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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Aug 16. 2024

'한국식 후라이드 치킨볼' 맛은?

 '한국식' 단어 자체가 인기 브랜드가 되다.

한 때 '유기농', '오가닉'이라는 단어가 음식점 메뉴나  식품매장에 붙으면 불티나게 팔리고는 했었다. 자연 친화적이어서 건강에 좋고,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는 깨어있는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제품 이미지였다. 고급, 프리미엄과 같은 의미로, 일반 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도 그 이름만 붙으면 불티나게 팔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유기농'의 기준이 무엇이냐 따지고 들어보니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무늬만 오가닉 제품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주말, 영국에는 모처럼 만에 여름 다운 더위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우리 집 딸아이의 생일이 끼어있는 터라 외식할 기회가 많았다.  
 

금요일 늦은 오후, 아는 지인들과 함께 펍으로 향했다. 예전에 한국식 버거를 광고하던 곳인데 당시 매출 재미를 좀 봤던 듯싶다. 이번에는 '한국식 튀김 치킨볼'이라는 이름으로 기간 한정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알록달록하니 눈에 확 띄는 색감의 광고판에 음식과 알코올음료가  묶여 세트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가격도 부담 없다. 뭐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


닭 강정 같은 맛일까?', ' 매운 양념치킨  맛일까?' 한국식 양념이라고만 되어 있으니 도무지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아 궁금해서 식욕에 더욱 불을 댕긴다.


 

영국 펍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식 치킨볼. 동남아와 한국의 오묘한 맛의 조화가 느껴진다 @세반하별

받아 든 음식을 보니 뼈 없는 닭고기 튀김과 감자튀김  위에 마늘향이 살짝 밴 간장 소스를 묻혔고, 그 위에 동남아 국수에나 얹어 나올법한 고수와 얇게 저민 빨간 고추를 뿌려  놨다. 예전에 고추장 소스를 질척할 정도로 발라 튀김의 바삭함은 없어지고 눅진한 매운 소스 범벅이던 어느 음식점의 한국식 치킨에  비하면 바삭하니 술안주로 그만이다.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이것은 한국식 닭요리가 아니다. 우선 고수가 내 입맛을 동남아시아 어느 뜨거운 날들의 음식 기억으로 소환하고, 약간의 간장 소스를 한국식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중식, 일식도 간장 소스를 많이  사용한다. 말하자면 범 아시아를 품은 닭 요리인데 잘 팔리는 키워드, '한국식'을 붙였다고 보면 딱 맞을 것 같다.   


영국 거리 음식은 주로 튀김이 많다. 그중에서도 단연 사랑받는 메뉴는 닭튀김과 감자튀김이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음식점 하시는 분들도 어려움이 많다는 뉴스를 봤다. 이미 익숙한 튀김에 조금 다른 맛을 가미해서 큰 원가 변화 없이 맛에 다양한 변주를 줘보려는 주방장의 고민과 노력이 음식 한 그릇에서 읽힌다.  


옆  자리 벽안의 영국 여인이 같은 메뉴를 시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맛이 어떤지 물어볼까 말까하는 내 고민을 알아차린 짝꿍이  직접 나선다. 비디오 촬영을 해도 되겠는지 양해를 구하고는 한국식 치킨볼 맛이 어떤지 묻는다. 의외로 촬영도 바로 오케이,  평소에도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주문해서 먹어보니 맛있단다. 다음 기회에도 같은 메뉴를 시식할 의향이 있다며 밝게 웃는다.  


다음  날인 토요일 저녁은 딸의 생일로 친구들과 모여 조촐한 생일 파티를 했다. 잘 마치고 가족들끼리 따로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섰다.  메뉴를 둘러보는데 메뉴 중 하나에 왕관이 달려있는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23년 길거리 음식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음식이라며 이름은 '칙테이터(Chicktator) 햄버거', 한국식 버거라는 설명이다. 세부 설명을 자세히 보니 햄버거 패티로 바삭한 닭튀김에 한국식 바비큐를 바르고 쌈장, 김치, 양배추, 김가루를 더해 맛있고 색다른 버거라고 한다. 어머나!  읽기만 해도 그 맛이 궁금하다. 전날 치킨볼에 비해 좀 더 상세한 재료 설명이라 그 맛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바베큐소스를 얹은 닭 튀김에 김치, 쌈장소스를 함께 넣은 영국 버거 @세반하별

주문한 음식을 받아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햄버거 안에 김치를 듬뿍 담아 나왔다. 메뉴에 적혀 있던 쌈장소스는 마요네즈에 살짝 고추장을 넣어 섞은 듯하다. 색감은 꼭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어 샐러드에 뿌려먹는 사우전드 아일랜드(Thousand Island) 소스 같다. 김 가루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재료에서 탈락되었나 보다 싶다. 짭조름하니 닭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별미인 버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맥주 몇 캔을 더 사러 편의점에 들른다. 못 보던 '한국식 바비큐  쇠고기 육포'가 있다. 찾아보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가는 곳마다 '한국식'이라는 이름의 음식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정말   K푸드가 유행은 유행이구나' 하며 짝꿍과 한참 웃었다. 다음날 해장 할 요량으로 신라면 한 묶음도 잊지 않고 구매한다. 막상  집에 와서 시식해 보니 한국식 육포는 무척 단 간장 맛이다. 이것도 물론 한국 사람 눈에는 굳이 '한국식 육포'라고 이름 붙일 만한 맛은 아니다.

영국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식 육포 @세반하별

'한국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들을 보면 기존 영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튀김요리에 동남아식 그리고 한국식 소스를 섞어 해석한, 범 아시아적 맛이 대세라는 결론이다. 아시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영국인들의 추억의 맛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사  온 마지막 맥주 한 캔을 싹 다 비우고 이제는 자야겠다 싶은 즈음, 뭐 한국식이라 하고 좀 다른 맛이면 어떠랴 싶기도 하다.  예전 '유기농' 이름만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처럼 지금 '한국식'은 색다른 맛의 유행키워드로 영국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또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 한식이 무엇인지 관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세월이 불과 몇 해 전인데, 최근 '한국식' 브랜드의 성장은 정말 놀랍다. 해외 교민인 내 어깨 뽕이 쏙 올라갈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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