 더 건강식 이미지가 강한데, 비싼 일식 레스토랑에서부터 테스코와 같은 쇼핑 체인점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포장식까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중식, 일식에 비하면 영국 식은 현지인들의 접근이 아직 쉽지 않다. 한국음식점은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내가 사는 영국 남서부는 영국인들이 국내 휴가지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다. 아시아마트는 있지만 한국 식료품점은 없고, 한국 음식점이 전체 도의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 한식은 대부분 중국음식점이나 태국 음식점에서 비빔밥이나 불고기 정도의 메뉴로 끼워 팔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최근 테스코에서 프리미엄 점심 메뉴로 한국식 덮밥을 출시해서 판매하고 있다.


한 현지 지인은 한식이 건강하고 색다른 음식인 것은 인정하지만,  염분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현지인들이 주로 만나는 한식은 간식, 간편식 또는 매운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 건강을 위한 음식으로 빠지지 않고 소개되고 있는 김치

한식을 세계화할 때 싸고 푸짐한 음식 이미지보다는 '건강한 음식'으로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주로 건강에 관심이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에 걸맞은 한식의 장점을 잘 마케팅할 필요가 있다.


요즘 영국 현지 서점에 가보면 가공식의 위험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나누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영국 성인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처방치료보다 식생활과 소비 식품에서부터 문제점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식생활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장 건강(Gut Health)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장내 유산균 관련 좋은 식품이 소개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한식은 고추장, 된장 등 발효식품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 키워드들이 자주 회자될수록 한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소비가 진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에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자.

런던 소호점 한국식품점 오세요 전경

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식의 전통 가치는 살리되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한식 스토리가 많아진다면 어떨까. 현대인들이 갖는 식생활의 문제점을 잘 살펴 세계인 누구나 공감하고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한식이 많아지면 좋겠다.


현재 영국 내 12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한인마트 ‘오세요(Oseyo)’ 가 최대 규모로 맨체스터에 2호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이다. 런던 중심이던 체인점을 버밍엄, 셰필드 등 지방 큰 도시들로 그 저변을 넓혀 가는 분위기다. 더욱 풍성해지는 영국 현지 한식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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